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琉璃)의 길 / 이기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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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생이 둥굴레풀 꽃다지 민들레
고사리 우엉잎 도꼬마리 이질풀
아, 나는 너무 많은 이름들을 놓쳐버렸다
구름을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앞에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강물을 보면 파도를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앞에
출렁거릴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인의 시를 읽다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찬물을 덮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야 할 길 아직 많이 남아있고
출렁거리는 것 아직 많은데
맞아, 내가 놓쳐버린 것
찾아 나서야겠어.
늦지 않았어.
이제라도
충분해.
비켜!
나의
앞
길
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잠시 멈춰 봐요.
그대 오래 시를 잊고 살았잖아요.
고즈넉한 시간들 놓치고 괜히 들뜬 채 지냈잖아요.
여백 아끼지 않고 실속 없이 바쁘게 설쳐댔잖아요.
건공중에 떠서 날마다
세상 물결에 휩쓸려 다녔잖아요.
물살에 눈 맞추고 오래 바닷가에 서있었다.
섬세한 감각과 절제된 언어에 심취해
젊어 한때 흠모했던 서정 어린 시향 그리워졌다.
고은 시인의 <고모> 시 무뜩 생각하며
한참 더 그러고 서있었다.
큰고모 등짝에서
나문재 뜯으러 간 어머니 기다리는 등짝에서
배고파 울다가 말다가 하는 등짝에서
나는 별을 처음 보았다
고은
누구라도 여기 오면
감성 연해지며 저마다 예술가 되리니.
다들 꿈을 꾸듯, 그보다는 접신이라도 하듯이.
순수히 아름다운 자연이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화가 되고 시인되고 제각각의 프리즘 통한
아티스트 되리니.
여기는 예술적 영감을 나누어 주는 나문재이니까.
춤꾼이라면 너울너울 몽상에 빠져 춤추게 될 테고
화가라면 앞질러 붓질 달려 나가 꿈틀댈 테고,
음악 하는 이라면 즉흥곡이 새처럼 날아오르겠고
언어와 이웃해 노닐던 이는
저절로 시 읊조리게 되리니.
아니 그 누구라도
내면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노랠 부르고 춤을 추고
시를 쓰고 화폭 채워
생애 빛내는 명품 만들어 낼지니.
예전엔 글머리 잘 풀리지 않으면
원고지 밀쳐두고 짐짓 딴청을 부렸다.
붙안고 씨름한다 해서 억지로 될 일이 아닌 까닭이다.
딴청이라지만 그게 아주 엉뚱한 짓이야 아니었으니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 들곤 하였다.
어느 땐 오래된 소설을 눈으로 읽기도 했다.
정신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한참을 그렇게 다른 데다 시선 판 채 거기 몰두하다 보면 글 같은 건 가뭇없이 잊혔다.
요즘 들어 제대로 된 글, 책임질 글을 쓰지 않으니
놀이 삼아 가볍게 자판 좀 두드리다가 대충 얼버무리고는 뒤도 안 돌아본다.
계속 고치고 다듬으며 붙잡고 있지도 않거니와
퇴고에 연연해하지도 않으니
시쳇말로 쿨하게 돌아서서 쌩까고 마는 것이다.
충남 태안군 안면읍 통생길 87
나문재는 바닷가나 염전 근처 개펄에서 자라는
다육질 식물입니다만
풍경이 싯적으로 아름다운 펜션&카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