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Expectations 통해 손 씻기

by 무량화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등을 쓴 찰스 디킨스.

영국 포츠머스 출신인 그는 매우 궁핍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文名을 날리면서부터 셰익스피어 못잖은 명성은 물론 생전에 충분한 풍요를 누렸다.

반면 그의 소설은 독자 기호에 지나치게 영합하는 글이라 하여 대중소설로 취급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위대한 유산>은 영화로, 소설로, 영문판 다이제스트로 접해본 책이다.

요새 다시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려다 읽었다,

책 제목이 마치 훌륭한 유산을 상징하듯 '위대한 유산'이라 번역돼 있지만 원제의 뜻은 오히려 엄청난 선물에 가깝고, 대단한 기대가 현실화되자 주인공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가 소설의 핵심이다.

대부분 읽어 내용을 알다시피 소설은 주인공 핍이란 고아소년이 청년에 이르기까지의 스토리다.


어릴 적 우연히 만난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인생이 뒤바뀌며 거센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 성장소설 형식이다.

배경은 산업혁명을 거쳐 비약적으로 발전한 19세기 영국.


만연한 물질숭배와 빈부격차상, 인간성 상실 측면에서 현대는 첨단산업사회의 발달에 따른 비인간화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는 시대다.


무너져 가는 가정, 부와 명예에 대한 집착 등과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던 그 시대였다.

일곱 살짜리 핍은 감옥선을 탈출한 죄수 매그위치를 늪지대의 교회 무덤에서 만나며 뜻하지 않은 운명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탈옥수는 어린 핍에게 먹을 것과 족쇄를 끊을 줄칼을 가져오라고 겁박한다.

공포에 사로잡힌 핍은 얹혀사는 누나의 집에서 그가 요구한 것들을 훔쳐다 건네준다.

핍과 죄수의 이 기묘한 만남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골 소년이 갈망하던 꿈같은 상류사회로 이끄는 고리역할을 한다.

훗날 그 죄수는, 핍에게 유산 상속을 약속했던 대로 런던에서 신사교육을 시켜준 익명의 후견인이 매그위치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매그위치는 또한 핍이 선망과 동경의 대상으로 깊이 사랑해 온 에스텔라의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어느 날 핍 소년은 자신을 찾아온 제이거스 변호사로부터 뜻밖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막대한 유산 이야기를 접한다.

그때 핍은 "내 심장은 극도로 방망이질 치고 있었으며,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너무 크게 났다.” 고 했다.


감격에 겨워 마구 가슴 뛰던 순간은 잠시.

런던에서 신사 수업을 받는 동안. 핍은 흥청망청 낭비벽에 빠지는가 하면 정신적으로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타락해 간다.


신사의 이름에 때를 묻히는 한량들과 어울려 허울뿐인 친교를 쌓느라 감당 못할 부채만 늘려간다.

핍은 신분상승과 부에 대한 꿈을 이루게 해 준 후원자 덕에 물질만 추구하는 속물이 돼가는 핍.


이는 어둠의 범죄와 연결된 죄수의 부정한 돈에 바탕을 둔 까닭이 아닐까 싶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지적. 인격적, 도덕적 덕목을 갖춘 신사가 되는 필요조건이나 자격은?


타인을 교묘히 이용하거나 권모술수를 써서 부를 쌓은 자나 실속도 없이 허세를 부리는 자가 절대로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묵묵히 삶을 개척해 가는 건실한 사람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신사란 오히려 우직한 하층계급이지만 건강한 심성에 따뜻하고 인간적인 민중의 상징 같은, 촌사람 대장장이 매부를 이른다.

사람들을 성심으로 대하며 배려하는 매부 죠야말로 '내면이 참다운 신사'로 디킨스가 제시하는 위대한 유산이겠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진정한 신사는 진실된 참인간, 나아가 인간의 구원은 정직, 근면의 미덕 속에 있을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같은 책이라도 나이 들어 읽어보면 젊을 때와는 느낌이 영 다르고, 주변 분위기나 사회적 영향력에 따라 약간씩은 차이 나게 받아들여진다는 걸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터이다.

아마도 이번에 소설 속 변호사의 행동이 유독 눈에 띄게 된 것은, 얼마 전 조선조 영조임금을 조명한 영화와 책을 본 때문이지 싶다.

런던생활을 하는 핍의 후견인인 제이거스 변호사, 재차 위대한 유산을 읽으며 여러 등장인물 중 특히 그의 '손 씻기' 행위가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

흔히 부정적인 일이나 찜찜한 일에 대하여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결별했을 때 손 씻다, 란 말을 쓴다.

악의 사슬을 끊어버린다거나 죄의 소굴에서 벗어나는 경우, 말하자면 폭력조직이나 사기도박단 같은 데서 발을 빼고 난 다음에 그런 표현을 곧잘 쓰곤 한다.

하긴, 빌라도는 예수를 군중들에게 넘겨주고 나서 피에 대해 자신은 책임이 없다며 퍼포먼스 하듯 손을 씻었지만 회피도 책임전가도 소용없이 유대 총독인 그의 이름은 후세까지 남게 되었다.

이처럼 사악한 것, 부정한 것 등 나쁜 요소를 씻어낸다는 일종의 상징적인 면도 있으나 좋은 뜻으로는 정화한다는 의미의 씻기.

중국고대 전설상의 성군 요(堯) 시대에 살았다는 고결한 선비 허유는 요제(堯帝)가 자기에게 보위를 물려주려 하자 귀가 더럽혀졌다고 영천(潁川)에서 귀를 씻은 후 기산(箕山)으로 들어가서 은거하였다.

소부는 허유가 귀를 씻은 영천의 물이 더럽혀졌다 하여 몰고 온 소에게 마시지 못하게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그 대목을 떠올리게 하는 영조와 제이거스 변호사, 두 사람 다 결벽증에 가까울만치 '씻기'에 집착한다.

영조임금은 밖에서 불쾌 또는 언짢은 일을 보거나 들으면 신경질적으로 귀를 씻고 손을 씻었다.

상감을 뫼시는 상궁들은 물을 대령하란 말이 떨어지면 즉각 용안과 어수를 닦을 수 있도록 물과 수건을 대기시켰다.

제이거스는 재판소에서 돌아온 다음이나 자신의 의뢰인이 방을 나간 후 꼭 비누질을 해 손부터 씻었다.

보통날보다 더 끔찍한 재판을 다루고 왔을 때는 손과 얼굴을 씻고 목구멍까지 개운하게 양치질을 하였다.

범죄와 연루되어 있는 고객들의 탁기와 흔적을 씻어 버리므로 세간의 악과 일정 거리를 유지시켜 둔다는 상징이 그는 손 씻기였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너나없이 손 씻기가 일상화 습관화 자동화되다시피 익숙해졌다.

하지만 갈수록 정치 사회 면면에서 난무하는 추하고 역겨운 말.


대신 모쪼록 긍정적인 말, 선하고 좋은 얘기만 나누고 들을 수 있었으면.


그리하여 손과 입과 눈과 귀를 씻고 싶은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기를 걸기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