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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음, 이 편안한 아름다움은 뭐지?
부산 구석구석
by
무량화
May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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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 맞은편 초량동에는 폐가에 가까운 적벽돌 건물이 골목 모서리에 서있다.
지은 지 거의 백 년이 돼가는 구 백제병원이다.
모더니즘 양식의 근대 건축물로 국가 등록문화재 제647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벽돌로 외벽을 쌓아 단단하게 지어진 수려한 외관에 아치형 문과 위아래 내리닫이 참, 목조 계단과 회벽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재정난으로 병원이 문 닫은 뒤 중화요리점이 들어섰다가 일본 장교숙소도 되었다가 중국 영사관을 거쳐 예식장으로 쓰인 적도 있었다.
원래 오 층 건물이었으나 큰 불이 나면서 오 층이 소실돼 현재 사 층 규모다.
이 고색창연한 근대건축물에 얼마 전 부산의 특화된 콘텐츠를 담아내는 문학공간이 들어섰다.
'창비 부산'이다.
창작과 비평사가 출간한 책을 소개하는 메인 룸, 전시공간을 비롯 작가 작업실도 마련돼 있다.
그래서였던가. 모태에 깃든 듯 안온했음은.
삐걱대는 계단에 허물어진 벽체. 그 자체가 그로테스크한 인테리어다.
70년대 화재로 타다만 천장 서까래 반쯤 숯이 된 채 고스란히 노출, 으스스할
정도로 음습한 공간이다.
헌데 낡은 것이 주는 이 편안한 아름다움은 뭐지?
이유를
도시 모르겠다.
소득은 그러나 있었다.
공선옥, 곽재구 작가의 육필 원고도 만났다.
박소란, 젊은 그녀의 시를 창비 부산의 벽 틈에서 읽었는데. 마치 이 장소에 바쳐진 헌시 같았다.
예리해서 더더욱 헛헛한 그녀의 시.
놀이 삼아 글을 써온 그간의 말장난 문득 부끄러워졌다.
여기에서야말로 분위기상 SNS 판 갬성은 접어두고 순수 감성에 몰입해 오롯해지고 가지런해지기 안성맞춤.
박소란의 시-노래는 아무것도-
폐품 리어카 위 바랜 통기타 한채 실려간다
한 시
절 누군가의 노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
아랑곳없이 바퀴는 구른다
길이 덜컹일 때마다 악보에 없는 엇박의 탄식이 새어나온다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
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주소 : 부산시 동구 중앙대로
209번 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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