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숲 낙엽길 사뿐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바로 옆집에 사는 현주 씨는 서울에서 왔으며 몇 해째 여기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 중이다.
그녀는 주말만 되면 늘 자연으로 향한다.
단풍 숲과 삼나무 숲을 보러 붉은오름 사려니 숲에 가려는데 동행하겠냐고, 이른 아침 연락이 왔다.
제주어로 사려니는 신성하다는 뜻으로, 밀밀한 삼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향이 신령스러운 느낌을 안겨주는 곳이다.
신성한 숲이란 이름만 궁글려도 환희심 만발하며 급 땡겼다.
약 11킬로 거리의 평탄한 길을 세 시간 정도 걷는다니 산책이나 마찬가지인 코스다.
당연히 오케이~냉큼 준비하고 그녀와 동행이 되어 집을 나섰다.
그녀는 좋은 이웃이자 부담없는 도반이다.
주말에 어딜 가자고 하면 그녀는 한번도 거절한 적 없이 번번 네, 좋아요 선뜻 응해준다.
며칠전 혼자 다녀온 곳이라도 서슴없이 동행을 한다.
사실 이 경우 별로 내키지 않을 수도 있으련만 전혀 싫은 티 보이지 않는다.
매사 긍정적인 성격은 이래서 좋다.
귤 농장을 지나고 목장 지대도 스치고 억새 하얗게 깔린 평원을 벗어나니 울울창창한 숲이 눈앞에 전개된다.
한라산 언저리에 있는 수많은 오름 중 하나인 붉은오름은 휴양림 숲으로 초입 나무들은 아직 푸른 기운이 남아있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붉은 단풍 한창이거나 더러는 낙엽 져 땅에 누웠는가 하면 청청한 해송과 삼나무 빼곡히 하늘을 가렸다.
도중에 만난 천미천은 마른 내 같으나 폭우가 쏟아지면 급류 기세 엄청나다는데 높다란 반궁형 나무다리 제법 운치 있다.
시인 도종환이 '사려니 숲길' 시비에 적은 대로 "나도 그대도 단풍 드는 날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이 펼쳐지기도.
잎 가장자리에 흰 테두리 두른 토종 조릿대가 잔디처럼 좌악 깔린 숲에 미칠하게 쭉쭉 뻗은 삼나무가 맑게 걸러낸 공기는 청신했다.
사려니는 신성한 곳을 의미한다니 그래서인가, 제주의 전통적인 장묘문화를 보여주는 묘지가 유독 자주 눈에 띈다.
봉분 둘레에 화산석으로 산담 둘러 풀을 뜯던 마소가 드나들지 못하게 경계를 지어놓은 방식 독특하다.
이곳 사려니 숲은 사철 어느 때라도 걷기 좋은 숲길.
새잎 돋는 봄은 봄대로, 녹음 그늘 시원한 여름은 여름대로, 단풍 고운 가을은 가을대로, 삼나무 숲에 자욱이 눈발 날리는 겨울은 겨울대로.
귀한 이웃 인연 맺게 된 현주 씨 덕에 그냥 놓칠 뻔한 만추 풍경 접할 수 있었으니 오늘도 은총 가득한 하루.
마치 꿈처럼 여겨지는 화양연화의 나날 허락해 주신 하늘에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렸다.
붉은 단풍숲과 미끈하게 뻗은 삼나무 어우러진 사려니숲길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 1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