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관회가 열리는 날이 엄밀히 말해 축제날은 아니다.
신라 때부터 시작된 팔관회는 민족 고유의 제천의식을 올리는 날이니 삼가 경건하게 지내야 하므로.
즉, 우리 민족이 숭앙해 온 민속신앙과 불교의 팔관재계가 합해진 신라와 고려시대의 불교행사가 팔관회다.
팔관재계란 살생, 도둑질, 음행, 음주, 거짓말, 음주가무, 때 아니면 먹지 마라 등 여덟 가지 금계를 지켜 여덟 죄를 '관'(금)하여 범하지 말라는 의미.
그다음 ‘재’는 하루 오전 중에 한 끼만 먹고 오후에는 식음을 절제하여 마음의 부정을 맑히는 의식.
끝으로 ‘계’는 몸으로 짓는 허물과 그릇됨을 금하여 하지 말라는 뜻이며, 나라와 왕실의 안녕을 빌고 여러 제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를 지닌 팔관재계다.
그럼에도 동시에 술, 다과와 놀이를 즐기며 가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행사도 모순되게시리 펼쳤었다는데.
이 팔관회 의식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 고려 시대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매우 장엄하고 화려하게 치러지는 국가적 행사였단다.
태조 왕건이 왕자들을 위해 남긴 열 가지 유훈(遺訓)인
《훈요10조(訓要十條)》에는 불교의 연등회(燈會)·팔관회(八關會) 등 중요한 행사를 소홀히 다루지 말 것도 당부해 놓았는데, 말미에 마음속 깊이 이를 간직하라고 못 박기까지 했다.
마침 범어사에 올라갔더니 이처럼 큰 행사가 벌어져 그 어느 때보다 경내는 많은 이들로 조용히 술렁거렸다.
2천 년대 들어 부산불교연합회에서는 팔관회 행사를 재개해, 천년의 전통을 가진 불교문화의 전통을 잇기 시작했다고 한다.
올해는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범어사에서 ‘2025 팔관회’를 봉행했는데 우리가 찾은 날은, 호국영령위령재가 열려 순국선열의 넋을 위로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젊었던 시절, 대구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불교집안이었다.
원래 경상도 지방은 불도가 성한 지역이었고 친정은 유교 쪽 성향이라 특별하게 믿는 종교가 없었던 나.
그럭저럭 앞장서는 남편 따라 절에 다닌 터라 딸이 걷기도 전부터 매달 한번은 아이를 업고 팔공산에 오르곤 했다.
아들은 아빠보다 먼저 토끼처럼 산길을 잘도 올랐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지금도 골프보다 더 산행을 즐긴다.
딸은 어릴 적 자연스럽게 불교유치원을 다녔다.
앞산 은적사에서 운영하는 룸비니유치원이었다.
여섯 살짜리의 여름 캠프는 해인사에서 열렸는데 방바닥이 무척 뜨거웠더라는 얘기는 아직도 그때를 회억케 하는 주 레퍼토리다.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 범어사를 찾게 된 연유는 아무래도 그때의 정신적 습(習)의 작용인가.
84년도에 대구를 떠나 우리는 부산으로 이사 온 터라 딸은 초중고를 부산에서 다녔다.
그 후 우리는 딸이 대학을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번에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딸은 25년 만에 한국의 서울과 부산을 찾은 셈이다.
부모가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구태어 한국에 나올 이유가 특별히 없기도 하였고.
딸은 부산을 방문하기에 앞서, 갈 곳 목록을 꼼꼼스레 체크해 와 하나씩 착착 찾아다녔다.
무엇보다 체류기간이 일주일도 안 되므로 엑기스 짜듯 시간을 잘 짜서 적절히 배분해야 했다.
빠듯하게 일정을 짠 대로 차를 탄 채, 우리가 전에 살던 동네와 자신이 다닌 학교도 돌아보았다.
자갈치도 가보았고 영도다리도 건너봤으며 이제 오시리아에서 일출도 보고 오륙도 유람선도 탈 터였다.
그러자니 숙소를 동구와 해운대구에다 잡게 됐다.
이날도 새벽같이 일어나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한 다음, 일찌감치 범어사행 지하철을 탔다.
동래역에서 내려 꼭 먹어보고 싶었다는 잔치국수로 가벼이 아침식사를 하고는 다시 곧장 지하철을 탔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번번 서둘렀지만 범어사만은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우리는 청룡동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용성계곡을 따라 물소리 들으며 산길 오르는 동안 청량한 금정산 공기를 맘껏 호흡했다.
호흡이라기보다 흠향하였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삼십 분 거리 족히 되는 명상의 둘레길을 축지법이라도 썼는지 금세 올라와 범어사 일주문 앞에 닿았다.
아~한국은 모든 게 다 변해버렸구나 싶었는데 절만은 예전 그대로네, 하며 안도하는 듯한 그런 딸의 표정.
일주문도 보제루도 대웅전도 변함이 있을 리 없었다.
풍경소리도 옛 그대로였다.
마침 공양시간, 설법전 아래 공양간으로 내려갔다.
큰 대접에 비빔밥이 담겨있고 내음 구수한 시래깃국 한그릇, 행사가 열리는 날이라 절편 두 쪽도 놓여있었다.
햅쌀밥을 무생채, 미역줄기무침, 콩나물에 쓱쓱 비벼 말끔히 비웠다.
딸은 한국에서 먹은 그 어떤 고급진 음식보다 최상의 진미가 절밥이었지 싶다.
임금님 수라상보다 더 맛지게 든 이 단출한 식단, 아마도 산길 허위허위 오르느라 시장기도 들었으리라.
감사하고도 맛있게 대중공양을 마치고 관음전 뒤편 약수터로 가 감로수를 받아 마셨다.
우연히 절밥을 다 대접받다니,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딸은 거의 감개무량한 눈빛이다.
나 역시 실로 생광스럽다 못해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우연이라니, 당치도 않다.
운명이 그러하듯 매사, 이미 예비된 신의 시나리오에 따른 스케줄이 시절인연과 맞닿은 거라고 하였으니.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어떤 결과가 따라오며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지 않던가.
우리는 늘 우연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우연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에게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도록 재해석되어지는 우연.
의미 있는 연결은 일상에서도 찾아지는데,인드라망 외에도 과학의 파울리 효과(일종의 징크스)와 맞물리는, 즉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과 인간의 경험이 맞닿아 이어진다고 본 구스타프 융.
여기에서 재수 없다로 터지는 파울리 이펙트. ㅎ
요즘 항간의 우스개로 떠오른 단어, 그 이름도 묵직한 양자역학 공부!ㅋㅋ
아 , 팔관회 봉행 중인데 이러면 안 되지.
2025 팔관회가 열리는 곳은 성보박물관 마당이다.
치자빛 물색 고운 한복을 입은 합창단원들이 추모가를 부르는데 어디선가 은은한 꽃향이 스며들었다.
그러자 순간 박물관 뒤편에 서있던 소담스러운 금목서 나무가 기억났다.
맞아, 바로 지금이 금목서철이야.
아니나 다를까, 금목서 황금색 자잘한 꽃잎마디에서 매혹적인 맑은 향을 하늘가로 청정히 풀어내고 있었다.
한동안 흥건히 그 향에 잠겨 있다가 산을 내려왔다.
지하철역 앞 과일가게에 홍시가 진열돼 있어 누가 먼저랄 거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사가자! 외쳤다.
홍시야말로 그리운 고향의 맛이 아닐쏜가.
밤에 숙소에서 느긋하게 올해 들어 첫 홍시맛은 보기로 하고, 터지지 않게 조심스레 가방에 넣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