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봉에서 섭지코지 한달음에

by 무량화

어제 성산포를 늦은 시각에 다녀왔다.

피곤했던지 늦잠을 잤다.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야 일어났는데 새 한 마리가 창가에 앉아있었다.

처음 보는 그 새는 언제부터인지 말간 눈 동그라니 뜨고 쳐다봤나 보다.

참새보다는 훨씬 커 직박구리만 한데 이름 모를 낯선 새다.

한참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노래 한 줄 남기지 않아 좀 서운했다.

12층 내 창가까지 와서 머문 데는 까닭이 있을 거 같다는 느낌.

단지 우연이겠지만 어떤 흔적이나 표징을 기대했음은 왜일까.

우리는 어째서 새나 나비를 보면 영혼을 생각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였으리라.

솟대의 새가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듯, 사람과 신을 연결해 주는 매체가 새라고 여기므로.

아마도 어제 일출봉 오르다 본 새머리 닮은 눈매 선연한 바위의 기억 때문일 듯.

혹은 간밤 잠들기 전에 읽은 이생진 시인의 시 때문일지도.

구순 지난 시인이 쓴 일기와도 같은 시 모음집인 <무연고>.

<무연고> 시집 머리말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나이 구십이 되니 알 거 같다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이제 철이 드는 모양이다

이런 결말에 결론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거기엔 조건이 있다
첫째 건강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구십이 되어도 제 밥그릇은 제 손으로 챙겨야 한다는 것과
셋째 밥 먹듯 시를 써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제정신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



금세 일출봉 앞에 다달았다.


등경불 바위며 장수바위 매바위 후딱 지나 십오 분이면

오를 수 있는 정상이다.


소가 누워있는 형상의 우도가 건너편 바다에 떠있고

그 옆으로 식산봉 봉긋 내수면에 그림자 담갔다.


뒤돌아서면 한라산 아래 뭇 오름 아스라하고.


산정 굼부리도 금방이다.


드넓게 펼쳐진 분화구, 군데군데 녹빛 여위어가고 있었다.


수평선 바라보며 멍 때리기 딱인 일출봉 정상, 그러나 대기 어느새 소슬해진 오후다.


새벽 일출 영접이 아니라도 성산일출봉 다시 올라 수평선 응시하며 시간 셈하지 말고 하냥 머물다 오기로 한다.

그때라야 한 줄 숫된 글이나마 쓸 수 있을 듯.

잠시 잠깐 성산포 언저리 돌아본 주제에 언감생심 무슨 사설 늘어놓으랴.

성산일출봉 계단길 총총 올라 잠시 분화구 내려다보곤 내려왔으니 소회랄 거조차 건지지 못했고.




고은층에게는 심신 건강이 첫째 자리를 차지하는 주요 명제라 섭지코지까지 걷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 충분히 걸을만하다.


터진목을 스치고 광치기해변을 지나 차도를 따라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해안선 따라 걸을 때는 좋았는데 차륜 쌩쌩 달리는 빤한 신작로는 좀 질린다.


한참을 걷다가 시계를 보니 마음이 급해 택시를 탔다.


후딱 섭지코지 입구다.


낮으막한 언덕길을 휘돌아 오른다.


말의 고장 제주답게 혹은 천고마비의 계절답게 여기저기 윤기 흐르는 말들이 마른풀을 뜯고 있다.


연보라 개쑥부쟁이와 해국, 샛노란 야국이 해안 절벽길 따라 무리 져 만개해 장관 이룬 섭지코지.


초입의 달콤한 느낌 드는 언덕 위의 집은 드라마 세트장이라는 올인하우스​다.


얼마쯤 지나 만나는 왼쪽 언덕 석축은 제주도 기념물인 협자연대로 연기를 피워 급한 소식을 보내던 봉수시설의 일종이다.


바닷가 언덕 위에 솟은 높다란 등대는 그대로 패스한다.


곧이어 글라스 하우스.


아무리 명성 있는 건축가라도 안도 타다오의 거대한 축조물 어떻게 이 절경지에 자리했을까? 볼 적마다 의아스럽게 여겨진다.


​섭지코지 길을 메운 관광객 다수는 중국인들이다.


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 서성거리고 있는 그들이 기다리는 포토타임은 십여 분 지나면.


벼랑가에 외따로 선 붉은 암석 주변에 노란 야국이며 연보라 해국에 저녁놀 옅게 스며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