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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10. 2024

지귀도, 나의 이어도

서귀포 앞바다에는 무인도가 몇 떠있다.

범섬, 문섬, 섶섬, 지귀도가 그들인데 거처에서 범섬 빼고는 다 빤히 보인다.

중섭형 덕에 잘 알려진 섶섬이 가장 크게 부각되지만 이름 탓에 소설 한 편 궁굴릴 거 같은 지귀도는 늘 아득하고 아련하다.

폭풍우 치는 날이야 물론이지만 풍랑 심한 날도 숫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가뭇없이 사라지고 마는 까닭은, 동산만 한 구릉도 없이 널빤지 쪽처럼 얇으레하게 떠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섬 모양은 동서 길이가 긴 타원형이며 평지로 조성된 지귀도는 정상의 높이가 14미터라니 그럴 만도 하다.

나지막해서 더 가마득 어렴풋하고 어쩐지 감성의 현 아릿하게 튕겨 낸 울림 같아 슬픔이기도 한 섬.  

환상 속의 섬이듯 멀리서 아리아리한 느낌으로 지켜만 본 지귀도. 해서 그 섬은 내 마음속 이어도이기도 하다.

이상향으로 구전되는 전설의 섬 이어도이므로 장소야 어딘들 어떠랴.


제 이어도는 우리나라 남단 마라도 남서쪽에 떨어져 있는 '수중 암초'다. 그 위에다 종합해양 과학기지라는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는데.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속하는 무인도인 지귀도.

지귀도(地歸島)를 한자풀이하면 ‘땅이 바다로 들어가는 형태’라는 뜻이듯 섬의 지형이 딱 그러하다.

일명 지꾸섬, 직구섬이라고도 부르며 어마무시한 거구였던 전설 속 설문대할망이 한 다리를 척 걸쳐놓았다던 섬이다.

완만한 침강해안으로 이뤄져 수심 얕아 위험 부담 적은 갯바위 낚시터란다.

특히 손맛 좋은 뱅어돔 돌돔과 다금바리 낚시터로 소문났다.

해양생태계가 훌륭해 스킨 스쿠버들이 아끼는 명소 중 하나. 과거에는 통일교 소유였다는데 지금은 글쎄다.

암초들로 형성된 해안이라 해조류와 패류, 갑각류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오월이면 인근 주민들이 톳을 채취하러 들어간다고.

섬에는 억새풀과 띠 땅채송화 방가지똥 해녀콩 갯기름나물 갯메꽃 등이 무성하다고 한다.

우묵사스레피  동백나무 아왜나무 순비기나무 같은 해풍에 강한 나무들이 조밀하게 자생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현무암질 암반 해안에 천연 연못도 수십 개 산재해 있으며 토끼가 흔한 섬인데 짧게나마 도로도 나 있단다.

효돈중에서 다문화가정 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나와 기상만 받쳐주면 향하는 곳이 쇠소깍이다.

비경 품은 쇠소깍에 취한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홀로 그윽이 지귀도를 바라보기 위해서다.

저리도 짙푸르게 우거진 숲에는 어떤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날씨 좋은 날은 지귀도에 하얗게 밀리는 파도와 흰 등대야 우리집에서도 뵌다.

걸세악 전망에 크게 감탄한 것은 지귀도가 아주 또렷하게 내려다보여서였다.

그때 섬안 가득 밀림처럼 짙은 숲 빽빽하다는 걸 알았다. 그제야 얄따란 널빤지 쪽에 비로소 무게감이 보태졌다.

오늘은 지귀도를 자주 곁눈질하며 생이돌이 있는 게우지코지를 지나 보목까지 걸었다.

걷는 내내 줄곧 왼편짝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지귀도가 따라붙었다. 하필이면 심장 가까운 좌측에서다.

이심전심이듯 이번엔 쇠소깍에서도 생이돌에서도 보목에서도 지귀도가 저만큼 먼발치에서 나와 동행해줬다.

짝사랑하는 연인 둘레를 돌면서 집요하게 지켜보면 스토킹이 되겠지. 하지만 심화요탑(心火繞塔) 설화 속 선덕여왕 사모한 지귀의 사랑이라면 어떨까.


한자로야 무엇이 되건, 음(音)이 같은 지귀다. 아마도 그래서였을지 모르겠다.

지귀도에는 대한민국 영해 기준점 표식이 있다고 한다. 국가가 관할하는 해역을 표시할 때 기준점으로 삼는 곳이라니 주요 표식물이다.


19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에 의거해 이 기준점으로부터 바다 직선거리로 잰 지점들을 연결해서 관할 해역을 정하는 것이라고.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다. 영토와 이어진 바다의 영역으로서 썰물 때 해안의 저조선을 기준으로 12해리(1해리는 1,852m)까지 인정하고 있다.


 표식을 꼭 보고는 싶었다. 하긴 작정하고 나서면 가볼 수 있는 섬이다. 무인도라 정기선은 없지만 하효포구 보목포구 공천포항에 가면 배편이 있다.


자리돔 양식장이라 할 만큼 물 반 고기 반인 자리돔 주산지여서 보목에서는 제철이면 고깃배가 뻔질나게 내왕한다.


스쿠버 하는 이들을 수시로 실어 나르는 봉개낭이란 배도 대기하고 있는 보목이다.

그런데 왠지 멀찌감치서 바라만 보며 아껴두고 싶은 섬이 지귀도다.


보목에서 차에 오르기 전, 끝으로 한 장 더 지귀도를 사진에 담았다. 때마침 만월에 가까운 달이 아직 푸른 중천에 떠있었다. 이런 날이야말로 자리물회에 탁배기 한잔 그럴싸하겠다.


해가 곧 이울 해참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바다에 은근스레 어리는 노을빛에 취해들 만한 지금은 오월. 해풍마저 결결이 부드러운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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