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연교에서 선셋을, 새섬에서 환상숲을

by 무량화


해질녘이 가장 아름답다는 새섬으로 낙조를 보러 갔다.

야자수 줄지은 가로와 천지연 절벽 위에 들어선 서귀포 시가지 풍광은 다분히 이국적이다.

포구와 유람선 선착장을 지나 서귀포항과 새섬을 잇는 세연교에 오르자 해풍이 냅다 떠밀어댔다.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다리'라는 새연교에 서서 잠시 바라본 한라산은 운무에 싸여 아스라했다.

시간이 일러 산책로를 따라 섬을 한바퀴 느릿느릿 돌았다.

해풍에 나부끼는 억새길이 이어지다가 원시림 닮은 으슥한 숲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용암 덩어리 새새로 물이 고인 웅덩이도 보였다.

가까운 바다에는 빨강 등대와 흰 등대 사이로 크고 작은 배가 연신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하루 일과 마치고 저물녘 귀가하는 직장인들의 자동차 행렬처럼.

왼편으로 문섬이 애기 섬을 거느린 채 떠있었고 오른쪽 수평선 위로 멀찌감치 범섬 모습이 드러났으며 법환방파제도 나타났다.

새섬공원 산책로 끝에서 다시 원자리로 되돌아왔을 즈음 해는 점점 바다 가까이로 내려왔다.

그 순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 꼭 여기서 해넘이를 지켜보기로 직정 하였다.

적당한 구름이 배경으로 받쳐주지 않아 좀 심심하긴 했으나 서녘 바다로 스러지기 직전의 석양은 장엄했다.

바다가 아니라 구름층 사이로 조용히 침몰해 사라져 가는 해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참으로 평온했다.

우리네 삶의 종결도 저처럼 고요할 수 있다면, 이승과 평화로이 작별할 수 있다면, 그 누가 소멸돼 감을 종말이라 두려워하랴.

겨울 지나 봄 오고 밤이 가면 아침 맞듯 영혼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곳은 곧 피안이려니.

사바의 번뇌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경지라면 우리 미소 지으며 그 길 가리니.

노을에 잠기고도 한참토록 은은히 감도는 빛의 여운은 아주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종당엔 바다와 하늘 모두 푸르스름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자 괜히 센티한 심사가 되었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더불어서였을까, 은밀스럽고도 애틋한 정서를 자아내게 했던 새섬의 선셋.

사라짐과 떠남이 주는 허무감은 그러나 無爲요, 텅 빔은 없음이나, 공백이 아니라 비워져야만 비로소 충만히 채울 수 있음이거늘.

문득 한기가 느껴져 팔짱을 끼자 심장 규칙적으로 힘차게 뛰는 파동이 전달되며 새삼 삶의 의욕 뜨거이 타올랐다.



LED 조명이 불 밝히자 색색이 고운 빛의 다리가 되는 새연교를 지나 어둠살에 파묻힌 새섬으로 진입했다.


지난해 대대적인 보수정비를 한다며 내동 닫혀있는 동안 새섬은 놀랍게 변신, 여름 내내 내방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광복절 야간행사장에 들렀다가 신비롭게 변한 새섬에 연신 감탄사를 발한 이후, 몇 차례 지인들을 새섬으로 초대했었다.


반딧불이 무수히 나는 숲도 같고. 일본 작가 쿠사마의 '거울의 방'을 떠올리게 하는 새섬.


연출 뛰어난 LED 레이저 미디어 효과를 예술적으로 극대화시킨 새섬은 환상의 숲 그 자체라 지인들마다 꿈길 거닐었다며 즐거워했다.


광섬유가 드리워진 빛의 터널이며 비밀의 화원에 영롱하게 오색빛 펼쳐지는가 하면 달토끼와 사슴가족 평화로이 노니는 새섬의 황홀경은 우리를 잠시 세간사 잊게해줬다.


서귀포는 11월 치고는 온화한 날씨를 보여주므로 야간 열 시까지 개장되는 새섬에서의 데이트도 각별할 듯.


이날은 같은 주소지에 사는 이웃들과 저녁마실 나왔다가 아홉 시 무렵 비로소 새연교를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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