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탕으로 처서 치레

by 무량화

오늘도 여전히 무더웠습니다만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드는 절기인 처서였답니다.

처서(處暑)는 24 절기 중 열네 번째 절기로 한자를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 더위가 처소로 든다." 란 의미라지요.

서서히 여름이 퇴장하며 더위도 한풀 꺾이고 천지간에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가을을 맞이하게 되는 절기.

무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처서랍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기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하는데요.

이 속담처럼 날씨가 서늘해지니 모기의 극성도 사라져 가고 바야흐로 귀뚜라미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하겠지요.

농가에서는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란 재미난 표현이 있듯 어정 건들거리면서 혹서기 칠팔월을 보내고 나면 동동거릴 가을이 온답니다.

구월은 일손이 바빠 발 동동 구르며 지낸다는 말대로 농사일로 바쁜 철이 시작되는 거지요.

지금 이 시대야 거의 해당되지 않는 예전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에 집집마다 밭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베고 논·밭에 웃비료 주는 일도 이 무렵에 이루어진다네요.

불볕더위는 대체로 여전하긴 하나 혹여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거나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는 말도 있는데요.

벼 이삭이 패고 대추가 익기 시작하는 처서 전후하여 비가 내리면 결실이 실하지 못할 게 뻔하겠더라고요.

풍년이 들어야 혼사를 앞둔 큰 애기들 걱정 없이 혼수장만을 할 수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농어촌에 사는 것도 아니므로 절기를 따로 챙길 일도 없긴 하나, 극한 폭염 누그러지는 절기라서 무조건 반기게 되는 처서네요.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세시풍속을 되새기고 싶어 동지 팥죽 사 먹듯 친구랑 처서 특식을 사 먹었으러 갔어요.



처서에도 상징적인 음식이 있는데요.

여름내 땀 많이 흘려 약해진 기력을 보강하기 위한 절기음식으로 추어탕을 먹기도 하나, 서귀포 최고의 보양식 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더랍니다.


전에 한번 외가 친척들과 거기 가서 흑염소 전골을 먹었는데 담백하고도 깊은 맛에 매료됐었거든요.


그땐 명함도 챙겨 오지 않아 식당 이름조차 아리송, 다시 방문하려고 대충 검색해 봐도 못 찾겠더라고요.


올여름 무작스러운 더위에 진이 빠져 몸보신을 해야겠는데 전에 갔던 흑염소 식당을 못 찾겠다 했더니 아들이 그 얘길 듣자마자 득달같이 식당 두 곳을 카톡으로 보내왔지 뭡니까.


그중 한 곳 식당 내부 사진이 낯익더군요.


맞아 도원, 무릉도원의 그 도원이었고 고가의 분재와 실내장식이 특이했던 그 집 한눈에 알아보겠네.


어째 나도 검색을 해봐 쌌지만 못 찾았을꼬, 나이 든 사람 무시하는겨 뭐여! 버럭 하면서도 내심 얼씨구나 했지요.


예약차 전화를 걸려다 050으로 시작되는 이상한 번호라 이건 또 뭐꼬 싶어 알아보니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제공되는 가상번호라 하네요.


영업집에서 개인정보 보호 서비스를 받는 이런 번호를 사용한다는 게 좀 그랬으나 아무튼 통화가 되면서 금세 아는 목소리임을 파악하겠더라는.


더구나 식당 가까이 가자 한눈에 아, 맞네~소리가 터졌다는.


신창에 사는 김 선생과 대정에서 만나 그렇게 도원흑염소요리 전문점을 찾아갔는데요.


푹 고은 국물 아무런 잡내 없이 깔끔 담백한 맛에 신선한 야채류와 들깻가루 듬뿍, 푸짐하게 한 그릇 먹고 나니 눈이 확 떠지며 쳐졌던 기운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흑염소탕 탑탑하게 담긴 뚝배기 남김없이 싹 비워, 처서 치레 잘했네요.


체구도 작은데 대체 위장이 얼마나 크길래 저걸 다 먹어 치웠는지 암튼 놀랍기도 했으나 무리 없이 소화 순조로이 되었고요.


마침 딸내미가 엄마 체질에 흑염소가 맞으니 추석 무렵 흑염소 엑기스를 보내려 검색해 봤다고 하던 차.


광동제약부터 한의사 이경제 김소형 등도 각기 제 브랜드로 진액을 판매, 신중히 고르는 중인데 도원 역시 흑염소 진액 포장상자가 있기에 문의해 보았지요.


개별 체질에 맞는 한약재를 넣어 한 마리 7십만 원/반은 35만 원이라기에 여러모로 참작 중입니다.


탕제라 무조건 믿음이 가는 곳, 전폭적인 신뢰가 따라야만이 선택을 고려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 시골에서는 보통 처서에 애호박과 풋고추를 썰어 넣고 칼국수를 끓여 먹는 풍습이 있었답니다.

애호박 넉넉히 채쳐 넣고 청양고추도 쫑쫑 썰어 담박하면서도 매콤하게 칼국수를 끓였지요.


유년기, 외갓집에 가면 외숙모는 보릿대를 아궁이에 밀어 넣어가며 고르게 썬 칼국수를 훌훌 털어 부뚜막 무쇠솥 설설 끓는 멸치 국물에다 풀어 넣었지요.


일손 거든다고 꽃무늬 포플린 원피스 어린 생질은 주걱으로 김이 뿌연 솥 안을 휘휘 저어주곤 했고요.


그때 솥으로 곧장 떨어질 것 같던 얼굴의 땀방울을 옷소매로 쓰윽 훑어내던 외숙모, 새삼 그리워지네요.


은하의 강 보얗게 흐르고 북두칠성 또렷한 밤, 오동나무 아래 평상에서 잠들 때까지 옆에서 부채질을 해가며 옛날얘기 들려주던 외숙모....


올여름은 미증유의 기나긴 폭염에 이어 태풍 소식이 들리긴 합니다만 여전히 35를 웃돌며 맹렬한 기세로 늦더위 기승을 부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절기는 못 속인답니다.


그간 더위에 시달리느라 해쓱해진 심신 추스르고 심기일전,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가을 맞을 채비를 하려 합니다.

올 가을에는 컴퓨터보다 책과 좀 더 친해 볼 생각입니다만....




* 도원 흑염소 전문

* 전화 /064-792-4613

* 주소/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도원로 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