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손녀 결혼식으로 무척 바빴다. 딸내미도 조카 결혼식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는데 유감스럽게도 하필 요셉은 기침감기에 걸려 불참했다. 단지 겨우 닷새밤만 머무는 한국이라 딸은 한 달 전부터 미리 스케줄을 꼼꼼스레 조율해 뒀다. 지난해 잠시 서귀포는 다녀갔으니 이번엔 서울에서 하루 한옥체험을 해보고자 했다. 대구 부연집 솟을지붕아래서 산 유년의 추억을 반추하려 함이었을까. 한국을 떠난 지 25년 만에 걷게 될 서울거리. 한밤중이나마 종로통 궁궐을 둘러본 후 그다음 날은 한강나루에서 유장히 흐르는 강물을 보겠노라 했다. 그후에 KTX를 타고 오빠가 사는 부산으로 내려갈 계획을 짜두었다. KTX도 말로만 들어봤고 영상으로만 구경했으니 한번 타보고 싶었던 것.
시월 23일 한국에 도착하는 날, 인천공항 1 터미널로 마중을 나갔다. 두시 오십 분 도착 아시아나 항공기는 한 시간 너머 연착해 네시 무렵 딸내미를 만났다. 가장 빠르게 서울로 직행할 수 있다는 공항철도를 탔다. 별빛야행 행사 시작시간 대기가 빠듯해 무척 서둘러야 했다. 서울역에서 택시를 불러 일단 숙소인 영락재에 짐만 부려두고, 기다려 준 택시에 올라타 급히 경복궁으로 향했다. 행사 시간 임박해서야 겨우 도착했다. 사실 뒤늦게 알게 된 야행 프로그램이라 참여 자체가 거의 기적 같은 우연이었댈까. 서울여행 검색 중 이게 눈에 띈 때는 시월 초. 예매 추첨제 당첨자 발표가 끝난 뒤였다. 다만 당첨자가 티켓팅을 하지 않은 잔여석을 8일 오후 2시에 일반예매한다면서 딸내미는 내게 단디 전화예약해보길 당부했던 터다. 충청도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다 말고 그 시간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어 운 좋게도 야행티켓 두장을 확보해 놨다. 참가비 십이만 원을 결재하고 나니 행운권을 받은 양 들뜨는 기분. 흐뭇했다. 한번도 사본적 없는 복권이지만 복권에 당첨되면 이리 좋을까. 경복궁 야간 개장과 더불어 봄가을 겨우 몇 차례 진행되는 이벤트로, 한 번에 고작 서른 명 정도만 참여하기에 티켓 구하기 매우 어렵다는 행사다. 모녀간의 별빛 야행으로 딸내미의 한국여정은 시작됐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 여섯 시 반. 앞으론 인왕산이 호위병처럼 지켜주는데, 궐내 여러 전각들 금빛 조명받아 둥두렷 떠올랐다. 격식체인 궁중 어법으로 수인사를 받던 순간부터 소슬한 가을밤 서울 풍정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나인 복장의 안내자가 "반갑사옵니다" 인사하며 수신기가 든 예스러운 봉투를 나눠줬다. 그때부터 조선시대로 편입된 우리. "전하께서 초대하신 귀하신 분들을 극진히 모시라는 명을 받았사옵니다. 먼 길 오시느라 힘들진 않으셨사온지요." 그 어법에 어리둥절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별초롱 받쳐 든 상궁이 앞장서 왕세자 거처라는 계조당으로 안내했다. 아마도 이런 멘트를 들었으리라. "이제부터 육백 년 전 조선으로 돌아가겠나이다. 초롱 불빛이 돌길 위에 은은히 번지옵니다. 별빛이 기와 위에 머물고, 고요가 내려앉았나이다."라는 상궁차림의 해설사 음성은 나직하였고. 미로일 리 없건만 솟구친 기와지붕과 잘 다듬어진 정원 솔 숲 아래 어둑신한 길. 경복궁 가장 내밀한 공간이라서인지 연달아 이어지는 지붕과 지붕 사이 모든 게 낯설어 생경스럽다. "여기 문턱이 있사옵니다." 초롱불 낮춰 발치를 비춰주는 배려까지 자상스러워 문득 이 씨 종친이라도 된 듯 허리 반듯하게 펴지며 자세가 고쳐진다. 왕실의 품격과 고전미가 담긴, 꼿꼿하되 전아한 대왕대비마마 느낌으로 내내.
경복궁 주방인 외소주방 앞에 당도했다, 상이 차려진 전(殿)인지 당(堂)인지 각(閣) 안에서 음식향 은은히 번지고 궁중아악은 그윽하게 퍼졌다. 궁인들 고요히 오가며 분주히 제 할 일하는데 마치 사극의 한 장면도 같고 AI처럼도 보였다. 먼저 만찬 격인 찬품단자(饌品單子)를 받아 식사부터 하였다. 병풍 두른 청마루에 정갈하게 놓인 상. 번호표 따라 우리가 방석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자(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분위기상 죄다 그 자세다) 얌전스레 올려놓는 은색 비단 보자기. 맵시 있게 묶인 보자기를 푸니 따스한 방짜유기 찬합이 나온다. 여기 든 음식은 4단 유기합인 도슭(도시락의 옛말)에 담겨있다. 궁에서 왕과 왕비가 평소 든다는 수라상처럼 12첩 반상 차림이란다. 진지에 표고버섯탕, 탕평채, 저염명란젓, 생선완자전, 애호박 전, 배추김치, 너비아니, 연근해물채, 생땅콩조림, 황태채구이, 오이송송이, 삼합장과에 든 전복은 부드러웠다. 가야금과 해금 연주까지 곁들여진 우아한 저녁상을 물리자 후식이 들어왔다. 달콤한 도라지 정과, 꽃처럼 예쁜 약과와 증편, 따스한 계피차로 만찬을 마무리한 후 일행은 장고(장광)에 들렀다. 궁의 장독대가 크고 작은 순서대로 가지런히 배치돼 있는 곳이다. 장을 총괄하는 장고마마가 수하 나인에게 장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상황극으로 보여주었다. 한 집안이 망하려면 장맛이 변한다 하였듯 장맛은 인간사 길흉화복과 연결이 된다. 따라서 장을 다룸에 있어 심신 깨끗이 하고 성심을 다해야만이 왕실과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린다는데. 그렇다면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기의 조선말 장맛은 어떠했을까?
이 생각에 깊이 빠진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다음에 찾은 곳이 왕비 전용 공간인 교태전과 명성왕후 시해 장소인 건청궁으로 이어져서이다. 그야말로 구중궁궐 거기서도 가장 깊숙이 자리한 내전인 중궁전이다.
왕과 왕비의 침전이기도 한, 밤의 교태전은 중후하면서도 음전해 보였다. 낮에 보면 어딘가 어색한 지붕을 인 교태전이다. 왕은 곧 용을 상징하므로 건물 자체가 용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서 용마루를 얹지 않았다는데 용마루가 생략된 집은 아무래도 눈에 설다. 뭐랄까, 매조짐이 없어 허술해 보이는 게 마침표가 없는 문장 같은 느낌? 평화롭거나 시적(詩的)이지 않은 교태전을 지나서 집옥재를 비롯, 비공개 장소였던 향원정과 건청궁을 둘러보았다. 먼저 찾은 곳은 집옥재, '보물을 모아 놓은 곳'이란 뜻처럼 4만여 권의 책이 보관돼 있는 중국풍 건물이다. 고종의 어진(御眞)이 맞아주는 서재이자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장소다. 서쪽에는 팔우정(八隅亭), 중앙에는 집옥재(集玉齋) 본채, 동쪽에는 협길당(協吉堂)이 복도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었다. 세월의 아득한 숨결이 깃들어 있는 조선궁궐. 무릇 궁궐은 돌과 기와로 지은 무생물체인 집일 뿐인가. 아니 아니, 처처에 흘러간 옛사람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자리 맞다. 해서 스란치마 비단 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릴 듯도 하다. 자동차 경적 등 세간사 소음이 멀어지며 정적 켜켜이 쌓여, 외려 적연한 분위기.
시간이 꽤 흘러 쌀쌀한 기운이 스미며 살짝 지루함이 느껴질 즈음. 이번엔 향원정이라는 정자가 호수 안 작은 섬안에 떠있는 장소로 옮겨간다. 눈이 반짝 떠지는 명소인데 평소 건너갈 수 없던 향원지(香遠池) 내의 목제 다리인 취향교(醉香橋)도 특별 개방돼 거닐어 본다. 향기가 멀리까지 간다는 향원정에 향기에 취한다는 취향교. 멋이란 멋은 다 부린 왕실가족의 휴식장소로 겨울철에도 쓰였다는 방증인 온돌 자취가 향원정 복원공사 중 발견되었다고. 경회루도 사방이 다 아름답지만 향원정이 있는 풍경은 어디서 바라봐도 운치롭다. 청남빛 어둠 속에서 대금 탄주 은근스러운데 향원정 조명빛은 더더욱 육각형 자태 돋보이게 만든다. 여기서 해설사가 전깃불 얘기를 풀기 시작했다. 바로 앞 건청궁은 우리나라 최초로 1887년 전등을 밝힌 곳. 빛부신 전기의 혜택을 밤늦도록 즐긴 고종은 백성들과도 그 혜택을 나누고 싶었을 터. 에디슨이 탄소 필라멘트를 개발해 백열전구를 상용화한 지 불과 8년 만에 그는 궁에다 전등소를 설치해 전깃불을 환하게 밝혔다. 물론 신문명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겠으나 당시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데 서툰 데다 당장 먹고살기 바쁜 백성들의 고초 헤아리지 못한 그로서는 과히 성군의 자질은 없었던 듯. 막대한 재정이 소모되는 전기불을 그래서 백성들은 '건달불'이라 불렀다던가. 그럼에도 현재, 경복궁을 밝혔던 국내 최초의 전기발전소 터가 몇 해 전 땅속 유물로 드러나자 그 자리를 기리며 향후 2027년까지 복원·정비사업을 통해 한국 전기발전사를 야심차게 재조명할 예정이라고. 모든 면에서 과유불급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란 거의 없잖은가. 결국 국운이 쇠한 나라는 좌초 위기에 빠져버렸고 일본에 먹히며 치욕의 식민지 백성이 되고 말았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경구가 있다.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교훈을 얻지 않을 시, 우리는 똑같은 전철을 다시 밟게 되는 우를 범하고 만다. 흥청망청 밤을 낮 삼아 즐기며 젊은 황금기 혹은 한창 번성기라 하여 마구 낭비 일삼으며 살다 보면 남미 어느 나라꼴 되지 말란 법 없다. 야행 잘 즐기다가 끝에 다시 삼천포로 새고 말았지만. 아무튼 110분간의 야행을 마치고 별빛 푸르던 그 밤의 추억 고이 새기면서 우린 걷기 시작했다. 모녀는 광화문을 지나 인왕산 아래 누하동 숙소로 돌아오며 두런두런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