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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11. 2024

즉흥환상곡이듯 후다닥 차린 식탁

주말 아침 일찍 위미항으로 나갔다.

벌써부터 가보고 싶던 지귀도에 건너가기 위해서다.

남쪽 창 너머로 마주 보이는 섶섬과 제지기 오름 그리고 지귀도.

지귀도는 무인도다.

파도 거친 날은 하마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 듯 나지막한 섬.

섬 주변 온통 제주볼락, 다금바리 같은 어종이 바글대는 낚시 명소인 데다 자리돔은 숫제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한다.

바다낚시꾼과 스쿠버들이 즐겨 찾는다는 섬을 가려고 하는 건, 관심 가는 볼거리가 있어서이다.

그 섬은 정기적으로 다니는 배편이 없어 낚싯배를 이용해 들고 난다.

지난 주말에 왔을 때는 풍랑이 일어 출항을 못한다 했다.

오늘은 옅은 운무 속에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

도착해 보니 이미 여덟 시에 낚시꾼들로 만선이 되어 배가 떠났다고 한다.

다음 배편인 정오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포구 구경에 나섰다.

언제 어디를 가든 시간 때울 즐길거리나 심심풀이 구경감이 나타나므로 무료할 새란 없다.

방파제 쪽에 밤샘 조업을 마친 고깃배가 귀항해 그물을 털고 있었다.

어떤 생선을 잡았느냐 물으니 횟감이 되는 고급 어종 전문이란다.

그때 부부가 탄 트럭이 부르릉, 가까이 차를 대고는 선주에게 생선 어딨냐고 묻자 열쇠를 내어준다.

냉동고를 열어 수북 채워진 얼음을 제치고 생선이 든 컨테이너를 들어낸다.

때깔 고운 생선들이 똘망한 눈으로 우릴 바라본다.

개중엔 아직도 살아서 아가미 뻐끔대며 꼬리 뒤채는 녀석도 있다.

부부가 컨테이너를 번쩍 들어 자기네 생선 함지에 쏟는다.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귀공자 타입의 황금 고기 한 마리.

어항 속 금붕어보다 한결 멋지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주저치 않고 덜컥, 만원 주고 그 생선을 샀다.

생선을 장만해 뭘 어찌할 건지 여타 생각도 계산도 없이 무작정.

즉흥적으로 덜커덕 생선을 사버렸으니 지귀도는 이미 물 건너갔다.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오면서 그때부터 대략 난감, 이걸 어쩌지?

도마며 식도며 냄비 등 부엌살림이라는 게 몽땅 소형이라 소꿉질 수준인 주방이다.

11시에 교회 가야 한다며 집에 있던 현주씨에게 일단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집으로 가니 기다려 달라고부터 했다.

지귀도에 간다고 나선 사람이 느닷없이 돌아온다고?

왜요?

위미 포구에서 아주 예쁜 생선을 한 마리 잡아서 데려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예쁘면 우리가 키워요, 대책 없는 그녀 말에 터지는 웃음보.

바닷고기를 무슨 재주로 키우노, 거기다 냉동실 신세를 져 이미 숨넘어갔을 텐데.

요셉 취미는 바다낚시다.

부산 살 때 주말마다 완도 진도까지 원정을 다녔다.

심해에서 횟거리 낚아와도 본숭만숭, 우리 식구는 회라는 걸 당최 못 먹었다.

그랬는데 이제는 잡식성, 회도 좋아하고 돼지국밥도 즐긴다.

암튼 생선 다룰 일이 목전의 난제,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횟집에 가 사정사정계제도 아니다.

하여 생선 비늘 한번 쳐본 적 없는데 엉겁결에 칼잡이가 될밖에.

큰일 덜컥 저지르고 만 것도 자신이니까.

막상 일이 닥치니 예전에 어깨너머로 본 생선 다루던 정경을 재연해 내기에 이르렀다.

지느러미를 정리하고 비늘을 치고 내장을 걷어내고 몸통 양쪽을 저며서 회로 뜨고....

키친타월로 닦아가며 차근차근, 예리한 회칼은 아니지만 조심조심.

어두일미, 대가리와 살점 붙은 뼈를 전골냄비에 넣고 지리탕 끓일 준비도 마쳤다.​

그 사이 현주씨는 무 깻잎 초고추장 과일을 사 왔다.

도마에 회를 올리고 레몬즙도 뿌리고 여러  찬그릇을 진설하고... 브런치 타임의 즉석 회 파티다.


차려놓고 보니 우리가 봐도 멋졌다.

자연을 불러 모아 빠른 템포로 또르르 굴러가는 즉흥환상곡처럼 즉각 차려낸 먹음직스러운 식탁.

7층 한선생을 초대하려 전화를 걸었으나 그녀는 부재중이었다.

전면 바다에 뜬 섶섬까지 전망 끝내주는 12층 호스텔 라운지에서 그냥 우리끼리 성찬 즐기기로 했다.

고운 색깔과 준수한 미태에 홀려 흥분된 바람에 관등성명 묻는 것도 잊은 채 데려온 한미모하는 바다의 선물.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황돔회라 명명한 회는 식감 쫄깃하고 맛은 유난히 달았다.(아들이 유튜브에서 찾아내  정식명칭을 알았음 -붉벤자리)

간밤에 한선생이 고 온 파프리카, 황선생이 채취해 온 번행초와 방풍나물에다 쥔장인 삼춘이 올려 보낸 멸치볶음과 마늘쫑무침에 톳까지.

쑥을 넣고 찰쌀가루 녹말가루 밀가루 풀어 찌짐도 두 쪽 얌전하게 부쳤다.

회는 생각보다 양이 많아 그만으로도 충분히 배 채워졌으나 시원한 지리탕 한 대접에 톳밥 한 공기도 깔끔하게 비워냈다.

가공식 전무한 순수 자연식이라서인지 그럼에도 속은 편했다.

잔치 뒤끝의 노곤함으로 오수가 밀려와 나른했다.

조촐하나 부족함 없이, 그 무엇에도 걸림 없이, 무애의 경지에서 노닐며 신선놀음하는 요즘, 곤하면 어느 때건 잠들면 되느니.

오늘 하루도 충만했던 자유인의 감사 일기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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