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인연으로 정해진 부모와 자식 관계를 흔히 천륜지간이라 한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 소셜 오피스 담당자와 사무적인 일로 국제전화를 통해 내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과정에서였다.
몇 년째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미국 내 의료보험이 중지돼 있어야 하는데 사무착오로 처리가 제대로 안 된 상태였던가 보다.
절차상 먼저 지극히 프라이빗한 생년월일부터 확인했다.
다음엔 태어난 곳을 물었다.
충남 어느 지역까지 재차 확인했다.
이어서 확인한 것은 어머니 이름이었다.
언젠가 시민권 인터뷰 서류에 본인 인적사항을 정밀하게 기재할 당시 썼던 엄마이름이다.
바로 그게 나의 존재증명원이 될 줄은 몰랐다.
구 씨 성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으나 한국에서처럼 아버지는 전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셈이었다.
모두가 인정하듯 유대민족은 여러모로 대단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종.
전 세계 인구의 0.1% 미만이면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민족이기도 하다.
미국 내 전체 인구의 고작 2.4%를 차지하고 있으나 사회적 파워는 막강하기 그지없다.
또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로스차일드나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 마이클 블룸버그 역시 유대계.
이 시대를 선도하는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구글 창업자도 유대인이다.
미국에서 어떤 부부가 아이를 출산했다고 치자.
이때 엄마와 아빠 중 누가 유대인이어야 아이가 유대계로 인정받을까?
유대교 율법에 따라 아빠가 아닌 엄마가 유대인이라야 그 자녀는 유대인이 될 수 있다.
즉 유대 사회는 모계사회다.
알만한 이는 그 확고부동한 이유를 납득할 것이다.
씨앗을 받아 키우는 밭이긴 하나, 어떤 씨를 발아시키는 가는 밭만이 아는 내밀하고도 고유한 성역이니까.
쥬이시에게 엄마란 존재는?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게 하는 끈이며 신앙심과 지혜를 물려주는 근원적인 존재다.
유대민족 혈통 계승의 핵심이자 정체성 유지를 위해 종교와 전통 및 윤리 규범을 '가르치는' 역할자로서의 임무야말로 무엇보다도 막중하다.
'Jewish Mother'라는 말은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고도 헌신적인 태도를 이르는 상징어로,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자녀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사고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가 곧 어머니다.
쥬이시들의 성공 바탕에는 이렇듯 모성이란 토양 외에 어머니의 역할 자체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결과겠다.
바로 그 점에서도 아마존 부족은 옳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은 대단히 용맹스러운 여성 전사로 구성된 부족이다.
이 아마존 부족은 모계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한다.
그게 맞겠다는 생각이 거듭 들게 된 연유라면 근자 접한 다음 경우 때문이기도 하다.
해외 입양아들의 부모 찾기를 도와주는 '배냇'모임을 통해서이다.
요즘엔 해외 입양아 거개가 자신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아예 입양인 네트워크에 올려놓고 친생부모 찾기 시도를 하는 추세다.
해외 입양인들이 친생모를 찾아 한국에 오면, 단 하나 자신의 존재증명인 입양서류에 근거해 유기된 경로를 거슬러 올라가며 하나씩 추적해 나간다.
어쩌다 부모를 잃고 거리를 헤매다 입양시설에 간 경우가 아닌, 버려진 아이라면 십중팔구는 엄마가 아이를 시설에 맡겼다.
기록의 단편들을 퍼즐 맞추듯 짜 모아 종당엔 엄마의 유전자 검사까지 동원해서 친생 관계를 확인받는다.
이때도 아버지 존재는 괄호 밖이다.
막장 드라마 소재로 동원되듯, 뒤늦게 부의 친자 확인검사 결과 유전자 불일치로 파국이 초래되기도 하는 가정사가 아주 없지 않은 세태다.
천륜 이전, 보다 근본적이고 한층 내밀한 핵심 주체인 발아 인자의 착상은 엄마 본인만이 알 뿐이다.
태아와 어머니와는 DNA를 나눈 데다 탯줄로 이어져 있었던 관계다.
더군다나 모체가 열 달을 태중에 품어 기른 사이 아닌가 말이다.
모성은 위대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친생모를 찾긴 했으나 멀리서 엄마를 만나러 온 자식과의 만남을 끝내 거부하는 모질고 독한 모정을 누차 보아와서다.
탈무드에,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전능자인 신도 세상 모든 곳에 천사를 보내줄 수 없기에 어머니라는 존재를 대신 보낸 거라고 했는데 더러 열외가 있긴 있다.
세상은 요지경 속이라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자관계가 성결하고 거룩하게 이어지면서 인류역사는 존속 돼오긴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