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특별 개방되는 거문오름 용암길을 걸었다.
‘제16회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트레킹’에 동참하려고 일요일 아침 일곱 시 황선생과 선흘마을로 향했다.
일 년 중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단 5일간 일반인에게 예약 없이 용암길이 열리는 날이다.
간밤에 미리 챙겨 놓은 배낭에는 안전산행을 위한 스틱과 물병, 간식거리가 들어있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도 아니고 휴일이라서인지 참석자들이 꽤 많았다.
우리는 순서에 따라 출입증을 수령 후, 배정받은 11시 타임에 해설사와 함께 산행을 시작했다
초입의 삼나무 밀밀한 숲에선 시끄럽도록 끝물 매미소리 쟁쟁했다.
경사도 심한 이 지점만 올라갔다 내려서면 계단길이라 그렇지 그다음부터는 대체로 완만한 산길.
작년에 이어 두번째 걷는 이 길이다.
용암길답게 거친 곶자왈 길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초지의 폭신한 잔디밭길, 부드러운 황톳길, 편안한 데크길도 기다린다.
숲이 하도 우거져서 검게 보여 이름이 검은 오름이다.
한편 '신령스러운 공간'이란 의미도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
2005년 :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되었다.
2007년 : UNESCO 세계자연유산에 당당히 등재됐다.
거문오름에서 쏟아져나온 용암류가 경사를 따라 북동쪽 월정 해안가까지 흘러가면서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화산 지형과 용암동굴을 만들어 놓은 덕이다.
조천읍 선흘리 및 구좌읍 덕천리 일대까지 길다랗게 분포된 거문오름은 해발 456m의 오름으로 거문오름용암동굴계를 형성한 모체라 할 수 있다.
앞서 걸어가는 젊은이 목덜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세 시간 거리의 약 6킬로 트레킹 코스라 반 너머 왔으니 배낭을 멘 내 셔츠 등판도 그새 푹신 젖었다.
전망대가 있기에 잠시 쉬면서 물도 마시고 사방을 두루 조망하며 땀을 식혔다.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 위치만 짐작할 뿐이고 우로는 민오름 물장오리, 좌로는 양널오름 물찻오름.
동쪽으로는 풍차 사이로 따라비오름, 성불오름, 용눈이오름, 백악이오름 등이 넘실대는 파도처럼 멋스러이 춤을 추었다.
먼 발치로 보이는 용눈이오름, 지난해 저 먼 곳까지 안내해 줬던 앤을 여기서 뜻밖에 조우하다니.
선연(善緣)의 결과라 이리 반가운 만남일진대, 살면서 언제 어디서건 다만 바른 인과(因果) 지어 좋은 카르마 남겨야.
카르마법칙은 한치 어긋남없이 분명하고 지엄해 자연현상을 보면 알수 있듯이 콩심은 데 콩 나기 마련.
자신이 살아오면서 남긴 족적 그대로를 이렇듯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거문오름 아니랴.
마치 곶자왈처럼 울퉁불퉁 험한 현무암 지천이라 용암동굴을 비롯, 풍혈(땅의 숨골), 용암함몰구, 수직동굴 같은 다양한 화산지형들이 산재해 있는 곳.
상록수인 동백나무 식나무 종가시나무 와 누린장나무를 비롯 양애 군락지, 숯가마터도 보였다.
광풍처럼 휘몰고 간 4.3 이전, 선흘리 같은 오지 산간마을에서 화전 일구며 살던 흔적들인 양애밭, 숯가마터.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 와중의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양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통한 서린 4.3 사태다.
여기도 예외 없이 일제강점기 때 구축해 놓은 갱도 진지, 병참도로 등 태평양 전쟁 당시의 군사 시설이 눈길 거슬리게 했다.
일본강점기 때 태평양전쟁의 방어기지로 삼은 제주라 일제의 군사 요새화에 따른 숱한 시설물을 만드는 일에 강제동원 됐다.
제주에 동굴진지만도 무려 488개나 된다니 맨손에 망치 들고 바위굴을 뚫어야 했던 고초 오죽 심했을까.
그 이전, 제주인들은 고려시대 몽골이 설치한 탐라통관부 지배하에서 백 년 세월을 숨죽여 살아왔으니....
오전 내내 하늘 푸르렀는데 예년처럼 이번에도 도중에 한바탕 자드락비를 만나긴 했지만 밀림처럼 숲 깊어 과히 젖지는 않았다.
구간에 따라 원체 활엽수 울창하게 우거져 나뭇잎들이 비를 가려주었기 때문이다.
이럴때 우산을 받쳐들면 우산은 훌륭한 악기가 돼 주겠지.
숲이 좋아서일까, 잎새에 듣는 빗소리가 마치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호젓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마도 이 분위기는 골짜기 풍혈에서 새어 나오는 서늘한 에어컨 바람 덕분 아닐지.
등산화 발걸음 옮길 적마다 밑바닥에서 전해지는 묘한 감각, 발밑 지하 공간에서 나는 여운 있는 울림.
마치 땅속이 비어있는 듯 내 발자국이 기이하게 되울렸다.
해설사 설명으로 용암길은, 일차 화산 폭발로 밀려내려 오던 마그마가 채 굳기 전 재차 폭발이 일어나 용암이 쏟아져 내리면 일차 용암층이 무너지며 골짜기나 동굴을 형성하게 된다고.
마그마가 흐르며 용암 거죽이 식어 굳어지자 아직 식지 않은 하부 용암이 먼저 식은 위쪽 용암 껍질에 압력을 가해서 표면이 부풀어 오른단다.
그 자리는 텅 빈 공간이겠고 빈 공간은 바로 동굴이겠다.
근처 땅 아래에는 만장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용암 동굴이 넓게 가지 뻗어 있다더니.
그러므로 빈 공간에 족적이 공명해 되울리는 거였다.
즉 바로 발아래가 허당이라는 얘기다.
요새 도로에 갑작스레 싱크홀이 생기면서 달리던 자동차가 곤두박질치며 지하로 함몰되던 뉴스가 상기됐다.
철광석보다 단단한 현무암이라 무너질리야 없겠지만 어째 좀 으스스했다.
그래도 짙푸른 숲 속엔 으름과 꾸지뽕 가시딸기 익어가고 이름 모를 버섯 여기저기.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벵뒤굴 주변에는 큼다큼한 풍열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곳곳에 서있었다.
복잡다단한 미로형 동굴로 전체길이가 약 4.5킬로에 달하는 벵뒤굴은 현재 폐쇄됐지만 굴 속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고.
특히 벵뒤굴은 2~3층 구조인데다 동굴 천장이 얇아 무너진 곳에선 하늘이 보인다는데.
숲길 벗어나자 예전 병참도로였던 듯 시멘트 도로가 나타났고 마을이 보였다.
이름은커녕 동서남북 구분도 안 되는 낯선 지역이지만 세 시간 여만에 만난 콘크리트 구조물이 반가웠다.
계속 비는 오락가락, 셔틀버스가 기다리는 선인동 사거리로 내려와 우르르 버스를 탔다.
우리는 너나없이 비 젖은 생쥐꼴로 꾀죄죄한 채 거문오름 방문자센터로 돌아와 출입증을 반납하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