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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9. 2024

청풍장은 最古가 붙어, 머잖아 사라질 풍경

부산 구석구석


부산 수영만과 해운대 스카이라인을 바꾼 최첨단 고층 아파트가 있다.

현재 마린시티와 엘시티 아파트는 명실공히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아파트로 꼽힌다.

그렇다면 가장 고물에 속하는 最古 오래된 아파트는?

영주아파트다, 수정아파트다, 무지개아파트다, 좌천아파트다, 내세우지만 다들 도토리 키재기로 60년대 말에 대부분 지어졌다.

이때는 바야흐로 산업화가 무르익으면서 전국적으로 큰 도시마다 시민아파트 건립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아파트가 와르르 주저앉으며 여러 사상자가 발생한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도 똑같은 동시대에 일어났다.   

이는 졸속 개발과 부실 공사가 낳은 예견된 사고였다.

과감한 업무 추진력으로 불도저라 불리던 김현옥 시장은 이 사고로 경질됐다.

요즘 중국에서 터지곤 하는 날림공사로 인한 아파트 붕괴사고의 예처럼 불량 자재를 쓰고 부실시공을 한 결과였다.

다행히 부산권 아파트는 양심적인 업자를 만났던지 반세기를 넘기고도 끄떡없어 좌천아파트의 경우 리모델링 했을 정도다.

마린시티나 엘시티도 반세기를 넘어 수 세기를 버티는 유럽의 성이나 보도블록처럼 흠집 없이 든든할는지?


청풍명월, 청풍양수, 백세청풍, 소슬하니 청량한 바람 감도는 별장 이름 같은 청풍장.

부산의 원도심 지역인 중구 남포동 번화가 샛골목에 청풍장은 자리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1번 출구로 나오면 곧바로 비프광장이 나온다.

비프(BIFF) 광장에서 부평 시장으로 뻗어나갈 아리랑 거리를 마주 보는 CGV 뒤편 주차빌딩 골목이다.

워낙 번다한 상가 거리라 어느 구석에 늙어빠져서 뽄세 험할 그런 건물이 있겠나 싶다.

그런데 참말로 뒷골목에 옹색하게 끼어있는 남루한 아파트가 눈에 띄었다.

청풍장이었다.

일제 때 이 지역 일대는 일본인들의 중심 거주지였다.

개항포였던 부산에는 동래현 부산포에 이어 초량 왜관이 들어서며 일인 거류지가 남쪽 해안에 펼쳐져 있었다.

왜관은 대마도주의 임명을 받은 일본 사절 및 관리와 상인 등이 거주하는 한정된 일인 거주 공간이었다.

양국 지식인과 상류층의 교류뿐 아니라 일반민의 교류도 이어졌던 왜관은 약 이백 년간에 걸쳐 조선과 일본 간 외교와 무역이 이뤄지던 곳이다.

초기만 해도 일본 사절은 상경(上京)이 금지되어 한양에 올라가 국왕을 직접 만날 수 없었기에 외교 의례는 초량 객사에서 처리됐다.

조선 말기,  일제 강점기 때에 이르러 부산부청이 들어서며 일대는 행정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들은 대한 제국을 침탈한 후 1934년 영도다리 놓아 민심을 홀렸고 훨씬 전인 1905년 대륙까지 넘보며 경의선 철도를 깔았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란 가요가 일본에서 인기 끌었던 이유를 어느 평론가는 이렇게 해석했다.

식민지 시절의 향수에 젖은  일인들이 '내 형제여, 부산에 다시 돌아오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1941년 4월 8일에 4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로 건립됐으니 팔십여 성상을 버텨온 아파트다.

부산에 처음으로 들어선 이 신식 아파트는 일인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였으며 조선도시경영 주식회사 관사로 사용되었다.

청풍장 건립사는 조선도시경영 주식회사, 지금의 LH 본부 고위층 나리들이 살았을 정도의 수준일 터라 그 위상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육이오가 터져 부산이 임시수도였던 시절에는 정부 요인과 국회의원 관사로도 쓰였다니 의원님네 주로 사는 강남권 아파트 격이겠다.

당시로는 최고급 아파트이자 고층 아파트였던 것이, 초가집과 이층 목조 집 둘러선 동네에 우뚝 4층으로 솟은 벽돌 건물이니 장관 아니었으랴.

옛 명성 무색하게 지금은 나이만큼이나 노후되어 퇴락한 채로도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낡디 낡은 사 층짜리 아파트가 철거되지 않은 채 땅값 비싼 도심 한복판에 거짓말처럼 웅크리고 서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가.

벗겨진 페인트칠, 얼기설기 늘어진 전선, 벌겋게 흘러내린 녹물, 그래도 사람 사는 훈기 느끼게 하는 건 마구 엉겨  무성한 화초분.

그러나 세월 이길 장사가 있겠는가.

출입구 벽에 노란색 빨간색 경고 딱지가 붙어 있다.

재난위험 시설로 지정됐으니 통행과 주차에 주의하라는 알림판이다.

노후 건물이라 벽체 군데군데 균열, 방치된 누수 자국 등 지저분하고 어지러워 바라만 봐도 심란스럽다.

하지만 이 아파트를 아는 사람들은 세 번 놀라게 된다는데 그중 하나가 누추한 데서 사는 사람치고는 형편 넉넉한 편이라고.

인근 광복동과 자갈치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일터와 가까운 이점이 있어 쉬 떠나지를 못한다고.

더군다나 아파트 내부가 겉보기보다 너른 데다 그 시절에도 수세식 좌변기에 발코니 쪽에는 비상탈출용 사다리가 설치돼 있다고.

특히 내부 목재가 값비싼 향나무인 데다 전기시설과 상하수도 설비가 완벽히 구비돼 있는 최신 구조였으니 당시로서는 높은 인기 당연했을 터.

50년대를 살아온 우리네에게는 흑백사진 속 오래된 풍경 같은 청풍장, 이는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적이었다.

위치: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6가 69번지와 남포동 6가 72~7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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