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전봇대

by 무량화


여긴 아직도 나무 전봇대가 서있네~. 처음 와본 미국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언니 눈에 전봇대가 눈에 띈 모양이다. 전봇대는 전기를 수요처로 공급해 주는데 존재 이유가 있는 것. 동시에 통신에도 같은 목적으로 이용된다. 현대 생활에 필수불가결인 전기요 통신망이나 한국에선 콘크리트 전봇대마저 거리 미관을 해친다며 밀려나기 시작했다지. 거기다 까치집으로 인한 전선 사고가 빈번해지자 아예 지하에다 설치하는 추세로 달동네에서나 보인단다. 언니 말이 아니라도 하긴 나 역시 이곳에 이사 와서 몇 번인가 유심히 전봇대를 올려다보았다. 뉴저지에서보다 키가 월등 큰 전봇대여서였다.



가로 풍경을 찍을라치면 전신주가 자꾸 걸리적거렸다. 다른 지역보다 유독 꺽다리인 데다 바툰 간격으로 서있기 때문이다. 전주는 지역에 따라 간격의 거리 기준이 약간씩 다르게 묻는다고 한다. 전신주의 높이와 전깃줄의 무게와 최대풍속과 강도 등을 고려하여 전신주를 세운다는 것. 그럼에도 웬만한 나무는 버텨낼 것 같지 않게 광풍이 심하게 불던 날은 내심 걱정이 되었다. 거목 밑동이라도 뽑아낼 기세로 거칠게 바람이 부는 곳이 여기이므로. 또한 잠시만 서있어도 정수리가 데일 듯 이글거리는 땡볕에 전선이 녹아내릴까도 염려가 됐다. 사막지대는 그만큼 열기가 대단한 곳이기도 하니까.



유년기,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숨바꼭질을 할 때면 스스럼없이 몸을 빌려주던 전봇대는 그리 키가 크지 않은 나무 전봇대였다. 아마 당시는 소나무나 미루나무를 다듬어 만든 전봇대였을 것이다, 대학 때 강원도를 여행하던 중 낙엽송에 핀 상고대를 보며 환호하다가 멈칫했다. 꼿꼿한 수형에 수령도 적당한 그 나무는 영락없이 전봇대 감으로 베어질 것 같아서였다. 주부가 된 다음부터는 전세방을 내놓으려면 전봇대에다 광고지를 눈높이로 붙여야 했다. 콜타르 입힌 거무레한 전주 허리마다 무수히 박혔던 못과 압정과 여러 상처 자국들도 아른대며 지나갔다. 전봇대는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구조 신호를 보내는 표식 역할도 한다고 들었다. 전봇대마다 붙여진 일련의 코드번호로 현재의 위치 추적이 가능하단다.



우리 동네 이름은 Elm, 즉 느릅나무골이다. 전봇대 사이사이 가로수도 느릅나무 고목인 데다 공터마다 크고 작은 느릅나무 천지다. 가로등 불빛을 가리기도 하는 느릅나무나 삭막한 지역을 생기 있게는 만들어 준다. 한국에선 한약재로 각광받고 있다지만 그전에는 분재 전시장에서 더러 보았던 기억뿐인 느릅나무다. 봄에 씨앗이 어지러이 날리는 데다 덩치에 비해 잎이 자잘하니 귀태는 못 되는 나무다. 가지 무성하여 그늘이 좋기로는 떡갈나무나 플라타너스며 메이플 나무가 몇 수 위다. 사촌 격인 느티나무는 목질이 견고해 무량수전 기둥이 되었으나 가구류 만드는 장인에게나 괴임 받는 느릅나무다. 그래도 살랑대는 바람결 따라 잎새 나부낄 때나 보름달이 뜬 오늘 같은 밤엔 꽤 운치 있어 보이는 가로수다.



늙은 느릅나무와 키재기를 하는 이곳의 전봇대는 저마다 키다리 중의 키다리, 늘씬한 롱다리들이다. 북구의 전나무나 삼나무 아니면 세쿼이아 정도는 되어야 저만큼 훤칠할 수 있을 터. 맺힌 데없이 시원스레 쭉쭉 뻗은 몸매에다 타닌과 산이 함유되어 내구성까지, 그러고 보니 다른 어느 수종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겠다. 이 너른 미국 땅, 끝 모를 평원이나 사막까지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이어져 늘어선 전신주다. 전기와 통신망을 연결해 주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전봇대이지만 나무로써는 피하고 싶은 악연이자 자부심이기도 하리라.



청청한 레드우드 숲이 생각난다. 거침없이 솟구친 헌헌장부들의 늠름한 자태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피톤치드 향에 젖어 끝 모르게 이어진 숲길을 걷고 싶었지만 얼마 후 길은 슬그머니 끊어져 버렸다. 서부 개척시대에 이어 산업사회로 진입하며 건축재, 침목, 전신주 등의 목재 수요가 무한정 늘어나자 숲은 위기에 빠졌다. 산림자원들은 마구잡이 벌목으로 고갈되어 갔다. 특히 레드우드의 경우, 원래 숲의 5% 정도만 겨우 남게 되었다니 거의 다 사라진 셈이다. 뒤늦게나마 다시 푸른 산림을 회복하기 위한 조림을 계속한다니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후손들에게 빌려 쓴 부채를 조금치라도 갚는 길이자 후대를 위한 바람직스러운 선물이 될 숲 가꾸기이므로. 나무 전봇대를 보다가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끄적인 단상이 객쩍다는 듯 길 건너 전봇대 무연히 건너다보고 서있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