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 관광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백낙천이 읊은 장편 서사시 장안가 마지막 구절이다.
연리지니 비익조는 지금도 곧잘, 남녀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둘 관계가 매우 절절함을 비유할 때 쓰인다.
서시, 왕소군, 우희와 함께 고대 중국의 뛰어난 미녀로 꼽히는 양귀비의 본 이름은 양옥환이다.
귀비는 제왕의 첩실로 후궁 순위를 나타내는 칭호라 한다.
총명한 데다 재주가 뛰어나 비파를 비롯한 음악과 무용 등 재능까지 남달랐다는 그녀.
꽃다운 방년 열여섯에 양옥환은 당 현종 이융기의 제13황자 이모(李瑁)와 혼인했다.
당시 현종은 측천무후 사망 후 실의에 빠져있던 차, 화청지에서 시와 노래에 능한 양옥환을 보자 혹해버렸다.
시아버지였던 현종은 그만 며느리에게 눈이 멀어버렸으며 인륜을 저버린 망측스러운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일단 현종은 양옥환을 화산의 절로 출가시켜 아들인 이모로부터 멀찍이 떼어놓는다.
궁궐 내에 서둘러 태진궁(太眞宮)을 짓고 양옥환을 다시 불러들여 궁을 관리하는 여관(女冠)의 직책을 준다.
이때 양옥환은 한창 물오른 22세, 이융기는 아직 팔팔한 57세 나이였다고 한다.
화청지에서는 양귀비를 현대식 미녀로 재해석해 갸름한 얼굴에 날씬한 나신으로 표현돼 있으나 대만에서 선보인 양귀비 상은 매우 퉁실한 데다 노골적으로 육감적인 모습이더라고(실제 역시 그러했다고).
아무튼 막장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으련만,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출중한 미모를 지닌 양귀비와 당 현종의 러브스토리를 당대 최고의 시인인 백거이가 시로 읊었다는데.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대서사시의 첫 부분은 현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으며 스물일곱에 귀비가 된 양옥환의 득세와 그 일가의 전횡이 벌어져 사촌 오빠 양국충이 승상에 올라 나라를 좌지우지하자 이 재앙을 보다 못한 절도사인 안녹산이 난을 일으켜 양귀비가 목을 매 죽는 장면이 담겼다.
둘째 부분은 양귀비를 잃고 난 후의 현종의 쓸쓸한 여생(집권 초기 그리 어질게 왕노릇을 했다는 이 인간은 도대체 여자 치마폭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찌질이 아닌가), 셋째 부분은 이융기가 죽어서 선녀가 된 양귀비와 만나 영생을 누린다는 해피엔딩을 써 내린 백거이도 웃기긴 마찬가지.
대여섯 살 무렵부터 이미 시를 짓고 아홉 살 때에 율(律:음률·가락)을 깨달았다는 그는 다작(多作)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존하는 문집은 71권, 작품은 총 3,800여 개로 당대(唐代) 시인 가운데 최고 분량을 자랑할 뿐 아니라 시의 내용도 다양하다고.
그런 그가 쓴 장한가 '하늘과 땅이 영원하더라도 언젠가는 다할 수 있으나 이 한만은 영원히 끝이 없다'란 마무리 멘트를 보나따나, 그는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데 일조한 시인이자 정치인이었지만 구름 잡는 로맨티시스트였던가.
화청지 가장 요지에 장한가 석각이 펼쳐져 있고 화청지 초입에 시인 백낙천 상이 세워질 만큼 인연 남다른 그.
의젓하게 종잇장 펼쳐 들었지만 그럼에도 권세에 아부하는 정객의 풍모가 어른거리는 게, 요새 저잣거리에서 한창 씹히는 한국의 어떤 인물이 오버랩됐다.
어쩐지 서릿발 같은 사회정의와는 거리가 뜬 의식 올곧은 시인으로 정의하기엔 내 안목으로는 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매번 동행하는 매우 상그러운 일기 탓에 심사가 꼬였나?
비안개 자욱한 뒷산엔 케이블카 오르내리는 데 이 우중에 전망인들 있겠나 괜한 기우까지.
암튼 온천 별궁인 화청지는 아래 디립다 깔아 둔 사진처럼 금빛 건물 즐비했고 조경 훌륭해 북경 이화원 못잖게 화려했다.
그중에는 수상 공연장도 있고 중국 근대사의 중요한 장소 역할을 하며 건물에 총알 자욱 숭숭 나있기도 합디다만 (창문 앞에 바투 서서 무언가 주시하는 사람들 사진은 총알이 뚫고 지나간 자리 구경 중).
열매 때깔 고운 감나무와 석류나무 그외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가 흔하더란 거 외엔 구구한 설명 접기로 하고.
아! 헛되고 헛되도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자 남가일몽(南柯一夢)인 우리네 인간사 부귀영화 .
동서고금없이 늘 적용돼 온 그 허망한 꿈 한자락 부여잡으려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분투하는 그대, 나이 지긋해지면 비로소 부질없음 절감하리니.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