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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11. 2024

이바구를 품은 초량 돼지갈비 골목

부산 구석구석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올라오면 초량이다.

부산역 건너편으로 여기서 상해거리와 텍사스 골목, 초량 돼지갈비 골목이 바로 이어진다.

일단 먹자골목 돼지갈빗집에 들리기 전, 먼저 초량 이바구 길 한바퀴 돌기를 권한다.

산복도로까지 죽 둘러보고 나면 자동으로 시장기가 돌테니까.

시장이 반찬이라고 허기가 질 때 먹으면 꽁보리밥도 꿀맛이요 배 꺼질새 없이 먹어대면 어떤 산해진미 대령시켜도 시큰둥.

먹거리 뭐든 귀한 거 없이 풍요로운 요즘이야 생의 최대 화두가 다이어트인 시대다.

불과 반세기 전인 1950년대로 돌아가 보면 피란지 부산엔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일거리 잡지 못해 끼니 간곳없어 배곯는 일이 다반사였다.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얼기설기 판잣집을 짓고 초량 까꼬막에서 굶기를 밥먹듯하며 억척같이 살았다.

그나마 살림이 핀 것은 전쟁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로 외국의 원조 물자가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면서다.

배에 싣고 온 물품들은 수많은 부두 노동자가 주야 교대 근무를 하며 등짐으로 화물을 내렸으니 부산항 주변은 이때부터 활기를 띠게 된다.

부산항 맞은편 동네인 초량 수정동 산복도로 인근은 따개비 붙듯 하꼬방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골목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뎅과 빈대떡, 잘 해야 돼지국밥집에서 수육 곁들여 배를 채웠으나 점차 형편이 나아지며 돼지갈빗집이 늘어났다.

부두에서 하역 노동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값싸고 영양 많은 돼지갈비와 반주 한 잔으로 가장들은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거기서 출발한 돼지갈비 골목이니, 땀내에 쩔은 먼지 투성이 부두 노동자의 신산스런 삶이 기록된 유적지 같은 곳이다.

이후 부두가 옮겨가고 하역 작업이 기계화되면서 부두 노동자들이 떠나며 식당가도 사양길에 접어들 즈음, 손님 층이 바뀐다.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된 돼지갈빗집은 젊은 층과 가족 단위 손님이나 입소문을 들은 외지인들이 즐겨 찾는 외식거리가 됐다.

그럼에도 돼지갈비 식당들은 전 그대로 스산한 골목의 허름한 집에서 예전처럼 석쇠 얹어 구워낸 고기로 푸짐하게 인정을 대접한다.

초량 돼지갈비는 60년대엔 거의 드럼통으로 만든 연탄 화로를 썼다고 한다.

지금은 드럼통 연탄불이 화덕의 숯불로 변했다.

이곳에서는 갈빗살을 직접 일일이 손으로 장만하기 때문에 고기가 두터워 씹는 맛이 각별하다고.

양념으로 생강과 마늘을 많이 써서 한 이틀 숙성시킨 고기를 내놓으며, 많이 팔리므로 유통이 잘돼 언제나 고기가 신선하다.  

돼지갈비를 싸 먹는 김치도 고기 맛을 살리기 위해 배추 무 모두 백김치다.   

쥔장이 능숙한 솜씨로 뒤적이며 먹기 좋게 가위질한 고기가 지글지글 지지직 구수한 내음을 풍기며 익는다.

깻잎에 달짝지근 감칠맛 나는 고기와 파 생절이의 매콤함을 얹어 한입 넣으면 조화 서로 잘 어우러진다.

그러나 내 입맛에는 너무 달큰해 개운치 않았으나 그게 초량 돼지갈비의 진미라니 타박할 수는 없겠고.

각자 식성이 다르며 음식에 대한 호불호도 뚜렷한 데다 미감은 일률적이지 않고 사람마다 다르므로 맛집 리뷰도 믿을 건 못 된다.  

음식은 개개인마다 다른 나름의 추억을 반추하게 해주는 매개물, 해서 음식 맛에 대한 견해 역시 제각각이다.

초량 돼지갈비 식당에서 점심 포식하고 나오며 당연히 드는 또 하나의 생각.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포시러운 백성 되어 식도락 즐기며 곳곳의 맛집 순례자로 동서고금의 맛 고루 섭렵하게 된 이제.

우방으로부터 밀가루 원조를 받았던 빈곤국이었는데 우리도 어려운 나라를 도울 수준으로 성장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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