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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7. 2024

먼 섬에서 꿈꾸다

설화 신비롭게 피어난 한라산이다. 백록담 위로 구름이 서너 점, 동천은 지중해처럼 푸르고 깊다. 표창되어 지중해를 겨누는 고사목 앙상한 가지가 사진에 긴장을 담는다. 황금분할을 염두에 둔 안정감 있는 구도, 조화로이 잘 짜인 풍경이다. 이 순간을 기다리기 위해 작가는 눈밭에서 얼마를 서성였을까. 마음에 드는 순간을 포착할 때까지 끈기 있게 그는 기다렸을 것이다. 적당한 구름이 배경인에 들어올 때까지. 설화에  심도 있는 음영이 깃드는 빛의 도움이 임할 때까지.                                                                  


   탄성  터지는 아름다운 설화를 만나기 위해 헛걸음인들 얼마나 쳤을 것인가.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 예측이 힘든 게 고산지대 기후의 특성이다. 거기다 적설기 등반은 위험부담이 따른다. 그렇지만 한겨울 높은 산에 오르지 않고는 설화를 만날 수 없는 노릇.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다음 촬영 장비를 지고 한라산을 찾는다. 푹푹 빠지는 영하의 눈 속, 물론 드러난 길도 없다. 은빛 정적과 동행하며 대강 눈대중으로 오르고 또 오른다. 등에 땀이 밸 무렵에 닿은 정상 인근, 장소를 물색한 다음 곱은 손으로 장비를 풀고는 구도를 잡는다.  마주 보이는 벽, 마지막 섣달의 달력 그림이다. 스며나는 시린 기운에 선뜩 한기가  든다.  그러나 정지된 한순간을 위한 작가의  긴 기다림을 떠올리자  기분이 숙연해진다.                                                                    


 


  사진을 하는 知人을 따라  경주에 있는 서출지 연밭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삼국유사를 화제 삼아 우리는 천천히 연못을 한 바퀴 돌았다.  그녀는 목백일홍 그늘짬에 멈춰 서더니 삼각대를 세웠다. 얘기를 나누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쉼 없이 앵글에 담을 표적물을 탐색했던가 보다. 제반 준비를 마치고도 곧 작업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연꽃잎에 이는 바람이 자기를 기다리고 물살 일으키는 소금쟁이가 떠나 주길 기다리고 무엇보다 알맞은 광선을 기다렸다. 그녀는 조급하지 않았다. 기다릴 줄 모르면 사진은 힘들다고도 했다.                                                       


 


  달력 사진 속에 오버랩되는 또 다른 기다림의 그림은 동해안의 간절곶이라는 바닷가 풍경이다. 이름만 되뇌어봐도 가슴이 어릿거리다 못해 메슥거릴 정도로 속이 울렁이는 간절곶. 한국을 떠나기 전 끝으로 간 곳이 간절곶이었다. 십수 년을 부산에 살았건만 인근에 그런 명소가 있는 줄 몰랐다. 간절곶, 기막히게  환상적인 지명만으로도 한 번은 꼭 동행하고 싶은 이들이 있었으나 나에게 시간은 더 이상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 아쉬움이 더해 한결 절절함으로 남는 간절곶이다.                                                  


 


  요란법석을 떨던 뉴 밀레니엄 행사 속에서도 별로 드러나지 않던 곳이나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간절곶. 그러나 내가 거기 닿은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파도가 높고 바람은 아주 찼다. 황혼녘이라는 시간대가 주는 묘한 애린함까지 어우러져 술맛이 제대로 날듯 했으나 한 여인의 뒷모습이 그 유혹을 물리치게 했다. 아이를 안고 바다를 향해 서있는 그녀는 박제상의 부인이라 했다. 바위 위에 하얗게 서서 저 멀리 일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간절한 비원이 녹아 간절곶인가.


                                                        


간절곶의 전설 못지않은 기다림의 애절한 실화가 이민사회에는 허다하다. 막상 지니고 있으면 별반 내보일 곳도 없으면서 갖지 못했을 땐 실생활에 여러 불이익과 불편과 심적 위축까지 겪는 영주권으로 인해서다. 저마다 속내를 풀어놓으면 각양각색의 곡절들로 소설 한 권씩 엮고도 남을만한 영주권에 얽힌 사연들. 한국에 계신 노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허다한 일이고 부부가 생이별한 채 수년을 떨어져 사는 집도 있다. 한국에 두고 온 자녀의 혼사에 혼주로 참석하지 못하는 부모며 아이를 제때 대학에 보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목도한다.


                                                                     


  한국에서 수월하게 영주권을 받고 건너오는 케이스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렇질 않다. 따라서 영주권을 신청해 놓고 기다리는 기나긴 세월 동안 별의별 일들이 다  생기기도 한다.  초청자의 사고로 중도에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도 보았다. 몇 해 공들였다가도 스폰서에게 문제가 생겨 일이 꼬이는 사례도 있었다. 그 와중, 영주권과 관련된 이민 사기가 숱하다고 들었다. 교묘한 사탕발림에 속기도 하고 급한 마음에 앞뒤 따지지 못한 갈급증이 함정으로 빠져들게도 한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구 허방을 딛게 되는 것이다. 실제 이민살이 여러 해째임에도 여전히 신분 확보가 안된 사람들이 주위엔 꽤 많다. 그중 한 이웃은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차라리 기다림을 즐기며 지낸다고 한다. 나름대로 현명한 처신이다.                                                  


 


지난여름. 다른 해에 비해 유별나게 매미소리가 시끄러웠다.  찌익- 하는 단음으로 성하의 단풍나무숲을 흔들어대던 붉은 눈 매미.  미 동부에만 서식한다는 그 매미는 87년에 부화되어 땅속에서 무려 열일곱 해를 지내다가 지난여름 일제히 성충이 되어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매미로서의 생애는 고작 십수 일. 허락된 그 기간 동안 부지런히 짝을 찾아 교미를 한 다음 죽음을 맞음으로 섭리를 완성시킨다는 매미다.


                                                     


그 사이, 굼벵이는  예리한 호미 날에 찍힐 수도 있었을 테고 허기진 새의 먹잇감으로 채일 수도 있었으리라. 가뭄으로 메말라 온몸이 타들어 갈 때도 있었겠고 홍수로 물에 잠겨 숨 막힐 적도 있었을 것이다. 고통과 질곡의 시간을 견뎌내고 마침내 허물을 벗기까지의 긴 기다림. 17년이라면 아기가 태어나 고등학생이 되고 청년이 장년으로 바뀌는 세월이다. 보잘것없는 버러지로 꿈틀대며 어둡고 축축한 땅에 묻혀 그 장구한 나날을 지탱해 낼 수 있게 한 것. 그것은 ‘꿈을 갖고’ 라거나 ‘의지로 견디거나’ 하는 개념 이전, 기다린다는 생각마저 놓아버리고 그냥 무심히 살아낸 것은 아니었을까.


                                              


기다림은 존재한다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이며 나아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하여 생이 영위되는 동안 누구에게든 기다림은 있게 마련이다. 기회를 기다리고 내일을 기다리는가 하면 그리운 이를 기다리고  메시아가 올 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제각각 빛깔과 모양이 다를 뿐이다.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축복일 수도 있으나  때로는 지독한 고통이기도 하다. 일각이 여삼추로 느껴질 정도의 피 말리는 절절한 기다림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또한 기다림이 물거품 되어 허망히 스러져 버렸을 때의 아득한 절망감이라니. 그래도 기다림은 궁극엔 희망과 통한다. 미래에의 꿈으로 저마다 내밀히 품고 있는 각양각색의  기다림 들.  끈기 있게 기다려서 이룰 수 있는 성취라면 묵묵히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덕목이겠다.  나아가 즐겁게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한 것. 그보다 기다린다는 생각마저 여윈 무심의 경지야말로 진정 가닿고 싶은 경계이다.


                                               


 그렇게 먼 섬에서 또 다른 기다림을 즐기며 나는 무심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2004 미주중앙일보​ 뉴욕판-


​                           ***


며칠전 뉴스를 훑다가 위 글이 떠오르기기사 캡쳐.

올해 매미떼 수백조 마리 발생하는 미국…221년만에 주기 겹쳐 https://www.seoul.co.kr/news/international/USA-amrica/2024/04/21/202404215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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