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홍팔경에도 가을빛 어리고

by 무량화

꽃이 흔하지 않던 예전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은 국화였다.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일러 사군자라 하여, 가을 국화는 완전한 인격을 갖춘 군자로 대우받았다.

자고로 국화는 서리와 추위에 굴하지 않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표상으로 칭송해 마지않았다.

심한 서릿발 속에서도 외로이 절개를 지키는 선비나 충신을 우러른다는 뜻의 오상고절이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우리들 학창 시절, 당연히 이 시조는 학생이라면 다들 배웠고 외웠다.

그만큼 위상 대단하던 국화다.

가을 국화에 대한 예의로 국화 잔치가 열리는 서홍마을을 찾았다.

요즘엔 국화전시회도 대폭 업그레이드가 되어 구경할만하던데 이곳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

따라서 성큼성큼 한바퀴 도는데 시간 별로 걸리지도 않았다.



나선 김에 서홍팔경을 다시 돌아보기로 하였다.

추색 깃들어 분위기가 달라졌을 테니 느낌도 새로울 거 같아서였다.

서귀포시 구시가지인 서홍동은 제주 산남지방의 동서 중간지역에 위치한 중산간 지대다.

서홍동은 서귀포시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인 '홍로'에 뿌리를 두고 있는 유서 깊은 고을.

한라산 자락과 잇닿았으며 남쪽으로는 서귀포 시내 천지동과 마주 보고 있는 서홍동이니 바로 우리 이웃 동네다.

동쪽은 동홍동, 서쪽은 호근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사방이 봉우리로 둘러져 있어 지형이 화로 모양이라서 홍로(烘爐)라 했다고.



문헌에 따르면 서홍동은 이미 고려말 충렬왕 26년에 홍로현청관가가 개설되었다니 천년을 이어온 최고(最古)의 마을 맞다.

명실공히 산남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정의현 이전의 홍로현청 소재지라 지방 중심지였다.

역사가 깊은 고을인 만치 지혜의 샘 지장샘, 마을 지켜주는 흙담솔, 제주 명물 온주밀감나무, 고인돌 닮은 들렁모루 같은 서홍8경도 있다.

서홍팔경은 서귀포시 서홍동 주민자치센터에 서홍동을 전국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발굴해 낸 관광 상품이다.

대표 경관으로는 하논 분화구(제1경), 솜반천(제2경), 흙담솔(제3경), 앞내 먼나무(제4경), 제주 최초의 감귤나무(제5경), 성당의 녹나무(제6경), 지장샘(제7경), 들렁모루(제8경)가 있다.

또한 겨울에도 온화한 기후라 일찍부터 감귤 재배를 해왔다는 기록이 백제 고려 조선조 역사에도 남아있다.

서기 476년 백제 문주왕 2년에 제주에서 귤을 공물로 헌상하였다는 기록에서 처음 문서상에 귤이 등장한다.

제주 최초의 온주밀감나무를 들여와 보급시킨 곳도 서홍동에 자리한 현 복자 수도원인 면양의 집이다.



지역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마라. 지장샘물만큼만 살아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크게 부자도 바라지 않으며 아주 가난한 것도 마다하고 그저 평범하게 보통 삶을 살고 싶다는 심정을 나타낸 말이겠다.

지장샘 설화는 고려 예종 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송나라 왕이 지리서를 본 즉 고려국 제주땅의 지세와 산세가 특이해 걸출한 인재가 많이 나타날 형세로 판단하였다.

그는 즉시 풍수에 능통한 호종단을 불러 제주에 건너가서 지맥과 수맥을 끊도록 지시했다.

홍로마을에 온 호종단은 '꼬부랑 나무밑 헹기물'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술서가 틀렸다며 찢어버리고 돌아갔다.

바로 그 직전에, 홍로마을의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백발의 노인이 위급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자신을 감추어 달라고 부탁했다.

농부는 그 백발노인을 소 길마로 덮어 숨겨줬다.

곧이어 호종단이 쫓아와 이 근처에 꼬부랑 나무밑에 헹기물이 있다는데 모르느냐고 묻자 농부는 수상쩍은 자라 모른다고 답한다.

호종단이 돌아간 후 농부가 길마를 들어내어 보니 숨겼던 백발노인은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는 한 그릇의 헹기물이 남아 있었다.

이 물을 그 자리에 부었더니 계속해서 맑은 물이 솟아나며, 그 물은 지금의 지장샘이 되었다고.

백발노인은 실은 지장샘의 수신(水神)이었으며 꼬부랑 나무밑이란 소 길마 가지가 구브러진 것을 가리킨 것.

홍로마을은 지장샘물로 해서 마을에 인가가 늘어 번성해지고 농사는 풍년이 들어 살기 좋은 고장이 되었다.

주민들은 해마다 정초에 이 지장샘에 제를 지내며 마을을 있게 한 음덕을 기렸다고.



이 마을 동쪽에 있는 면형의 집(천주교 복자수도원) 앞뜰에 거대한 녹나무 한 그루가 위엄찬 모습으로 서 있다.

수령이 250년 가량되며 수관(樹冠) 그늘 너르게 드리우고 있어 장관이다.

우람스러운 이 녹나무가 이곳에 심어진 것은 1910년대로 알려지고 있다.

녹나무는 제주의 풍토에 맞는 수종으로 늘푸른 상록교목이라서 도의 상징나무로 지정됐다.

서홍동에서는 노거수(老巨樹)로 보호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지정을 꾸준히 추진 중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녹나무다.

또 하나, 1911년 일본에서 감귤나무 묘목을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와 시험재배에 성공하며 이름이 났다.

프랑스인 타케 신부는 지역 식물에 대해 탐구 중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특별자치도임을 세계 식물학계에 보고하여 인정받았다.

왕벚나무 몇 그루를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자 답례로 온주밀감 열 네 그루를 보내온 것이 제주 온주밀감의 시초다.

열네 그루의 나무 중 하나가 백 년 넘게 면형의 집 앞마당을 지켰는데 몇 년 전 고사했다.

고사목은 비정형 나무조각 작품으로 부활해 <홍로의 맥>이라는 이름으로 성전인 주님의 집 현관 안에 전시돼 있다.

1950년대 중반 이후엔 재일동포들에 의해 일본에서 밀감 묘목이 반입되면서 제주에서 가장 소득 높은 작물로 각광을 받아 한때 '대학나무'로 불렸던 귤나무.

면형의 집 피정센터는 홍로 본당이 있던 곳으로 이처럼 녹나무 거목과 100년 수령의 온주감귤나무가 자라고 있다. ​



흙담솔은 원래 흙담 소나무길이었다.

마을 앞이 너무 트인 탓에 허하다 하여 흙으로 토성을 쌓은 위에 심은 소나무가 이제는 서귀포의 명물이 되었다.

구한말인 1910년 봄, 당시의 향장(鄕長) 고경천 진사가 제의해 마을 주민들이 맥수물 입구로부터 동홍동 굴왓모루까지 소나무를 심었다.

운치 있는 기품으로 마을을 수호해 준 흙담 소나무는 오랜 세월 강건히 버텨줬는데 도시가 팽창하면서 학교 담벼락 사이로 옹색하게 밀려났다.

120년 생 해송 67그루는 현재 서귀포시 보호대상목으로 지정됐다.



마을 안길 앞내 다리 지나 한길 복판에 한그루의 큰 먼나무가 서있다.

먼나무는 반질거리는 두꺼운 잎을 가진 감탕나무과의 상록교목이다.

여름에 피는 꽃은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잎새 사이사이로 보이는 빨간 열매가 매력적이다.

마음 앞 냇가에 언제부터 있어 온 것인지 연륜을 알 수 없는데 안내판에는 수령 170여 년이라 적혀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 제주대 농대의 자문 결과는 수령 350년 생으로 추정했다.

나무가 서있는 맞은편 위쪽에는 오래전 상여집이 있었고, 그와 연관시켜서인지 영험한 신목(神木)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 마을에서 보호가치가 있다 하여 축대를 쌓고 주변을 정리하여 표시판에 '마을나무'라 썼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먼나무로 현재 도로 한복판에 엉거주춤 서있지만, 철 따라 붉은 열매 꽃처럼 달고 소담한 자태로 군림하는 노거수다.

바로 인근에 '변시지 그림정원'도 자리했다.

변시지 화백은 서홍동에서 태어나 타계할 때까지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와 같은 제주의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한라산 기슭, 마을 뒤쪽으로 높지 않은 모루와 오름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서홍동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세인 이 마을 서쪽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들렁모루가 기다린다.

'들렁'은 제주어로 속이 비어 있는 바위를 의미하고 '모루'는 동산을 뜻한다고 한다.

진입로 초입, 제주에 흔치 않은 굵다란 맹종죽이 군락 이뤄 쭉쭉 뻗어있더니, 금세 어디나 흔한 곶자왈 형태의 숲길이 나타난다.

짧은 숲 속 산책로라는 안내글만 보면 마을 뒷동산처럼 오르기 편하겠다 여기겠으나 짧은 코스는 맞지만 찾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이 길은 비교적 인적 드물어 호젓함을 넘어 으슥하기조차 하다.

따라서 혼자 산행하기엔 무리가 따르므로 가급적 삼가는 게 좋다.

완만한 언덕 꼭대기에 큰 돌이 얹혀 있는 모습이 특이한 들렁모루다.

고인돌같이 괴인 암석덩이는 너부죽한 두꺼비 혹은 멧돼지 형상으로도 보인다.

들음 돌 옆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트여 뷰가 매우 훌륭하다.

서귀포 앞바다의 제지기오름부터 섶섬 범섬까지 선명히 보였으며 한라산도 북으로 고개 치켜들면 바로 눈앞이다.

한라산 남쪽의 동서를 연결하는 남부산록도로에서 진입하면 수월하다.



하논 분화구는 용암 분출로 생성된 일반적인 화산 분화구와는 다르게 마르(maar) 형 분화구다.

용암이나 화산재 분출 없이 깊은 땅속의 가스나 증기가 지각의 틈을 따라 한 군데로 모여 한꺼번에 폭발하여 생성된 분화구를 말한다.

즉 화산활동 초기 단시간의 폭발적 분출 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작은 언덕이 화구를 둘러싼 화산이다.

지표면보다 낮게 형성된 화산체로 산체의 크기에 비해 큰 화구가 특징이다.

한반도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인 하논은 수만 년 동안의 생물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살아있는 생태 박물관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분화구 곳곳에서 용천수가 솟아 제주에서 논농사를 짓는 유일한 장소이다.

농약이나 제초제 사용을 줄인 덕에 생태계가 살아있는 곳으로, 돌미나리 자운영 잠자리 우렁이 개구리 등을 볼 수 있으나 메뚜기는 없었다.

'논이 많다'는 제주어로 '큰 논'이라는 뜻의 '한논'이 하논으로 변형됐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솜반천은 일단 시내와 인접해 있으므로 찾기가 쉬운 장소임에도 비교적 한적하고 조용하다.

천지연 폭포의 상류로 종남소, 고냉이소 등 여러 곳에서 용천수가 샘솟아 사철 깨끗한 물이 흐른다.

마을 가운데를 지나는 곰내와 앞 내 두 냇물이 흐르는데 서쪽에서 내려온 진진내까지 합쳐져 맑은 물 풍부한 솜반내를 이뤘다.

시에서 자연 하천공원으로 조성한 후 다양한 식물을 비롯해 수중생물들이 서식하고 백로 등이 노니는 생태학습장이 되었다.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청류가 흐르는 솜반내라 여름철이면 시민들이 피서차 찾는 이들이 많아 물놀이객들로 여름 내내 붐빈다.

어린이들 물놀이하기에 안전한 수위라 가족단위로 많이 오는 편이며 조경도 잘 되어있는 데다 가로수가 많아 그늘막 역할을 해준다.

그에 따라 솜반천공원에서는 여러 행사가 다채로이 열린다.

제일 끝으로 들른 솜반천, 늦가을이라 다섯 시 좀 지나자마자 해 기울며 어느새 조명등 밝혀져 공원 분위기 더욱 고즈넉하다 못해 호젓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