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봉으로 향하기 전 잠시 곁길로 빠졌다.
서빈백사해변에서 언덕으로 올라가자 우도정원 팻말이 나왔다.
잡초 키대로 자란 거친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있는 할머니 한분이 보였다.
그 인근에서 건초를 먹고 있는 말이 배경으로 받쳐줘 목가적인 전원 그림 그럴싸했다.
풀 반 고구마덩굴 반인 밭고랑으로 들어섰다.
제대로 건사를 해주지 않아 고구마밭에 벌레가 꾄 터라 성한 잎새가 거의 없었다.
밭에는 그래도 고구마꽃이 피어있었다.
고구마는 하나같이 굼벵이가 파먹어 흠집 투성이었다.
그렇다면 고구마줄기는 무공해일 터, 생각 있으면 얼마든지 줄기를 따 가라기에 좀 땄다.
고구마는 나눠먹고 싶어도 꼴이 너무 험해서 드릴 수 없다며 할머니는 오히려 미안해했다.
여든셋이라는 그 양반은 물질은 해본 적이 없고 남편도 배를 타면 멀미가 심해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왔다며 허허 웃었다.
고구마줄기 따느라고 소비한 시간을 벌충할 요량으로 빠르게 우도봉에 올랐다.
완만한 산기슭이나 바람에 떠밀리면서 걷다 보니 속도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곳곳에 억새 명소가 펼쳐졌지만 느긋하게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다.
해풍이 굉장히 심하게 불어 체중 하나 감당키 어려운만치, 억새 역시 죄다 꺾일 듯 휘어져 누웠다.
우도봉 정상의 백색 등대와 다시 한번 더 조우하고는 능선 재빨리 넘어 검멀레해변으로 향했다.
그 계단길은 해송 양 켠에 빼곡하게 자라 바람막이 구실을 해준 덕에 한결 안온했다.
해안길로 내려서자 이쪽도 마찬가지, 바다 쪽에서 해풍이 미친 듯 불어 제쳤다.
조심조심 난간을 잡은 채 검멀레해변으로 이어진 층계를 내려갔다.
오후로 기웃해진 시각이라 기온도 내려간 데다 차디찬 해풍 탓에 옷깃 여몄어도 체온이 떨어졌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며 후려쳐대는 강풍에 실컷 부대끼고 나니, 사실 지금껏 후유증으로 어깻죽지가 뻐근하다.
젊은이는 바람맞으면 마음 엄청 아프겠지만 나이 든 지금사 된통 바람맞으니 살이 아파 며칠째 근육통 심하더라는. ㅎ
지난번에 왔을 적에도 검멀레해변은 내려다 보고만 말았다.
시간이 촉박해서였다.
이번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데다 마침 물도 빠진 터라 벼랑 초입에 있는 동굴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만조 때는 물에 잠기는 곳인 듯 굴 안쪽은 젖어있었으며 바위가 미끄럽기에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얼른 나왔다.
하긴 멀찌감치 물러나 모랫벌에서 건너다보거나 도로 위로 올라와 내려다보는 정경이 외려 더 근사했다.
폭이 고작 1백 m 정도인 작은 해변이나 깎아지른 석벽이 병풍 두른 듯 감싸 안은 풍광이 장관인 이곳.
높다란 단애에 겹겹의 퇴적층이 쌓이면서 결무늬 신비로운 풍광을 빚어낸 해안이다.
기암절벽은 수억 년에 걸친 해식작용, 풍화작용의 결과물로 태고의 장엄미가 느껴졌다.
화산석인 검은색 현무암이 오랜 세월 동안 자디잘게 부서져 까만 모래로 변해 모래찜질을 하면 최고라고.
‘검다’의 검에다 ‘멀레’는 모래를 뜻하는 제주어로 검멀레해변은 검으칙칙한 모래와 투명히 푸른 바다가 돋보이는 명소다.
검멀레를 품은 우도(牛島)는 오랜 세월 무인도였다가 1679년 국유 목장이 설치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초중학교까지 있는 섬으로 우도땅콩을 비롯 청정해역에서 채취하는 소라, 전복, 홍해삼 등의 인기가 높은 편.
검멀레해변 위 언덕을 따라 형성된 상가는 제법 붐볐다.
어울렁 더울렁 인파에 섞여들어 우도땅콩 아이스크림을 사서 달콤한 맛 즐기며 산자락 돌아 배터로 왔다.
성산포로 가는 배는 손님을 기다리며 출항준비 중이었다.
떠나는 이 아쉬워하며 작별하는 장소는 터미널이든 공항이든 항구든 어디나 추억의 시간들 반추하느라 분위기 고즈넉하다.
잠시의 인연도 인연, 전전생 어딘가에서 부터 끈이 맺어졌기에 오늘 나 여기에 닿았음이니.
파도 하얗게 뱃고물을 따르며 멀어지는 섬에게 웬지
그래야 할 거 같아 손끝 살몃 흔들었다.
별리는 어느 경우라도 애틋하다.
절해고도 외딴섬, 제주 안의 또 섬이므로 왜 아니 그러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