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힐의 단풍빛

2005

by 무량화


나이 들어도 마음은 청춘


여전 그대로라는 말


절감하는 요즘이다

나 또한 과히 다르지 않으므로

허나 이건 아무래도 주책 수준이다

소녀 취향의 가벼운 감성을 주체 못 하다니......

숲을 바라보노라면 눈이 부시다

시야가 온통 환하다

가슴이 뛴다

와우~와우!

색색의 산해진미로 차려진 잔칫상이 걸다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굳이 먼 걸음 할 필요도 없다

시선 닿는 곳마다 사방 지천으로

홍옥 능금이 주렁주렁하다

홍시가 총총 매달렸다

아람이 빈틈없이 들이찼다

아니 홍매가 흐드러졌다

금관 같은 은행나무다

목백일홍이 한창이다

단풍 무르익은 나무들은 마치

풍년 든 사과나무도 같고 감나무와도 같다

그보다는 만개한 꽃나무일까



최대로 화려하게 성장을 한 숲

강렬한 원색, 노랑 빨강 주홍

자주나 갈색도 전혀 칙칙한 게 아니다

더 이상 선연할 수가 없다

낭자한 핏물이었다가 솟구치는 용암이었다가

참나무 장작 괄게 타는 숯가마였다가

불타는 화염이었다가 캐년 넘어 스러지는 장엄 낙조다

그러면서도 황성옛터 가락이 읊조려지는 처연한 색조

황홀하다, 아름답다는 단어만으론 모자란


이 숨 막힐듯한 감동

아따라, 증말루 기맥히데이

그나저나 오매~ 징허게 아까운 거

우리끼리 둘이만 보자니 저으기 아쉬워라



만추의 체리힐

풀어헤친 붉고 풍성한 머릿단이 폭포로 내리친다

눈부신 금발도 물굽이처럼 굼실굼실 어우러졌다

갈색 섀도우 눈짓조차 은밀히

점점 교태를 더해가는 그녀

새빨간 립스틱이 고혹적이다

화장이 점점 더 농염해진다

그렇게 단풍이 익는다

숲이 불탄다

새파란 벽공에 대비도 선명히

주홍으로 황금빛으로

이글이글 번져가는 불길

붉은 악마 응원전이 뜨겁다가

샛노랑 카드섹션 물결 져 출렁인다

언젠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보여준


아마존 밀림에 산다는 왕호랑나비 떼 같다

남미던가 크리스마스섬이던가,

그 어느 곳 도로를 점거한 채


길바닥이 새빨갛도록 떼거리 져 이동하는

붉은 바닷게 무리와도 같다

바라보는 내 속이 어쩌자고 이리 울렁대는가

아예 숨이 콰악 막힌다

귓불 달아오르며 도연히 달뜨는 기분

가슴 벅찬 감동의 파도에

나 그만 익사해 버린들 어떠리

쩌르르 이는 전율로 신음되어 터지는 탄성

아아~

종당엔 뜻 모를 소리라도 의미 없이 내지르고 싶다

조용히 눈시울 적시고도 싶다



이윽고

호르르 호르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며

낙엽이 진다

환호 보내듯 손 흔들며 낙엽은 진다

수만 마리 호랑나비 노랑나비 군무인들 이리 현란할까

눈부시다, 시리도록 눈이 부셔


까무룩 혼절할 듯도 하다

무한 펼쳐진 평원

마을 이름에 무슨 언덕이며 무슨 골짜기가 들어가지만

봉긋 솟은 동산마저도 귀하다

그럼에도 어디나 숲이 울창하다

곳곳에 호수도 널려있다

땅 거름지고 물 풍부하니 무성하기만 한 수목

중세 황실처럼 호사스러운 황금빛으로 치장한 단풍 숲

물새 떼 지은 호심에 아른대며 얼비치는


곱게 물든 단풍의 반영

미 동부 뉴저지

체리힐 고을의 만추 풍경은

정녕 손색없는 신의 걸작품

이리도 찬란한 단풍은

나무들의 마지막 자기 정리 의식이라지

우리의 마지막도 이처럼

쓸쓸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처연하지 않기를...

다시 바람이 지나간다

그리고

지는 낙엽들

낙엽을 태우면 커피 냄새가 난다고 했던가

커피는 향만 좋아할 뿐 전혀 마시지 않으니

깊어가는 이 가을 나는 철관음을 우린다

양광 아래 시집 읽는 대신

시래기를 널며 몇 줄 허접하나마 시를 쓰고....

마른 낙엽과 시든 국화

그리고 한 잔의 차가 있어 향기로운 내 일상이여.


- 2005


<사진: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