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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7. 2024

가까이, 아주 멀리


암록빛 강물이다. 깊이가 꽤 되는 모양이다. 너른 녹빛 띠를 이루고 유장히 흐르는 스쿨킬 강은 필라델피아 미술관 뒤편에 있다. 오래전 이 강변을 따라 노예시장이 섰다고 한다. 그 당시 배를 대기 위해 군데군데 박아놓은 아름드리 나무말뚝의 퇴락에서 풍상의 세월을 읽는다. 찰나의 한순간인 잠시, 가까운 눈앞 강가에서 아주 먼 옛적 역사를 더듬어본다.



1619년 네덜란드 범선에 실린 노예들이 북미 버지니아에 처음 닿은 이후, 19세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노예선이다. 면화며 담배를 생산해 내는 남부의 너르고도 기름진 대지. 허허벌판 같은 땅을 경작할 노동력이 절대 부족했던 미국이다. 애초엔 영국의 죄수들을 멀찌감치로 내몰았던 땅이다. 이후 살만해지자 유럽에서 신세계를 동경하며 물밀듯이 이주해 왔다. 그들 백인만으로는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못 미쳤다. 필요는 갖가지 묘수를 짜내게 만든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노예사냥. 아프리카 해변에서, 밀림에서 흑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온다. 그들의 잣대로 흑인들은 형편없이 열등한 미개인일 따름이었으니까. 저급한 식민지 백성이라며 조선의 소녀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성 노리개 삼던 일제의 정신대 만행이 그러했듯이.

 

흑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잡혀와 중죄인처럼 족쇄에 채워졌다. 그렇게 배에 실려 채찍을 맞으며 긴긴 항해를 하고 마침내 낯선 땅 노예시장에서 제각각 팔려 나갔다. 그 통에 부부가, 가족이 울부짖으며 뿔뿔이 헤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죽는 날까지 혹독한 노예살이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훗날 영국인 죤 뉴톤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성가를 회심(回心) 끝에 짓는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 팔아넘겼던 악랄한 노예상인 그가 무릎 꿇고 바친 참회곡인 것이다.



남북전쟁 후 비인간적인 노예제는 폐지되었다. 법적 제도적으로 노예란 이름은 사라졌으나 그 대신 몇 푼의 달러에 목매여 인간의 기본권을 포기한 채로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하는 응달 계층이 이 시대라고 없던가. 단언컨대 그것은 여전한 현상이다. 다만 요즘은 강제로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찾아온다. 물론 노동력을 제공하되 대신 응분의 보상은 받는다. 현대판 변형된 노예는 과거와는 달리 스스로 물질의 노예, 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티노,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이 풍요로운 기회의 땅이라며 이민 봇짐을 싸들고 꾸역꾸역 미국으로 향한다. 적법 이민이 어려우면 기를 쓰고 불법 이민이라도 감행한다. 감시의 눈을 피해 국경을 넘고 거친 파도를 헤치고 들어온다. 또는 비자 유효기간을 넘겨 서류미비자라는 신분상의 불이익과 불편을 감수하며 불체자로 남는 사람도 허다하다.



초기 이민자, 그들 대부분은 본국에서의 위치는 다 묻어두고 단순 육체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대륙횡단 철도 건설에 값싼 중국 노동력을 투입시켰던 것처럼 미국인들이 꺼리는 3D업종 일에 기꺼이 종사하는 것이다. 미국과 접경국인 멕시코의 경우 성인 노동력의 짜개반이 미국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불법 체류자로 사는 실정. 그러면서 불확실한 혼돈의 시기를 거쳐 옳게 정착하기까지에는 거개가 크고 작은 시련과 고통을 겪곤 하는 것이 이민 1세대다. 지난해 축구를 하다 뇌출혈을 일으켜 비명에 간 어느 불법체류 한국인처럼 제때 제대로 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불행을 당하는 이가 어디 한둘인가. 그처럼 신분 불안과 언어장벽의 이중고는 이민 초기의 힘든 삶을 더욱 가혹하게 짓누른다. 더구나 근자 들어 부쩍 각 주마다 강도 높게 불체자 단속의 고삐를 조여 가고 있다.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우리 어릴 적, 사진을 통해서 본 미국은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높이 치솟은 마천루만이 아니라도 이미 1930년대에 가구당 자동차가 한 대씩 있던 자유세계 최고의 부국이자 강대국이었으니까. 더욱이 육이오를 겪은 우리 세대는 선생님 키만큼 큰 통에 담긴 ‘미제’ 우유가루를 교실에서 배급받았고, 크리스마스 무렵엔 자선단체들이 보낸 사탕이랑 초콜릿에 정신이 팔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품게 된 미국에 대한 환상. 그 환상이 구체화되어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하여 혹은 자녀교육을 위하여 하다못해 마지막 피난처로 택해지는 곳이 미국이다. 아무튼 근면 성실하고 교육열이 높은 한국인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어 나가는 편이다.



이민자가 일군 나라 미국은 그러나 갈수록 이민자를 거부한다. 대량이민에 따른 부작용인 임금률 하락과 도시의 범죄화 거기다 테러에의 불안 등을 들면서 거칠게 반대하고 나선 것. 테러도 테러지만 한마디로 내 울타리 자꾸 조여드는 것도 싫고 내 밥그릇도 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민자는 필요한 나라가 미국이다. 지난 대선에도 양 캠프의 이민관이 선거의 향방을 가름한다고까지 할 정도로 이민문제는 주요 이슈다.



살아보니 결국 오십보백보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다 똑 같이 장단점이 있고 선과 악, 부와 빈이 공존하긴 마찬가지다. 美國, 과연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이기만 할까. 빛이 밝으면 그늘 또한 짙은 법. 하건만 제반 상황이 자꾸 어려워져 가는 한국으로부터의 탈출구로, 도피처로 이민 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오늘의 현실. 대내외적으로는 괄목할만한 발전상을 보이는 한국이다. 우후죽순처럼 쑥쑥 치솟는 도회의 빌딩 군, 수출 강국으로 부상하는 경제대국이자 외제명품의 소비천국이라는 한국. 그런데 대관절 왜 헬조선 운운하며 떠나려는 것인지, 과연 어디까지가 실상이고 허상일까.



멀리서는 한 편의 서정시로 느껴지던 강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깊은 암녹빛 강을 바라보자니 물빛만큼이나 마음도 착잡해지고 무거워진다. 항용, 가까이 보는 것은 멀리서 보았던 것과 다를 적이 아주 많다. 그래서 먼 빛이 아름답다 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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