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 녹수(綠水)도 절로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가락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는 옛시조다.
그처럼 뭐든 거슬림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자 했다.
하여 높은 습도마저도 거스르지 않고 수용하려고만 했었다.
미련스럴 정도로 무턱대고 고집스레.
창 활짝 열어젖히고 틉틉하게 스며드는 부연 습기를 밀어내지 않고 껴안았다.
제습기를 필히 사용해야 한다는 말쯤 귓전으로 들어 넘겼다.
에어컨 바람이 정 싫으면 제습 모드라도 사용하라는 옆집 황선생의 조언도 가벼이 지나쳤다.
높은 습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아니, 겪어본 바 없으니 습기쯤 뭐 대수롭겠나 싶었다.
간과할 수밖에 없었던 건, 직접 그 증세를 당해보기 전이었으니까.
서귀포의 요즘 날씨는 폭염에 이어 비 오락가락, 잠시 번한 날에도 습도는 80% 넘었다.
컨디션이 난조를 보인 지 그럭저럭 한 열흘 가량 됐다.
상쾌한 기분으로 스프링처럼 튕기듯 기상하던 전과 달리 이상스레 전신만신이 묵지그레했다.
장마철 소금 가마니처럼 몸만 무거운 게 아니라 눈꺼풀조차 무거웠다.
안면과 손발이 약간 부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빠리빠리하던 동작이 느려지며 매사 의욕도 저하되었다.
나돌아 다니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자신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저 자신이다.
한번도 경험한 바 없는 이상 증세를 겪으며 습도와의 연관성을 찾아보게 되었다.
밤새 제습기 한 통 가득씩 물이 채워진다는데, '절로 절로' 타령이나 하며 태무심하게 지낸 무신경.
맹탕 자연에 맡긴 채로 별도의 습기 처리를 하지 않았던 무지함이라니.
돌팔이 진단일지라도 습기 문제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문제를 확인한 즉시 그날부터 에어컨의 제습 기능을 십분 활용했다.
숨결 갑갑하게 느껴질 정도이던 습기가 제거되자 모든 게 보송보송 해졌다.
자고 일어나니 예전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신통방통 정도가 아니라 신기막측했다.
무식한 축구 곰단지 미련 떨다가 멀쩡한 사람 잡을뻔했다.
이날도 몹시 후덥지근한 날씨, 한낮에 치유의 숲으로 향했다.
가멍 오멍 숲길에서 뻗어나간 여러 갈래 산책로가 안전하게 다듬어져 있으므로 새로운 코스 따라 올라왔다.
새 길은 이끼 낀 돌담이 곳곳에 쌓인 완전 낯선 길, 이전에 폐허가 된 숯막골이 아닐까 추측됐다.
안내판에 설명된 바로도 오래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자취가 남겨진 것이라 하였다.
비교적 호젓한 숲길인데 주말이라서인지 산책객이 계속 이어졌다.
조붓한 숲길이 트이며 임도가 나있는 큰길과 바로 연결이 되었다.
거기부터는 낯익은 길, 도로변 쉼팡으로 들어갔다.
편백 숲 속 쉼팡엔 누워 쉴 수 있는 목제 의자가 여럿 마련돼 있기에 목향에 취해 한참을 누워 있었다.
얼굴에 모자를 얹고 눈을 감은 채로 뭇 생각에서 멀어지는 온전한 '비움' 수련에 들어갔다.
두어 시간 고즈넉이 숲향기에 푹 잠겨있었다.
숲이 품은 생명의 정기 전이받아 가면서.
온 데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기운 호흡하면 그로 충분했다.
편백나무 삼나무 밀밀한 숲이라 모기약도 필요 없었다.
우리 모두에겐 이런 온전한 쉼이 가끔 필요하다.
일상에 지쳤을 때
머리 무거울 때
마음 불편할 때
삶이 힘겨울 때
숨 쉬는 거 조차 싫을 때
그보다는 궤도로부터의 일탈이 필요할 때.
짐 다 내려놓고 영혼마저 한갓 지게 부려놓고 잠시 쉴만한 곳.
치유의 숲은 그럴 때 조용히 다녀오는 곳이다.
시간 셈하지 않고 한껏 느긋하게............
숲에서 밀려드는 청량히 맑은 공기와 잎새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뿐인가.
고맙게도 산새며 매미소리까지 치유인자 되어주겠다.
이처럼 무상의 자연이 베푸는 시혜로 면역력 높여져 건강은 자동 회복되게 마련이리.
정녕, 이런 치유의 숲과 이웃해 살고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가까운 거리라 언제라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
편백과 삼나무가 내뿜는 청신한 피톤치드, 테르핀, 음이온이 푸른 숲 이룬 곳에서 새 기운 충전받아 씩씩하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