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길 건너면 검은 모래톱

by 무량화

그간 몇 해, 서귀포 시청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희망 서귀포>의 귀한 지면을 할애받을 수 있었다.

재능기부 봉사로 서귀포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을 찾아보는 인터뷰 기사를 매 호 쓰기로 했던 것.

근자 서귀포 문학상을 수상한 강중훈 시인과 미리 약속된 대로 어느 겨울날 시인 댁을 방문하였다.

성산 일출봉이 마주 보이는 하얀 3층 건물 해뜨는 집에서 두 시간여 대담을 나눴다.


여든이 넘으신 시인은 연세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은이처럼 열정적으로 시론을 펼치셨다.

그날로 원고를 정리해 강시인께 일차 살펴보도록 이메일 보냈더니 잘 정리됐다는 연락이 왔다.

원고 마감일인 10일에 맞춰 차질 없이 송고했다.


연초가 되어 비로소 책이 출간됐다.

쾌청한 오늘 오전 강시인께 전화를 드린 다음 책 몇 권을 들고 성산포로 향했다.

간만에 넉넉한 원고료도 받았겠다 점심 한턱 쏘겠다는데 시인은 극구 사양했다.

대신 만조로 가득 차 출렁이는 바다를 보며 시인으로부터 한 시간 넘게 시 강의를 듣는 소중한 자리였기에 포만감이 느껴졌다.

시를 쓴다는 건 '가장 나다운 목소리 내기'여야 하며 절실한 언어로 대상에게 말 걸기 혹은 대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

가슴에 시의 둥지 하나 짓고 거기서 영혼의 새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시론, 내게 있어 시의 지평은 그러나 아득하기만.

난해 하다기보다 모호하면서도 한편 알아챌 수 있는 부분, 수긍 가는 면도 없잖았는데 되새김해 보니 여전 어렵다.



며칠 전 올레 21코스를 걷고 오다가 성산 일출봉 앞에 드문드문 핀 유채밭을 흘깃 지나쳤다.

귀갓길에 유채밭 들리려고 일부러 오조리에서부터 걷기로 했다.

성산 일출봉을 정면에 두고 내수면 가에 오도카니 선 식산봉 오른쪽에 거느린 채 칼큼한 해풍 더불어 걸었다.

바닷물 시퍼러이 출렁대는 갑문 다리 건너 성산항 스친 다음 무지개 모양 교문 독특한 성산초등학교도 지났다.

다시 바닷가로 길을 잡아 오조 포구 따라서 한 마장쯤 직진했다.

어느새 피어나기 시작하는 유채꽃이 드디어 나타났다.

SNS 덕에 그새 입소문이 났는지 유채꽃밭 여기저기 관광객이 꽤 몰려있었다.

일출봉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고는 차도를 건너 광치기 해변으로 넘어갔다.

이승살이 가운데 낙원에 속하는 곳에서 노오란 유채꽃 환히 웃으며 즐겼는데 길 하나 건너자마자 기분 탓일까, 바로 저승이듯 좌악 깔린 검정 모래밭 칙칙했다.

어느 날인가 건널 레테의 강,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 너머는 피안일까 또다시 차안일까.

지난번엔 해질 무렵이기도 한 데다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워 잠깐 머물다 떠났으나 이번은 하늘 쾌청해 검은 모래톱을 꽤 오래 거닐었다.

희비 엇갈리며 직조되는 삶과 삶의 끝인 죽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피할 수 없는 마지막에 관해 묵상하게 만드는 광치기해변.



검은 모래톱 광치기해변에 파도 거듭 밀려왔다.

광치기 해변 모래 빛깔은 유별나게 거무스레하다.

검은색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묵직하게 만든다.

무채색 중에서도 모든 색을 포용한 마지막 색이라서일까.

검정색은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암흑, 죽음, 상실, 슬픔과 자동으로 연결된다.

무명옷 하얀 천에 번지는 핏빛도 종당엔 검붉어져 흑암이 되었으리라.

거무스레한 모래나 까만 오석에 새겨진 성산읍희생자위령비가 아니어도 자연스레 그날의 소름 끼치는 아우성이 들려오는듯하다.

위령비 뒷면에 즐비한 명단 그리고 추모글 천천히 읽어 내렸다.

"... 울고 또 울던 우리가/학교 운동회날/남들은 아버지 손을 잡고 잘도 잘도 달리는데 /우리는 오로지 하늘에 뜬 한 조각구름의 손을 잡고/

혼자 달릴 수밖에 없는 설움으로/눈물도 말라버려 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달렸습니다."

사백여 명이 붉은 동백꽃잎으로 뚝뚝 꺾이는 그날의 아비규환을, 지옥도에 다름 아닌 광란의 굿판을 상상만으로?

어림없는 노릇이다.

객관적 위치에서야 어디까지나 피상적일 밖에 없는 그저 강 건너 불로 그건 다만 환청일 뿐이다.

직접 겪은 당사자가 아닐 경우 모든 사건이 그러하지만 특히 제주 4 3 사태는 그간 역사의 한두 줄 기록에 지나지 않았다.

대충 개요만 알뿐 실상은 물론 피해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은 과문을 탓하기 이전 쉬쉬하며 숨긴 먼 곳의 얘기였기 때문이다.

한 시인의 말처럼 '제주에서 삼킨 고통의 결을 우리는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가 맞는 말이다.

그저... 무어라 할 말을 잊게 하는, 숙연하다기보다 먹먹해지고 마는, 아주 막연하나마.

하늘 짙푸르니 파도 소리 순하고 해풍 부드러워 해변 거닐기 알맞춤한 날씨, 삼삼오오 즐거운 여행객들은 언제 적 비극이야 알 리가 없고.

왼편짝에 우뚝 선 성산 일출봉은 수려한 자태의 수석으로 청남빛 물 위에 떠있고 우측 멀리 섭지코지가 우련하게 잡힌다.

느지막이 버스에 오르자 어느 결에 창천에는 원만 무애 한 보름달 은쟁반처럼 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