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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9. 2024

신록 눈부신 날 하산하신 부처님

부산 구석구석

양정 로터리는 부산 살 적에 자주 다니던 길이라 익숙한 지리다.

지하철이 생기기 전, 망미동에서 서면이나 부산역 가자면 거쳐가야 했던 곳이니까.

하늘빛 쾌청한 날, 메타세쿼이아 신록 푸른 로터리에서 색다른 풍경과 눈이 마주쳤다.

간만에 스모그 싹 걷힌 청명한 날씨 아까워 태종대 가려고 나섰던 참이었다.

긴한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간에 쫓길 리 없는 은퇴자가 아닌가.


넉넉하다 못해 지천인 시니어의 시간이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보니 부산 불교연합회에서 초파일 전에 뭇 중생의 치유와 평화를 위해 마련한 연등행사  자리였다.



이 나이에도 아직 호기심 천국이란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지하철을 타지 않고 버스를 택한 우연의 선택 역시 감사항목이고.

아니면 일부러 연등행사 구경하러 양정에 올 리 없었을 터.

무릇 모든 만남에는 때가 있는 법,

시절인연이 닿아야 비로소 상호 연결되도록 눈에도 뜨이게 된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홀연 만나진 이날의 인연에 담긴 의미를 곰곰 되새김해 보았다.

근자 들어 심저에 이는 동요가 미동이나마 감지되었다.

현대화시킨 불교 상징물들이 하나하나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산하신 부처님은 근엄한 표정 대신 반가사유상 미소를 지어 더군다나 정겨웠다.

전에는 부처님 오신 날 봉축 연등 만들듯 한지로 여러 불상 모형을 만들어 사찰 별 컨테스트도 했었다.


요새는 무슨  특수 재질을 사용한 건지 비를 맞아도 괜찮나 보았다.


세상은 하루 다르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때론 신통하기도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초파일 앞서서 불교 상징물들이 귀여운 캐릭터 되어 친근한 모습으로 나들이

온 양정 로터리.

천상천하유아독존 부처님, 대자대비 관음보살님, 나한상, 달마대사, 팔부신장, 불탑과 황룡 거기다 아주 오랜만에 가릉빈가라는 상상 속 불멸의 묘음조 형상도 만났다.

옛 스승 옛 벗들과 허물없이 조우한 듯 다들 무지 반가웠다.

른 하늘 배경으로도 아름답지만 은은히 불 밝힌 밤에는 아마 더 운치로울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지 캐릭터들이 창과 칼 꼬나들고 "병소 포함한 여의도 군단 까불지 마라!" 하는듯해 흐뭇한 기분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불탑 앞에서 경제 침체로 시름 깊은 백성들 치유는 물론 사회 정의가 바로서기를 조용히 기원했다.

태종대로 향하며 내내 이 시간을 마련해 두신 하늘에 감사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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