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에 걷는다

산방산 한 바퀴

by 무량화

화순리에서 차를 내려 걷기 시작했다.

산방산을 둘러보며 도중에 산방굴도 올라가 볼 계획이다.

산세가 기이해 동서남북이 전혀 다른 모습인 산방산이라 언제고 꼭 전체를 돌면서 사진에 담아야겠다고 별러왔던 차다.

화순 주슴길을 거쳐 안덕평화공원을 스쳐 지났다.

산방산은 남쪽 방향인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수반 위에 올려놓은 암팡지면서도 단정한 천하명석 같달까.

그와 달리 화순방향에서 우측인 동쪽 산세는 암벽 죽죽 뻗어 내린 주상절리대 장엄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강건한 남성미가 일품이다.

여기서 보면 산방산은 확실히 악산((岳山) 또는 골산(骨山)이다.

정면 역시 바위산,

그러나 일주도로 덕수리 방향에서 보면 산방산은 흙으로 덮여 있는 숲 울창한 산이라 오롯이 육산(肉山), 흙산(土山)이다.

자태 수려한 산방산은 천연기념물 제376호이자 국가지정 명승 제77호 문화재다.

타원형의 돔형(dome) 화산체이며 한라산, 성산일출봉과 함께 제주의 3대 산으로 불린다.



이제 산방산 대신 바다로 시선을 옮긴다.

카페 ONE AND ONLY가 자리한 해안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

경사도 완만해 여유롭게 바다빛 감상하며 걸어 올라간다.

완연해진 초가을 날씨. 바다에서 시원하게 해풍 치달려와 온 전신을 휘감는다.

심신 쇄락하게 이리 갈대바람 상쾌 흔쾌할 수가.

지금 이대로라면 남한 종주라도 능히 해 낼 기세, 아니 양 어깨에서 나래 돋아 바다에 뜬 형제섬쯤 단숨에 날아가지 싶다.

높직한 위치라서 인지 열기구 타고 둥싯 떠오르는 느낌이다.

불현듯 달콤한 샹송 MONACO 멜로디가 흥얼거려진다.

고조된 기분에 음정 박자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희랍인 조르바처럼 춤이라도 추고 싶어진다.

상반신이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제 신명에 지펴 허리도 추썩거려진다.

좋다, 너무 좋다.

이 맛에 걷는 거다.

차를 타고 휙 스쳐 지난다면 지금 이 순간 이 길을 걸으며 느끼는 이 놀라운 감흥 놓치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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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슴없이 짙푸른 바다로 성큼 디미는 용머리, 용암 흘러내려 굳은 암벽 왼편에 거느리고 걷는다.

봉수대인 산방연대 가까이 다가서면 제야 모두에게 익숙한 산방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방산 사진은 대부분 이처럼 앞머리에서 담는다.

벽공에 봉긋 솟은 오연스러운 실루엣, 다만 초입의 거대한 금빛 불상이 순수 자연미인의 기품을 감한다고 할까.

정말 왜들 그러는지, 종교시설의 무작스런 대형화 추세는 중증의 병에 속한다.

그렇다고 후세에 남길 문화재급 작품이나 되면 모르겠는데 기계로 깎은 석물만 복전함 앞에 두고 즐비하니.

상큼한 초추의 숲바람 데불고 걸어도 산방굴까지 이르려면 등에 땀이 밴다.

머리 위로 낙석주의 경고문과 철그물 단단히 쳐놓은 지점의 석질은 매우 이채롭다.

주변 바위 표면마다 풍화혈(타포니, Tafoni)이라는 구멍들이 숭숭 나있으며, 산방굴 또한 이런 풍화 작용에 의해 형성된 굴.

이래서 자연보존 기금으로 입장료 천 원을 내게 된다.

층층이 이어지는 계단길 올라 산방굴사 부처님 뵈옵고 산방덕이 눈물이라는 약수로 목도 축인다.

심신 가뿐한 요량으로는 백팔배라도 충분히 올릴 거 같으나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어 자리를 비켜줬다.

하산하며 내려다본 하계, 오늘은 유난히 시계 투명해 형제섬이야 물론이고 송악산 그 건너 마라도까지 선연하게 보인다.

이때 또 한번 전자동으로 감사기도가 탄성과 함께 발해진다.



산방산 서쪽 측면을 옳게 감상하려면 사계 그중에서도

사계리동동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거기서 북향으로 걸어가는 길가엔 식당가가 이어진다.

세월아 네월아~ 가을꽃도 구경하며 느릿느릿 걷는다.

이 동네는 지금사 칡꽃 한창이고 달개비꽃도 초여름처럼 풋풋하다.

메밀밭 자욱한 연두 이파리 위에 총총 핀 하얀 꽃들이 당연한 듯 봉평장을 소환해 낸다.

자유로이 벋어나가는 사색의 갈래 따라가 보는 이 여정도 꽤나 의미롭다.

산 숲 꽃과 흙길, 자연 그 안에 더불어 깃들어 사는 사람들.

거의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정복자처럼 군림하며 살지만 자연의 일부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

그럼에도 지구촌을 가장 황폐화시키는 주범도 우리다.

당장, 무성한 풀밭 벌겋게 변해버린 현장이 시야에 걸리는 제초제의 폐해뿐인가.

밭두둑을 덮은 비닐 멀칭도 '얼른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하나 뒤에 남는 폐비닐 처리가 골칫덩이다.

무려 백 년 넘게 썩지 않는다는 비닐인데 이걸 태워 없앨 경우, 다이옥신 같은 유해 물질이 발생해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생활의 유익과 편리를 가져다준 산업발전은 그러나 얼마 후 무서운 청구서를 으레 들이민다.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을 겪으며 톡톡히 경험했던 바대로.



왼쪽 질펀하게 펼쳐진 콩밭 너머로 단산 윤곽 드러나자 이웃한 모슬봉도 낯익어 반갑다.

오른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산방산은 더더욱 생경한 모양새다.

여태껏 본 산세와는 달리 다이내믹하진 않지만 산정에 뾰족 솟구친 바위들이 나름 저마다 개성 있다.

이쪽은 하늘에 뜬 구름 형태도 달라 갑자기 내가 서있는 여기가 어딘지 잠시 헷갈린다.

마치 해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바로 앞 전신주에 마침 도로 표시판이 붙어있기에 확인해 보니 사계리 114번 길이다.

도로 인근엔 집도 거의 없고 관광지에 흔한 카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다, 건물은 서있으나 썰렁하게 빈집들은 식당이며 횟집들로 죄다 폐업 상태다.

제주도 주택시장과 관광업계가 고전하고 있다는 얘기가 괜한 엄살만은 아닌 모양이다.

매일 오가는 올레시장 근처 상권도 빈 가게 천지인 걸 보나따나 실제로 찬바람이 느껴진다.

제주만이 아니라 한국경제가 폭망해간다는 소린 누누이 들었다.

요새 자정 넘어 근처 숱한 <노래방>에서 악쓰듯이 들려오는 유행가 소리, 웬일인가 알아봤더니 언발에 오줌누기식 민생지원금 소비처로 급부상했다나.

빚잔치도 아니고 결국은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낼 세금만 올려놓을 .

한심한 처사가 한둘 아니라 아예 소화불량 걸릴까 봐 안 듣는 뉴스다.

하긴 국내만이랴, 오리무중이긴 국제정세도 마찬가지다.

한 치 앞도 예단 못하는 삶처럼 세상사 모두가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려 해도 불안불안하다.



이제 발길 닿은 곳은 덕수리 마을 앞 일주도로상이다.

조금만 더 가면 화순곶자왈과 조각공원이 나올 터다.

서쪽과 두루뭉수리로 연결된 북쪽 산세 한층 드높아지며 숲 자욱하다 못해 울울해진다.

검푸른 산방산은 어쩐지 생소하게 느껴진다.

여기야말로 오롯이 육산(肉山), 흙산(土山)이다.

흙 두터이 쌓인만치 숲 후덕하니 밀밀하다.

경사도 대체로 완만한 편이다.

충분히 오를 수 있을 듯 녹록해 보인다.

예전 같으면 나무꾼들이 오르내리는 산길 있음직하나 요새 누가 아궁이에 불 지피랴.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길은 나있을 것 같은 산이다.

그 정도로 만만해 보이는 산방산 뒤태다.

유혹에 그만 넘어갔던가.

얼마 전 입산금지 구역인 산방산을 등정하려던 무모한 중년 아낙 둘이 뉴스에 올랐다.

그녀들은 길을 잃고 산속을 마냥 헤매다 구호요청을 보냈고 헬기가 와서 가까스로 구조됐다.

당연히 벌금이 부과됐으며 재판에 회부됐다.

옛 기록에 의하면 추사선생도 올랐던 산방산이나 자연유산 보전을 위해 2012년부터 2031년까지 일부 구역에 대한 출입이 제한되고 있는 산방산이다.

그럼에도 허가 없이 출입하다 적발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앞으로 오 년 이전에는 산방산 등정은 꿈도 꿔서는 안 될 일이다.

산 중에는 이렇듯 범접을 쉬 허락지 않는 산이 있다.

신비의 베일에 가려진 신성한 산일 수록 더 그러하다.

한동안은 그저 산자락 빙 돌아가며 한 바퀴 도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 산.

하긴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일감이 드는 산방산이다.

산방산 아래 동네는 메밀밭 가꿔 새하얀 메밀꽃 피워놓고 고요히 휴식에 들어갔다.

나도 이쯤에서는 쉬고 싶다.

약간 지친다.

여유작작 비록 놀멍쉬멍 걸었지만 네 시간 여를 꼬박 길에서 지냈으니 지칠 만도 하다.

비상하려는 독수리처럼 솟구친 정상 바위는 시작점에서 눈에 익힌 바위다.

바로 여기가 곧 끝점인 셈이다.

조각공원에서 주욱 내려가면 화순리다.

아직은 믿을만한 건각 덕에 감사하게도 산 한 바퀴 잘 둘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