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리아에서 일출을

by 무량화

한국에서 딸과 함께 한 5박 6일의 행복한 일정을 마무리하는 날.

일출을 맞으러 새벽같이 오시리아로 갔다.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잠시 짬을 낸 이번 여정의 모든 스케줄은 전적으로 딸이 도맡아 짰다.

첫날 경복궁 별빛야행부터 부산에서의 시간들, 결혼식 참석 외에는 촘촘히 세운 계획대로 이른 아침에 기상해 곳곳을 주마간산 격으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꼭 찾아보고 싶었던 곳, 먹고 싶었던 토종 음식도 나름 살뜰히 챙겼다.

물론 수박 겉핥기식 시늉만 내거나 극히 최소화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이태를 부산에 살면서 구석구석 훑었어도 미진한 데, 하물며 유년의 추억 깃든 장소들 겨우 사나흘 가지고야 어림없는 노릇이다.

부득불 남포동 섬진강 재첩국 맛도, 해운대에서 게 잡으며 올려다봤던 조선비치 체류도 어그러진 점 못내 아쉬워했지만.

그러나 아직 젊은 나이이므로 기회는 앞으로도 만들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우리는 어슴프레 여명 틔여오는 아난티 코브로 알려진 오시리아 바닷가에 내려졌다.

근래들어 드물게 보는 쾌청한 날씨에 바닷바람 온화, 그야말로 이게 왠 행운인가.

지하철 타고 골목 기행을 즐기던 몇 해 전, 일광을 가면서 처음 오시리아란 역 이름을 듣고는 그 발음을 몇 번 되뇌어보았다.

외국어 같기도 한데 무슨 뜻이지?

오시리아는 인근 절경인 '오랑대'와 '시랑대'의 앞 글자를 딴 데다 장소를 뜻하는 접미사 '~리아'를 붙여 만든 합성어였다.

어감상 오시라는 환대의 느낌도 들어 작명 한번 잘했군, 머리 주억이게 만들었는데.

이곳은 기장읍 관광단지에서 아난티 코브를 거쳐 해녀촌이 있는 기장 연화리까지를 아우르니 무척 너르다.

해운대 호텔에서 기장 아난티 코브까지 제법 한참을 달려왔는데도 택시 요금은 퍽 저렴하게 나왔다.

카카오택시 요금제 자체가 꽤 합리적으로 짜여 있다더니, 붐비지 않는 시간대라서인지 얼마 안 나왔다.

전에 두어 번 와본 적 있는 아난티 리조트 하얀 건물이 벽공에 도드라져 보였다.

APEC을 앞두고 있어 객실을 예약할 수 없었다던 아난티 힐튼 호텔 뒤로 떨구고, 우리는 오른쪽에 위치한 시랑대를 향해 걸어갔다.

동해 일출을 마중하는 이 명당에 국립수산과학관이 자리했으며 한 사찰이 석조물 그득 채우고 서있다.

용궁사 못 미쳐 우리는 돌탑 울멍줄멍 쌓여있는 높직한 해암으로 올라갔다.

먼바다에 고깃배 불빛이 점점이 떠있었다.

동녘 하늘이 불그레 물들어 갔다.

적당히 구름이 깔려있는 바다, 올 들어 최상 조건의 일출 장면을 접할 수 있겠구나.

침이 꼴깍 삼켜질 만큼 기대감 부풀어 오른 우리.

곧 해 머리가 나올 터였다.



장엄 일출 순간이면 절로 떠오르는 시 한 편.

이 이상 일출 장관을 압축해 보여준 시가 또 있을까.

낙산사 바닷가 의상대 앞에는 시비도 서 있다.

중학 국어교과서에서 운율 익혔던 이 시조처럼 동해에서 수평선을 뚫고 붉게 솟아오르는 해돋이를 본 누구라도 감탄사 발하며 경건히 합장배례하게 된다.

나 또한 합장하고 해를 향해 가족과 아는 이웃들 건강을 기원하고, 새 가정을 이룬 손녀 위한 기도를 바쳤다.

가슴 왼켠에 따스한 물살이 고요히 출렁거렸다.

동시에 아래 시조를 떠올리면 흥분이 되며 절로 후끈 달아오르게 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동해 일출을 절창으로 뽑아낸 시조시인 조종현은 조정래 소설가의 부친이다.



의상대 해돋이 - 조종현 (1906~1989)

천지 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서툰 필설로 일출 장관 흠결 낼라 저어 돼 이 시를 빌려 대신하기로.



모처럼 들렀으니 바로 곁 용궁사도 예우상 방문해 대웅전 앞에서 고개 낮춘 다음 성큼 돌아서 아난티 코브를 거쳐 오랑대로 이동했다.

곁을 따르는 동해는 언제 봐도 청푸르다.

동해와 남해가 어우러지는 바다라 해운대 바다가 부산 바다 중에서도 유독 맑고 푸른 이유다.

처음 가보는 오랑대라 어디가 어딘지 안내지도만 의지해 계속 걸어간다.

길가엔 억새 은물결 하얗게 남실거리고 풀섶 해국은 조촐한 연보라빛 어여쁘다.

볕바른 산기슭 여기저기 길냥이가 흔하기도 하다.

딸내미는 그때마다 서서 그 애들을 사진에 담는다.

어떤 녀석은 딸에게 슬슬 다가와 바짓단에 비벼대기도 한다.

아마도 냥이 냄새가 배어있어 이 사람은 제게 우호적일 거라는 걸 본능으로 알아챈 듯.

여기 고양이들은 거의 중성화를 시켰군, 하기에 어찌 아는데? 물었더니 귀 끝을 보면 표시가 난단다.

고양이에겐 유독 삼신이 자주 찾아오기에 다산을 하는 편, 그로 인해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 문제.

해결책으로 중성화 수술법을 택하는 데 그 표시로 귀 끝을 약간씩 자른다고.

이번엔 거의 사라졌다고 여긴 풍경이 나타났다.

바닷가 응달진 언덕에 아직도 해변초소가 철망 겹겹이 두르고 서있는 걸 보자 분단국의 비애가 문득.

그러나 좋은 거만 보고 나누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이 위치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산자락 아래 해안선 따라 주욱 형성된 어촌이 드러난다.

가까이는 해녀촌인 연화리, 이어서 기장 대변포구, 죽성마을 드림성당이 나오고 일광바닷가에 이른다.

시간 넉넉하다면 한국 와서 일년살이를 했던 해변마을도 보여주고 싶다만.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 무대였던 곳도, 윤선도가 귀양 와 빈한한 어민들 위한 의생되어 치료해 준 곳도 가보련만.

바닷가에 우뚝 선 해신당 올랐다가 해광사 이층 누각을 통과해 경내에 들자 첫눈에 든 약수터.

물맛만 본 다음 대웅전 향해 합장하고 나와서 택시를 호출하니 가까운 데 있었던 듯 득달같이 나타났다.

미포 대구탕집에서 달게 아침을 먹고 호텔로 와 짐을 정리하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이틀밤 즐긴 자쿠지를 비롯 해운대 전경을 두루 사진에 담았다.

APEC 관계로 검색이 강화돼 탑승수속에 시간이 걸린다기에 일찌감치 차를 불러 김해공항으로 곧장 달렸다.

공항 대기실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허그를 나누고는 딸은 인천공항으로 나는 제주로 떠났다.

며칠간의 밀착동행으로 딸과 푸근한 추억과 훈기 나눠서일까, 한라산을 넘는데 갑자기 한기가 스며들었다.

이런 묘한 기분은 처음이다.

나도 그냥 내집이 있는 미국행 비행기를 탈까, 충동적으로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새옹지마 고사가 현존하고 질량총량의 법칙이 있듯, 행복한 일이 있으면 다음엔 고통에 대비할 필요가 있으며, 인간사 거개가 기쁨으로 환희작약한 뒤엔 괴로움이 과보로 주어진다던가.

그로부터 한 닷새간은 심한 디프레스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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