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숲 낙엽길 사뿐 즈려밟고 오시옵소서

by 무량화


려니숲에 가을비 스며들어 운치 돋우던 날.

미리 갈 곳을 정하고 출발한 게 아니라 무조건 먼저 도착한 버스에 탔더니 여기로 데려다주었네.

특혜도 이런 특혜가 없었다네.

한꺼번에 가을 단풍과 낙엽숲을 제대로 보여준 사려니 숲.

단풍에 취해서 시를 읊조리거나, 낙엽 진 숲길 걸으며 이브 몽탕의 샹송 듣거나. 아니 아니 그보다는 셸 위 댄스?

자연을 무대로 클래식한 춤이라도 한바탕 추고 싶어 졌다네.

이때 스텝은 미뉴에트보다 더 부드러운 슬로폭스트롯이 제격 아닐지.


아니야, 리베르탱고가 더 적격일 걸.

그러나....음악은 간간 지저귀는 새소리와 단풍 든 잎새에 듣는 빗소리로 족하리니.


부슬거리는 가을비는 맞을 만했다네.

네댓 시간을 전혀 피곤한 줄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네.

십여 킬로 거리 요량으로는 과분할 정도로 올 가을을 충분히 만끽하였네.

어제 느낀 고즈넉한 정취, 괜스레 어쭙잖은 수다로 훼손시키고 싶지 않다네.

해서 오래전 쓴 '가을 소나타' 일부로 마무리 지으려네.


ㅡ한라산 둘레길 7구간 (사려니 숲길)



https://youtu.be/AcCrnDtgQc0?si=El5YutmaGZfddFd



가을 소나타/1990




이 가을. 누구나 한 번은 떠나 보아야 하리.

매인데 없이 홀로 길 떠나 보아야 하리.

자신으로부터도 훌훌히 떠나 보아야 하리.




그렇게 빈 마음으로 나서면

아무 흔적 남김 없는 바람 혹은 구름이 동행해 주리니.

그때 우리는 들으리라.

저 숲 나뭇잎 물들고 지는 까닭을.



범연히 가을빛 깃드는 잎새들.

이는 자연의 질서에 맞갖는 겸손한 순명.

허나 가장 진한 몸부림으로

치열히 항거하는 역설적인 모반 같은 것.



안으로 뜨겁게 연소하는

또는 급랭의 영하로 결빙하는

내재율의 갈등이 빚는 처연한 신음 같은 것.

어쩌면 마지막 순간을 황홀하게 장식하려는

못내 안타까운 안간힘 같은 것이리라.



산이 불타고 있다.

찬연한 불꽃으로 활활 불타 무너지고 있다.

풋내 나는 이십 대 정열이기보다 원숙히 무르녹은 중년의 농즙 같은 열정으로

광기이듯 지르는 불.



속으로 갈무린 정화 기어이 못 견뎌 갈갈이 풀어헤치니

질탕한 교태가 되는가.

휘감기고 내꽂히며 압도해 오는

저 농염한 관능.

르누아르의 풍만과 화려.

얼마쯤 퇴폐적인 라 트라비아타

한데 얼려 불사르는 혼.



거기에선 나른히 취하게 만드는

잘 발효된 술 내음이 난다.

몽롱한 환각을 일깨우며

진홍빛 맹렬히 타오르는 산불.

온 산이 미쳐 도는 한 자락 불춤이다.



드디어 산이 익는다.

뜨거움에 지질려 그만 산이,

산이 흘러내린다.

이골 저 골 기슭마다 공 고르며 치달리며 용솟음치는 해일.

때론 울컥 각혈하는 산비탈.

용암과도 같이 핏빛 선연히

흘러내리는 자국 따라

후드득 날아오르는 불새, 불새 떼.



지금은 단풍으로 한껏 호사했지만

곧이어 낙엽 져 뿌리로 돌아갈

순명의 시간을 기다리는 나뭇잎.

하여 우주에의 회귀본능은 비감하리만치 아름다운 것.

소멸이 아닌 새로운 탄생을 위한 준비이기에

집착이나 미련 두지 않는 걸까.

지순히 높고 순결이 맑은

또 하나의 환생을 위하여

지금은 기도가 필요한 때.



그러나 분명한 이별의 예감 앞두고

어찌 마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으랴.

회한도 정한도 다 부려 놓고

체념과 달관으로 저만치 서 있는 가을의 허리쯤엔

그래도 차마 떨구지 못한 그리움 묻어 있다.

멀수록 간절한 그 정념일랑 어디에 띄울 것인가.



모든 생명 있는 것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할 존재.

그래서 허망하다.

단풍 불 꺼지고 낙엽 져 사위면

그땐 빈 숲에

주체 못 할 바람소리뿐이리니.



가을은 그래서

고행의 숱한 밤들이 영근 사리였다가

조개비 아픈 상처가 키운 진주였다가

차마 못 견딜 담금질로 뼈 깎아 세공한 상아 그 눈부심 이리.

자칫 파열할 듯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이 가을의 律,

정연히 다스리기 위해

하늘은 저리 창창하고

바람은 돌아앉아

칼날 시리게 가나 보다.

<1990 만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