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 행렬을 마지막으로 본 건 80년대 중반의 어느 겨울날이다.
하얀 종이꽃이 달린 꽃상여 말고 울긋불긋 단청 화려한 그런 상여였다.
보개를 씌운 네 모퉁이에 봉황 머리를 꽂고 비단 매듭술로 호화롭게 치장을 한 상여 네 귀에는 청사초롱 달아 저승길 밝혀줬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 있을 문화재급 전통 상여로, 사방에다 신선이나 청룡과 황룡, 연꽃 같은 초화, 상서로운 구름 조각을 넣었다.
출상 날, 요령잡이가 요령을 흔들며 앞소리를 메기면 상두꾼이 따라서 뒷소리를 받아 부르던 애달프고도 구성진 만가(輓歌).
선산 가는 길은 눈이 두 뼘쯤 쌓여 일꾼들이 앞서가며 길을 틔워야 했다.
산야에 눈이 하얗게 쌓인 한겨울에 아버지는 흙이불 아래 누웠다.
백설과 대비되어서일까, 상기도 선연한 상여의 울긋불긋 호사스러운 원색과 만장의 긴 행렬 문득 떠오르게 했던 곳이 있다.
대설인 오늘, 눈은커녕 햇살 다사로운 오후에 왈종미술관에 들렀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맨 처음으로 왈종미술관 뜰에 들어서자마자 왜 상여가 연상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분명 이유가 있으니 정원 처처에 자리한 새와 꽃 조각의 이미지에다 강렬한 색채 때문이었으리라.
자동적으로 단박 떠오른 연상작용에 의해 나타난 물상은 오래전에 본 상여였다.
이번에는 봄꽃 휘늘어진 따스하고 화사한 그림들이 전시된 미술관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긴 그림 외의 옥상 전시장에서도, 맞아! 이건 일상 안에 내재돼 있는 죽음을 형상화시켰구나 싶었다.
가까운 이웃인 생과 사를 하나로 파악하지 않았다면, 나아가 윤회관을 믿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아니면 그리 적나라하게 전통 상여에서 모티브를 취해왔을까? 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본 건 아니지만 말이다.
저 길게 째진 새의 눈매와 새카만 눈동자는 딱 상여에서 보았던 낯익음이라 오싹 소름 돋았던 건 사실이니까.
북망산천으로 떠나신 아버지의 출상 날 아주 가까이서 보았던 상여, 거기 형형했던 눈매가 긴 봉황 그리고 비늘 푸른 용....
물고기와 새와 꽃, 골프채와 사슴들을 대형 화폭 가득 풀어놓고 '중도(中道)와 연기(緣起)'라는 철학적 수사 속에 은거하는 그.
그의 예술세계에서 혹자는 동심의 세계를 느꼈을 테지만 미성년자 관람 불가 코너에 춘화도 전시돼 있으니 꽤 해학적이고 현학적이다.
더러는, 성공한 화가인 그에게서 상업주의에 매몰된 브르죠아적 냄새가 난다며 머리 흔들어 대지만 그건 시샘일지도.
좌우지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대로 설왕설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나저나 작품 감상에 과연 정답이 있고 방법이나 틀이 있는 걸까.
안목이 높아 작품을 보는 ‘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꼭 작품 설명을 들어야 할 까닭도 없다.
아무튼 난해한 미술비평가의 글이나 세상의 평판에 휘둘리지 않기, 나아가 어설프게 아는 척하지 않기.
단지 그냥 끌리는 작품이 있다면 그 앞에 멈춰 서서 상상력 풀어놓고는 보이는 그대로 솔직하게 느끼기.
직감적으로 와닿은 진솔한 내 느낌은 상여의 새 그 자체였다.
어쩐지 새는 이승과 천상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삶과 죽음의 영역을 잇는 영적이고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