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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10. 2024

사색의 공간, 산간 폐교에 잘 가꾼 정원이 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자연과 사물이 어울려 완성시킨 풍경이었다.

정원을 걷노라면 절로 사색 깊어지게 된다.

거기에서는 그렇게 인간 본연의 순결한 정신과 해후한다.

본질과의 조우다.

김영갑갤러리, 알만한 이는 다 아는 곳.

발밑에서 사각거리는 마사토 소리가 젊어 떠난 영혼의 안타까운 셔터 소리 같다.

루게릭에 사로잡혀 셔터조차 누를 손가락 힘이 없어지는 일, 생각사록 참 먹먹하다.

신록의 잎잎 윤기 넘치는 계절에 찾은 건 천만다행이다.

생기 찬 오월이기 망정이지 쓸쓸한 만추에 왔더라면 추연한 정서에서 쉬 헤어나지 못할 듯하므로.

아마도 며칠은 나른한 몸살기 치러야 할 거 같으니까.

일단 밖에서 한껏 싱그러운 신록 빛으로 기 충전을 시키고 천천히 갤러리로 향하기로 했다.

제주에 취하고 오름에 빠진 젊은이가 용오름 사진 신들린 듯 찍었다는데...

외진 삼달국민학교 폐교 터를 얻어 두모악갤러리 만들어 놓고는 마지막 혼신 다해 정원 가꾸다가 떠났다는데.....

'잘 가꾼 정원'으로 선정된 이력을 보나 따나 온 열정과 성심 쏟아부어 조성한 표 역력하다.

화목 한 그루 들꽃 한 무더기도 허투루 배치하지 않았다.

무심코 내려놓은 듯 한 화산석이며 분재 같은 나무 하나마다 일일이 앉을자리 가려 알맞게 들어앉혔다.

얘네들, 수도 없이 쓰다듬었을 눈길 손길이 느껴져 애연해진다.

헤살 부리듯 얹어놓은 토우 언저리에는 동심으로 사는 벗의 웅숭깊은 정이 배어있다.

겨잣빛 햇잎마다 참기름 바른 듯 빛나는 감나무엔 감꽃 숨어서 수줍게 미소 짓는다.

소담스러운 찔레 덤불 흰꽃 향기롭고 때죽나무 조롱조롱 매달린 새하얀 꽃봉오리 귀여웁다.

두어 바퀴 앞마당 정원 따라 걷고는 후원에 들어 또 한참을 걸었다.

무인 찻집 대신 오죽 숲 옆 공터 잔디밭 테이블에 앉아 느리게 기우는 오후 햇살과 헤작이다가 천천히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산간 폐교에 꾸민 김영갑 갤러리. 사진보다 먼저 시선을 끈 그의 글부터 읽었다.


제주에 홀리다》


'소리쳐 울 때가 더 아름다운' 제주바다를 처음 만나곤 열병을 앓았다.

지독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소름 끼치는 그리움 때문에

두 집 살림하듯 오가는 것으론 갈증만 더할 뿐이어서 서울 살림을 접고 아예 제주에 둥지를 틀었다.

신내림 받은 무녀처럼 섬을 헤집고 다니며 제주의 얼과 속살을 카메라로 받아 적었다.

중산간 마을에서는 단편처럼 살다가는 쪽달과 들벌레 야윈 곡소리, 현무암 쪼개는 마른번개를 담았다.

용눈이오름 흐벅진 굼부리에 들어가서는 카메라를 놓고 하루 종일 바람과 살았다.

시간이 갈수록 영토가 늘어났다.


-김영갑의 노트 중에서-


산간 폐교의 교실을 개조해 만든 전시실을 느릿느릿 돌면서 자연 스러이 든 한 생각.


미쳐야 미친다, 했던가.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무언가 한가지에 몰입해 일생을 바친다는 것.

몰입은 황홀한 매혹이다.

아니다.

그에게 몰입은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이었다.

제 신명에 겨워 홀로 쏘다니다 보면 모든 걸 잊었다.

야시에 홀리듯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그에겐 있었다.

마음 설레며 정신없이 빠져들면 다른 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법.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돈이 생기면 필름과 인화지를 샀다.

허기지면 밭두렁의 당근이고 고구마를 뽑아서 끼니를 때웠다.

바람을 안고 초원 떠돌며 제주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남자.

루게릭병에 잡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웠다.

거동은커녕 셧터 누를 힘조차 없고 목을 돌리는 것마저 불편했던 육신이다.

그 몸으로 폐교가 된 삼달분교 안팎을 직접 고르고 손질해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교실 벽과 공간을 다듬어 놓자 사진을 걸 수 있는 갤러리가 되었다.

운동장에 나무와 야생초 심었고 돌 주워다 둥글게 단 쌓아서 정원을 꾸몄다.

외진 곳에 문을 연 갤러리에 사람들이 찾아왔다.

성읍마을에서 성산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삼달리라는 산간 마을.

문 닫은 국민학교에 2002년 여름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오픈했던 것.



 

전시실에 들어 영상을 보는 내내 심곡 먹먹하다 못해 쩌르르해졌다.

용눈이 오름 사진만도 천여점, 그중에서 작품을 추리려니 너무 부족해 성에 안 차더라는 그의 치열함 앞에 먹먹했다.

루게릭으로 사위어 가면서도 끝까지 닿아보려 했던 건, 제주의 외면이 아닌 제주의 정신임을 깨닫자 전기 쐬듯 짜르르.

그가 만들고 싶은 공간은 대중적이기보다는 진실로 뭔가를 느끼려 하는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라는 말이 수긍됐다.

단순한 동선의 갤러리를 돌며 숙연해졌던 건, 요절한 사진작가의 짧은 생애가 안타까워서만도 아니었다.

앞뜰 감나무 아래 뼈를 묻었다는 그는 미라처럼 푸석거리는 육신 벗고 훨훨 자유로워졌을 테니까.

청량한 새소리 가득 찼어도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은 적요로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지향없이 떠도는 바람, 능선 완만한 오름, 갈대 메마른 초원, 파도 일렁이는 바다, 숲을 배회하는 안개.

한결같이 다 고적해 뵈는 까닭이었다.

제주를 구성하고 제주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이 왠지 모를 쓸쓸함으로 다가와서였다.

신록의 봄을 즐기려 경쾌한 왈츠 스텝으로 몰려다니는 관광지의 인파는 어쩌다 설핏 들러 휘리릭 돌다 가면 그만.

평화로워 보이는 '구름 언덕' 연작 시리즈의 한 그루 나무 사정없이 회초리질 하는 바람 거칠다는 걸 그들도 알까.  

삶은 그렇듯 비명도 지를 수 없이 아플 적 있는가 하면 환희의 순간도 있는 거라고 발음 어눌하게 들려주는 그.

제주 섬에 그는 지금도 살아있다.

밤새워 별을 쳐다보던 그 오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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