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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10. 2024

매일 걷는 까닭은?

날마다는 아니지만 기상조건만 괜찮다면 거의 매일 밖으로 나간다. 자연이 날마다 기적 같은 신비스런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계절의 여왕이란 찬사 괜히 나왔을까만은 특히 오월의 산과 들과 바다는 어제와 다른, 며칠 전과는 물론 더 달라진 경이로운 모습으로 항상 환대해 마지않는다. 어느 연인이, 어느 가족이 추호도 변덕스러운 감정 같은 거 한순간인들 내비침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리 여여한 얼굴일 수 있을까. 기본 속성상 다양한 감정이 의식 무의식을 넘나들며 무시로 춤춰대는 예민한 구조의 인간 아닌가. 언제라도 환대해 주기로는 자연만이 오롯하다.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똑같은 일출이지만 수평선 구름층에 따라 나날이 다른 얼굴이다. 갯바위 어르고 쓰다듬다가 한껏 후려치는 파도 또한 한 번도 같은 모습이 아니다. 그런즉 번번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들풀과 들꽃은 서두름 없이 때맞춰 고개 들고는 순서대로 차곡차곡 피어났다 고요히 스러진다. 바람 맛 시시때때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매화꽃 피면 매향을 담고 찔레꽃 피면 찔레 향기를, 오늘은 귤꽃 내음 그윽이 품은 바람결이다. 그 무엇보다 더 감격스러웠던 건 단연, 은은히 끌어당기는 해당화 향과의 해후. 바닷가이기에 여름철 되면 행여나 볼까 하는 기대는 있었지만 아직 일러 생각지도 않았다. 헌데 금모래해변에서 해당화꽃과 조우하자 뜻밖이라 한층 더 반가웠다.​



고향땅 충청도 외가는 서해안을 끼고 있어 어릴 적부터 해당화를 가까이했다. 꽃도 곱지만 향기가 매우 좋다는 걸 그때 알았다. 찔레나 장미보다 가시가 촘촘한 데다 더 날카롭다는 것도. 바다 막아 만든 간척지 너른 벌을 지나면 큰 제방 둑이 길게 나있었다. 듬직스러운 제방 둑 곳곳에 빛깔도 선연한 꽃분홍 꽃잎 해풍에 하르르 나부끼던 해당화. 유년의 갈피 외에도 해당화, 하면 마른 꽃잎으로 눌러둔 안면도의 추억 아삼삼히 이어진다. 걸스카우트 하계수련 차 안면도해수욕장을 갔었고 그곳 모랫길 따라 군락 이룬 해당화 향기에 소녀들은 단체로 최면이 걸렸더랬다. 현지 학교 교실을 빌려 일 주간 수련회를 가졌지만 바닷가 해송 그늘로 즐겨 내달렸던 우리들. 그로부터 세월은 흐르고 흘러...



해서인가, 지금도 그 습(習)이 남아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면서부터 내심 두근거리다 못해 속이 울렁거린다. 오늘은 또 어떤 놀라운 선물이 기다릴까 하고. 해서 마음은 연애라도 하듯 설레고 발걸음 급해진다. 눈에 담기는 모든 자연을 오롯이 향유하며 시간 셈하지 않고 유유자적, 발길 이끌리는 대로 걷고 또 걷는다. 차 타고 휑하니 달리면 만날 수 없는 것들이 조근조근 말을 걸어온다. 솟구쳐 나는 멧새 지저귐에는 서툰 휘파람으로나마 응답해 준다. 색감 달리 한 채 연두로 겨자색으로 부푸는 눈엽을 그윽한 눈길로 쓰다듬는다. 새로이 피어난 꽃을 만나면 멈춰 서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동시에 이런저런 기억이며 인연들이 되살아 사연 술술 풀려나온다. ​


도심 조금만 벗어나면 이렇듯 지천이다 못해 온데 흥건한 봄기운. 외가에 가듯, 고향 나들이 가듯 오월 자연에 취해 걸으니 마치 젊은 날 풋풋한 감성처럼 말랑해지는 미묘한 느낌. 미풍에 감겨오는 싱그러움은 꽃내음인가 풋내인가. 춘흥에 겨워 겨워 도연해지는 기분. 어느 땐 자신도 모르게 들뜬 환호성을 보내기도 하고 콧노래 흥얼거리기도 한다. 금아 선생 글이 아니라도 오월 안에 내가 있어 좋다. 정말 좋다. 그렇게 매일매일 기적과 만나며 매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음에 감사! 나날을 경이로 채워주는 자연 속에서 날마다 환희를 맛보는 일상, 축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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