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스토리
세상만사 그 무엇도 변치 않는 건 없다 하더이다.
우주 만물은 시시각각 변하므로 잠시도 같은 상태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였소.
하물며 인간사이리까.
무상한 것이 하긴 어디 인생뿐이던가요.
달도 차면 이울고 굳은 돌마저 이지러뜨리는 게 시간 나아가 세월이외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하였소이다.
그러니 큰 스승 붓다 가르치시길 제행이 무상하다 이르셨을 것이오.
너른 강줄기와 멋진 다리와 골목 풍경 중후한 중세 마을 에스테야에서 문득,
불교 용어인 제행무상이 자연스레 떠오르더이다.
에스테야는 스페인의 팜플로나 지방의 남서쪽
나바르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도시였다오.
멀리까지 마중 나온 에가 강은 매우 서정적이었으나 마치 요새 같은 성곽에 둘러싸인 에스테야는 분위기 자체가 그리 평화스러워 보이진 않더이다.
에스떼야는 바스크어로 별이란 뜻으로 도시 문장에도 별이 그려져 있다 하오.
영어로는 에스텔라, 반짝이는 별이란 의미의 손녀 세례명이기도 해 느낌 각별했던 이곳.
그러나 바스크인, 유대인, 프랑스인이 섞여 사는 에스떼야라서인지, 민족 간의 치열한 전투 흔적이 왕궁은
물론이고 고딕 성전이며 주택 발코니에도 총격의 상흔이 남아 있더이다.
상업으로 크게 번성한 도시였으나 역사 이래 전쟁이 자주 발생했던 지역답게 로마네스크 화려한 성당 조각은
거개가 형체 알아보기 어렵게 훼손됐더이다.
해가 뜨면 어느덧 기울고 겨울 가면 봄은 오기 마련.
이 세상 그 무엇도 항상 여여한 것은 없느니.
생한 즉 멸하는 이 법을 허무로 파악하기보다
변화하는 세상 모든 이치 자체가 그러나 무상함은 아니라 커늘.
석상 본디 모습 잃었다 애달파하거나 잡아매 두려는 집착 버리라 말없이 이르더이다.
분별하느라 걸려 넘어지지도 말고 매사에 지나친 의미도 두지 말고
절로 절로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 하더이다.
하여 밤새 내리는 빗소리 무심하게 들으며 잠들기로 했소이다.
비 개인 이튿날 오후, 약간 몸이 찌뿌드드해 버스에 실려 가며
차창 밖으로 묵묵히 걷고 있는 카미노 순례객들이 보이면 괜히 미안쩍어져 목이 움츠러들더이다.
창을 통해 희끗희끗 피레네 연봉의 눈이 보이면 청량한 눈바람을 피부로 느껴보고 싶었고,
초록 들판 사이로 실처럼 아슴히 이어진 길이 보이면
'그래도 걸어서 가볼걸' 잠깐 아쉬운 기분이 일렁이지 않는 바 아니었소.
어떤 선택을 했건, 어떤 결정을 내렸 건, 그건 전적으로 나 자신의 판단이었기에 오래 미련 두지 않고
'하지만 잘했어' 스스로를 응원해 주었다오.
해서 이래도 좋았고 저래도 좋았고, 어려움조차 기꺼이 품어 안았으니 카미노를 걷는 내내 행복할 밖에요.
전 생애를 살아오면서 이런 행복감 몇 번이나 느꼈던가 헤어볼 만큼,
한마디로 딱히 설명할 수 없으나 그냥 무한정 행복했던 카미노 여정.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와 강도로 느긋하게 카미노길 걸으면서,
이런 시간을 허락하시고 인도해 주신 분의 특별한 은총에 감사 또 감사했음도 물론이라오.
무엇보다도,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내가 자유로이 주도하고 있다는 실감을 느낄 때의 충족된 이 희열감.
그 충만감을 과연 그 무엇에, 그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모르겠소.
한번 주어진 인생인데, 남은 생은 나 자신 주격이 되어 걸림 없이 자유롭게 살리라 다짐하고 싶더이다.
제행무상, 해 아래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솔로몬조차 진작에 부귀영화의 가벼움을 일렀으나
그럼에도 태어나면서부터 행복해질 권리를 부여받은 우리잖소이까.
하여 날마다 충만한 행복 속에 범사 감사하기로 작정하였소.
모든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라 하지 않던가요.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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