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장을 읽다가 깜깜하게 막히는 단어가 있으면 얼른 영어사전을 두드린다. 단어 뜻을 찾은 다음 문장을 연결시켜 읽고는 다시 서너 번 반복해서 새긴다. 그처럼 분명 뇌의 저장창고에 잘 간수해 두었는데 한두 주쯤 지나 다시 그 문장을 되읽을 때 뜻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고 아리송해진다. 어느 땐 완전히 생소한 알파벳의 조립체일 따름이다. 할 수 없이 또 사전을 찾는다. 아, 그래, 맞아, 이 뜻이었지.... 번번 이 모양이다. 노화란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신체기능이 점점 쇠퇴하는 것을 이른다.
한심스럽다. 정말이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암기력이 분명 예전 같지는 않다. 원래 나는 수학에 약한 편이었다. 말하자면 역사나 생물 등 암기과목은 거의 만점을 맞으나 수학은 완전 밑바닥 권. 그래서인지 숫자 개념도 별로이고 이재에 밝지도 못하다. 요즘엔 여기저기 등록된 각기 다른 패스워드도 적어놓지 않으면 까먹어버려 애꿎은 나이 탓만 한다. 나이 듦에 따라 지능이 저하된다는 생각은 두뇌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해프닝이라 함에도 자꾸만 책임 전가하듯 나이 탓에다 모든 죄를 덮어씌운다. 허나 뇌세포는 쉼 없이 재탄생하면서 평생 동안 성장하는 기관이 아닌가.
이처럼 두뇌는 나이 먹음에 따라 차츰 노화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연륜이 더해질수록 새로운 회로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두뇌다. 백세 넘은 김형석 교수의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삼촌이 읽던 책을 물려받아 그분의 수필집을 본 것이 육십 수년 전인데 지금도 집필 중인 책이 있다고 한다. 영상 속 얼굴만 아니라면 꼿꼿한 외모로도 노인티가 별로 나지 않았다. 목소리도 정정해 그 연세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잘 알려진 대로 미켈란젤로의 경우 90대에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을 설계하였고, 베르디는 80세에 대작 오페라 <팔스타프>를 만들어냈다.
노년은 완숙기에 들어서며 지능보다 지혜로써 균형 잡고 살아가는 시기다. 이는 디팩 초프라라는 의학자가 쓴 <사람은 왜 늙는가>에 나와있는 내용이다. 책의 부제는 노화에 대한 상식과 편견을 뒤집는 '내 몸 탐사 보고서'다. 저자는 수명으로 노화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개념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타임지가 '20세기 100대 인물'로 선정한 디팩 초프라의 책을 통해 최근 서양의학, 양자물리학, 인도철학 등을 전방위적으로 통찰하여 몸에 대해 탐사한다. 노화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혁명적 사고의 전환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아울러 노년을 가슴 뛰게 만드는 웰에이징 매뉴얼을 공개하고 있다.
웰빙, 웰다잉과 더불어 이젠 '나이를 잘 먹는' 웰에이징이 행복을 위한 화두가 되고 있는 시대다. 그 바탕에는 생로병사라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화와 죽음은 흔히 자연의 섭리라 말하면서도 일면 두려워하는 그. 자동차의 엔진도 세월이 흐르면 수명을 다해 멈춘다. 하물며 유한한 생명체인 사람이 늙는 건 당연지사라 생각한다. 여기서 늙는다는 건 단순히 피부의 노화인 주름살이나 흰머리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책은 노화에 대한 일반의 상식을 뒤집는다. 지은이는 한 인도 철학자의 말을 따, 논지를 압축한다. "사람들은 늙고 죽어간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늙고 죽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는 노화의 비밀은 물리적 신체가 아닌 바로 우리들 의식에 있다고 단언하며 물리학, 철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노화를 고찰한다. 따라서 노화라는 우주적 미스터리를 정복할 비밀이 의식의 변화에 있다고 말한다. 하버드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고대 인도의 치유 과학인 아유르베다와 현대의학을 접목시킨다. 그는 인간 노화의 원인을 다름 아닌 마음에서 찾아낸다. 마음의 성장이 멈추는 순간 진짜 노화가 시작된다고 그는 확언한다.
그는 인간의 연령을 시간적 연령, 생리적 연령, 심리적 연령, 세 가지로 나눈다. 나이가 든다 해서 모두 똑같이 늙는 것은 아니라고도 한다. 그는 지나치게 감정을 억제하는 것, 외로움, 좌절감, 근심, 분노, 직업에 대한 불만, 경제적 불안감이 노화를 부추긴다고 보았다. 반면 솔직하고 친구를 잘 사귀며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는 것, 직업에 대한 만족감, 경제적 안정감은 노화를 늦춘다고 했다. 노화를 촉진시키는 부정적 요인으로는 좌절을 꼽았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노화가 온다는 식의 평범하고 진부한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부정적인 인간 심리 탓에 노화가 온다는 독특한 지적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책은 노화현상은 학습된 것이라면서, 늙지 않기 위해서는 늙게 만드는 행동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노화라는 미스터리를 정복할 비밀이 신체가 아닌 우리 의식에 있다고 그는 단정 짓는다. 특히 가슴 뛰는 노년을 맞기 위해서는 마음의 성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마음을 바꾸면 몸의 변화까지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우리는 '몸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몸을 지배하는 의식을 지닌 존재이니 부디 깨어나서 자기 삶의 창조자로서 주권을 되찾으라'고 말한다. 인간을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인체는 하드웨어에 해당하지만 인체는 무한 지능 소프트웨어인 의식의 지시를 받는 생명체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몸을 마치 컴퓨터의 하드웨어처럼 여기고 노화 프로그램에 자진해서 자신을 내맡기는 거라고 보았다.
현재 우리는 고령화 시대에 당면해 있으면서도 노화현상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며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 인식은 폐차장에서 종말을 맞게 될 고물 자동차의 이미지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세월과 함께 낡아가는 물건이 아니다. 오히려 한층 더 지혜로워지고 끝없이 성숙해 가는 생명체를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 서문에 밝힌 바대로 노화는 수많은 요인이 어우러져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복잡한 과정임을 인식한다면 노화과정을 늦추거나 역전시킬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상적인 노인은 몸이 유연하고 영혼은 지혜롭다. 또한 사회에 짐이 되는 퇴물이 아니라 살아온 세월만큼의 깊은 지혜가 쌓여있다. 그로써 젊은 세대를 이끌어주는 사회의 멘토가 될 수 있다. 책 흐름이 인도철학에 경도돼 더러 현학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이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눈앞에 놓인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슬기롭게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최종 판단은 각자의 몫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