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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30. 2024

그림이 말해주는 루르드의 기적

카미노 스토리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루르드라는 궁벽진 산촌 마을.

그곳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었던 열네 살 베르나데트(Bernadette Soubirous)는 투아네트, 잔 아바디 등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땔나무를 구하려 집을 나섰답니다.

마을에서 꽤 떨어진 가브(Gave) 강변의 마사비엘 동굴 근처까지 갔는데 거기서 한 부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1858년 2월 11일에 일어난 일로 동굴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이 베르나데트 쪽으로 뿜어져 나왔다고 하는데요.

빛이 나는 쪽을 올려다보니 새하얀 옷에 베일 차림을 하고 파란색 허리띠를 두른 부인이 서있었답니다.

그 부인(Notre Dame de Lourdes)은 후광에 싸인 채 노란 장미 위에서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했는데요.

2월 18일, 아지 못할 그 부인은 베르나데트에게 앞으로 2주 동안 매일 와주길 청하면서 “나는 너에게 이 세상의 행복은 약속하지 못하지만 다음 세상의 행복은 약속하마”라고 했답니다.


이어서 "회개하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2월 25일, 부인이 가리킨 곳을 베르나데트가 손으로 파헤치자 깨끗한 물이 엄청나게 샘솟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발현 장소에 성당을 지을 것과 루르드 샘물을 마시고 그 물에 몸을 씻으라고 일렀습니다.

열여덟 차례나 마사비엘 동굴에서 성모님이 발현한 내용은 루르드 대성당 안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아래와 같이 상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

그 후 온갖 종류의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대거 몰려와 이 샘물을 마시거나 몸에 뿌렸는데요.

수많은 기적 사례가 보고되면서 소문이 전국 방방곡곡, 나아가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루르드가 삽시에 프랑스의 큰 화젯거리가 되자 정부는 마사비엘 동굴을 출입 금지 구역으로 묶어버렸지요.

누구라도 이곳에 접근하는 자는 엄중 처벌한다고 했으나 동굴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더 높아져 갔는데요.

폐쇄됐던 동굴은 나폴레옹 3세에 의해 1858년 10월 4일에 다시 개장되었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교계는 사회적 이슈 거리인 기적수와 베르나데트의 증언에 대해 거리를 두고 비판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다 1858년 11월 17일 비로소 루르드에 대한 조사 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1860년 1월 18일, 지역 교구장은 여러 정황을 주도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성모 발현 사실과 샘물의 기적을 인정했으며 1862년 교황은 성모공경의 근거지로 공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때는 교황 비오 9세 재임 당시로 역사적 사실에 의거한 내용입니다.

오늘날 루르드는 파티마와 더불어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치유 순례지 가운데 한 곳으로써, 매년 세계 각국에서 종파를 떠나 600만 명의 순례자가 찾아오는 힐링의 명소가 되었답니다.

현재 이 지역은 루르드 대성당 측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는데요.


중병을 앓는 순례자들을 위한 진료 시설과 그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7천여 명의 의료진과 수녀 및 민간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마련된 여러 동의 대단지 거주 시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례 의식은 새벽 6시 첫 미사를 시작으로 매 시간 이어지므로 누구라도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미사 참례를 할 수가 있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성직자와 수도자, 순례자, 환우들이 함께 동참하는 엄숙한 미사 예식 시간인 거지요.

미사 참례 전, 동굴 벽에 손을 대고 동굴 안을 돌며 기도할 때는 신성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는 경이로움을 체험하게도 된답니다.

특히 숙연할 정도로 감명 깊은 시간은 오후 세 시에 이루어지는 묵주기도 행렬인데요.

대성당 우측 강 건너 십자가의 길 옆의 소박한 성 베르나데타 성당 앞에서 출발해 다리를 건넌 다음 성지 광장을 한 바퀴 도는 장엄행렬은 대장관일뿐더러 크나큰 감동을 안겨줍니다.

맨 앞에 현시된 성체 그리고 성모상이 선도하는 뒤를 이어 각국에서 온 성직자들을 따라 자원 봉사자들이 환우들을 휠체어나
들것으로 천천히 이동시키며 전례에 참례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이어서 일반 순례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지광장을 한바퀴 도는데 분위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숙연하고도 경건하답니다.

환우들은 그렇게 하루 한 번씩 바깥공기를 마시며 대중들과 연대를 이루어 한마음으로 열절히 기도 바치는 가운데 병마를 물리칠 수 있는 기적 같은 힘을 얻을 법도 했습니다.

야간 촛불행렬은 더욱 감동적으로, 밤 아홉 시가 되면 수천 명이 촛불을 들고 성모 발현 동굴에서 출발하여 성지 광장을 지나 로사리오 대성당 앞까지 묵주기도를 바치며 걷는데요.


 이 예식이야말로 초자연적인 거룩함으로 전율이 일 정도였구요.

그레고리오 성가가 천상의 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가운데 기도를 선도하는데요.


이때 순례자들은 자신을 정화시켜 줄 촛불을 들고 종교나 인종, 국적이 다를지라도 다 함께 라틴어와 각국 언어로 기도를 바치면서 하나 되어 걷지요.

이 행렬은 1872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의식으로 행진을 마친 뒤 11시부터 동굴 앞에서는 마지막 미사가 집전됩니다.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당부한 루르드 성모님의 권고대로 날마다 이루어지는 촛불 행진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이 세상 풍경같지 않게 신성스럽지요.

폭풍우 치는 일기불순한 날씨만 아니라면 매일 밤마다 촛불 행진은 항상 열린답니다.


카미노의 완성,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한 달간의 진정한 마무리는 루르드에서 매듭 지어졌습니다.

그곳에서의 매 순간이 넘치는 은총이었기에 감사 기도가 강물처럼 흘러나오던 루르드였습니다.

오체투지 하며 걸어도 황감할 정도의 축복 누릴 수 있었던 여정 허락해 주신 하늘에 내내 감사드렸고 긴 여행 가능토록 성원해 준 아들딸에게 무척 고마웠습니다.

바라옵건대 모쪼록 그들 손길에 맡겨진 사명대로 치유의 은사 한층 보태어 주시길 청원드렸습니다.

제아무리 뛰어났다 해도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분 도움을 엎드려 청할 밖에요.

물 위를 걷는 게 기적이 아니라 내 발로 땅 위를 걸을 수 있는 게 기적이고 축복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저는 동의합니다.

실제 기적이란 현대인의 과학적 사고방식으로는 수용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고도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마술처럼 사람을 호리는 장삿속 이벤트로 치부되기도 하는데요.

‘지혜로운 사람은 증거에 비례하여 믿는다’는 말처럼 무신론자나 종파가 다른 입장에서는 루르드의 기적에 대해 논리에 입각한 합리적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요.

기적이 있다, 없다는 각자 주관적 판단영역이겠지만 루르드에 다녀온 후부터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여겼던 일이 이루어진다거나 불치병이 낫는 신비로운 기적 사례를 우리는 실제 접하기도 합니다.

초월적 현상을 신봉하는 원시 종교 시대라든지 미신이나 이단에 빠진 사교 집단에서나 다룰 법한 그런 기적 말구요,


홍해가 갈라진다거나 심봉사가 눈을 뜨는 그런 놀라운 기적이 주변에서 더러 일어나지 않던가요.

루르드의 메시지는 제게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불가사의한 치유의 기적 또는 초자연적 현상 같이 놀랍고 대단한 이적만이 기적이 아니라, 매일 아침 눈뜨고 일어나 숨 쉬는 그 자체가 곧 기적이며 감사할 일이라고 일러주었답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오늘도 매 순간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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