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인가, 주책인가

by 무량화


비자림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브런치를 들고 나왔더니 오후 한 시 무렵이었다.

제주 날씨는 비람 거칠게 불면 더욱 을씨년스럽게 춥다.

이런 날엔 숲길이 안온해서 걷기 맞춤 맞다.

더구나 바로 전날 성산에 올랐다가 날아갈 뻔했기에 이번엔 비자림을 목적지로 삼은 터.

연계점이 맞닿아서인지 한번 동쪽에 꽂히면 한동안 동쪽만 찾게 되는 습성 탓인가.

버스 정거장에서다.

낯선 듯 주춤주춤 버스 시간표를 훑으며 서성거리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장년의 남녀.

못 말리는 오지랖이 선뜻 나서서 물었다.

한국인이세요?

그러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종종 그런 오해를 받듯 외국에서 오래 산 사람은 분위기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

어딜 가실 겁니까?

일출봉 가려는데 201번 타야 하지요?

네, 맞아요. 저도 그 차를 탈 건데 잘 됐군요.

막 당도한 버스에 우리는 함께 올랐다.

남자는 뒷좌석에 앉고 여자는 내 옆 자리에 앉았다.

그때부터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됐다.

일출봉 가신다니, 어제도 바람 심해 날아갈 지경이었는데 오늘같이 바람 강한 날 오르기 힘들 건데요.

다시 오지랖 발동, 날씨가 이래서 비자림 가려는 거라 하자 그녀는 우리도 거기 따라가면 안 될까요? 그런다.

따라가고 말고 가 어디 있어요, 어느 곳이든 누구나에게 활짝 열려있는 자연인데요.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목소리 나직이 우리는 연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중간중간 바닷가 명소도 알려주고 그녀는 궁금한 관광지에 대해 묻곤 했다.

전에 미국에서 지낼 때 주일날 하루만은, 한국성당에서 미사 후 교우들끼리 모여 수다꽃을 피우면서 고팠던 한국말을 실컷 나누던 생각이 났다.

그녀 역시 한국에 나와 살지만 한국어가 무척이나 고팠던가 보다.

한때 같은 입장이었던 나를 만나자 자기도 모르게 다변가가 돼버린 그녀와 스스럼없이 신변 얘기를 나눴다.

열 살 무렵 부모님을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민 와서 오십 년 넘게 산 이력의 남자와 그의 아내 역시 비슷한 경우였다.

그들은 산타바바라 이웃 마을에서 거주한다고 했다.

지난해 Retire를 한 그들은 친구가 사는 서귀포에 놀러 왔다 간 뒤, 자녀들과 의논 끝에 일 년 간 제주살이를 하기로 결정하고 메리어트 호텔 옆 전망 좋은 집을 렌트했다고 한다.

그간 줄곧 차를 신발처럼 여기며 살아온 그들인지라 제주에서만은 한갓지게 걸으면서 느긋이 살고 싶어, 일부러 차는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글도 아쉬운 대로 읽을 수는 있으니 노선 검색해 버스 타는 데도 별 어려움이 없는 편이었다.

그럭저럭 차는 벌써 성산을 지나 종달리에 접어들어 지미봉도 지나쳤다.

하도리를 스칠 즈음 새하얗게 문주란꽃 피는 토끼섬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 무렵부터 내심 잠정적으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화제는 무궁무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끝 간데없이 펼쳐졌다.

점입가경, 그렇게 양국의 대통령부터 정치 경제 측면까지 여러 방향으로 대화는 뻗어나갔다.

어라, 여기가 대체 어디야?

월정리라면 아차차! 세화에서 내려 비자림 가는 버스를 바꿔 타야 하는데 와도 너무 많이 온 거 아닌가.

기사양반에게 물으니 세화리는 이미 지난 지 오래란다.

세화리야말로 제법 큰 동네라 환승정거장을 비롯 세화시장에서도 정차하므로 세 번이나 이름이 불렸으련만 수다삼매에 빠져 까맣게 모르고 지나쳐버렸다.

곧 이어 만장굴 입구가 된다니 이 무슨 기가 차는 실수람, 주책이 따로 없었다.

허겁지겁 세 사람은 월정에서 내렸다.

해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차도에서 바라보니 풍력발전 시설인 키다리 바람개비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月汀里라는 서정적인 지명은 달이 머무는 마을이란 뜻, 그 이름에 끌려 몇 차례 들러 안면 익힌 바닷가다.

얕은 물가에 달이 비추이는 고운 바닷가라도 거센 해풍 탓에 물결 높아 서핑 명소인 이곳.

걷기 좋은 모래해변이지만 기상 탓에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까이에 용암 동굴이 있고 밭담 곡선이 매우 아름다운 월정리이나 바람 심하고 추워서 카페부터 찾았다.

따끈한 차보다 실은 해우소가 매우 필요했던 것.

마주 보이는 해변가에 마침 낯익은 공중화장실이 눈에 띄기에 셋은 동시에 그쪽으로 내달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기침이나 마찬가지로 생리작용만은 어느 선 이상이 되면 참을 수 없지 않은가.

급한 볼 일 마치자 여유로워진 우리, 그러나 비자림은 오전 9시~ 오후 6시까지 운영되므로 시간이 촉박했다.

오후 커피는 자제해 왔다는 부부라서 지체 없이 우리는 월정리를 뒤로 했다.

강하게 후드끼는 해풍에 등 떠밀리다시피 하면서.

도로 버스를 타고 되돌아가 세화 환승정거장에서 비자림 가는 차를 타야 하는데 도무지 버스는 오지 않았다.

오가는 빈 택시도 안 보여 전화로 택시를 불렀으나 때가 때인 만치 대기하는 택시도 없다고 했다.

방법이 달리 없으니 버스만을 기다릴 밖에.

그렇게 조바심치다가 겨우겨우 버스가 연결돼 마감 시각 전에 우리는 비자림에 당도할 수 있었다.

숲이라 그래도 아늑하니 덜 추워 비자림은 낙원 같았다.

어느새 나는, 처음으로 비자림을 찾은 그들에게 숲해설사나 관광 가이드되어 비자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비자나무 군락지로 수령 3~6백 년 넘는 나무들 2천 여 그루가 자란다는 자랑부터 늘어놨다.

이파리 배열이 마치, 아닐 비(非) 글자와 흡사해 비자란 얘기를 할 때는 그들이 한문 공부를 한 바 없다는 점을 감안해 손바닥에 非를 그려가며 잎새와 견줘 설명을 해주니 오케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다시 남편에게 영어로 해설을 해주는 걸로 미루어 남편 쪽이 더 한국어 이해가 어려워 보였다.

그들은 피톤치드와 테르펜 안내문을 읽으며 아하~하더니 침엽수 끝을 비벼보기도 했다.

송이를 깐 오솔길에선 여름철에 맨발걷기를 하면 좋다고 하자 꼭 다시 와서 걸어봐야겠단다.

코스 따라 한바퀴 돌면서 웅장한 새천년나무와 사랑나무 앞에 세워 사진을 찍어주면서 내력도 들려줬다.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숲이나 세쿼이어 숲에서 곧게 쭉쭉 치솟은 거목들을 본 터라 별로 감탄사 발할 수준은 아니나 화산지대에 뿌리내려 바위틈에서 힘겨이 살아낸 기상만은 가상한 듯 나무를 쓰다듬기도 하는 그들.

어쩌면 이민자의 삶을 살아온 자신들 같이 어려운 조건에 굴하지 않은 채 비비 틀리면서도 옹골차게 응축시킨 힘, 그처럼 힘든 시간의 궤를 같이 한 비자나무들에 깊이 공명하였는지도.

한 시간 가까이 숲길 거닐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돼서야 나온 우리는 다시 버스에 실려 어둔 길을 내처 달렸다.

서귀포에 돌아오니 여덟 시가 넘었다.

함께 저녁 먹을 짬도 안돼 다음날을 기약하고는 먼저 나부터 차에서 내렸다.

이 추운 한겨울날, 오지랖인지 주책인지 부리며 우당탕당 소리는 안 났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요란뻑적지근한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