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들어 하늘이 틔여오기에 석양을 보러 외돌개로 가던 중이다.
일곱 시 넘어가자 서녘은 어느새 설핏, 해가 져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벼가 얼마나 자랐는지 하논에나 가보자.
꿩 대신 닭이 아니라 이렇듯 도중에 맘 바뀌어도 서귀포에선 언제든지 얼마든지 대타가 기다린다.
하시라도 중간에 빠질만한 장소가 줄을 서있으니 선택의 폭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렇게 당도한 하논.
들머리 농가 뜰에 한창인 달리아, 꽃치자에 봉선화, 금계국도 사이좋게 어우러졌다.
살뜰히 가꾼 마당 옆 텃밭은 아예 초록 정원, 조경사 솜씨처럼 실팍지게 가꿨다.
사열식 하듯 줄지어 선 키다리 옥수숫대 우듬지엔 꽃 피었고 겨드랑이마다 수염 늘인 옥수수도 품었다.
진보라 가지와 방울방울 토마토 어느새 어여쁘게 맺혀있다.
야물게 붙들어 맨 고춧대, 한바탕 태풍이 수선 피워도 여긴 안전지대겠다.
들깻잎 상추 쑥갓 야들거리는 그 곁의 돌나물은 이미 세어버렸으나 그냥 놔뒀다.
부지런하고 섬세하고 정갈스러운 한편 모두에게 푼푼한 쥔장 성향이 읽혔다.
붓도랑 사잇길 따라 새로 놓인 매트길 느리게 걸어갔다.
벼포기가 바람 부는 대로 물결 되어 출렁거렸다.
평화스런 삽화처럼 초록 짙은 논두렁 여기저기 흰새들이 날아다녔다.
어스름 깃든 한라산 아래 옴폭한 하논 분화구는 백로 떼 놀이터로 변했다.
먼 기척에도 놀랜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들의 평화를 방해하면 안 되지, 슬며시 발길 되돌렸다.
예술의 전당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언덕길 올라서니 서녘에 빛 고운 노을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리는 부드럽고도 다사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