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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12. 2024

술 익는 마을

항아리를 살짝 움직이자 무슨 소리가 들린다.

구럭 안에 가득 담긴 게가 버글거리는 소리 같다.

술은 소리부터 익어간다던가.

뚜껑을 여니 베 보자기 사이로 시큰한 내음이 솔솔 올라온다.

목하 막걸리가 익어가는 중이다.

술꾼 남정네도 아니면서 웬 막걸리 타령, 그냥 재미 삼아 담아 본 술이다.

멥쌀 정하게 씻어 지에밥을 짓고 며칠씩 공들여가며 숙성과정 지켜보는 수고조차 미상불 재미지다.

 

요즘은 요리법에 관한 한 누군가에게 구태여 자문을 구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무엇이든 만들어 내겠다며 겁 없이 도전해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젠 향수 어린 엄마표 손맛이라는 게 따로 없다.

지역에 따른 향토색 짙은 그리운 맛이 있을 경우, 필요한 내용을 검색창에 올리면 곧바로 무한정 자상한 정보가 제공된다.

해서 구전으로 또는 가업으로 전수되는 비법의 전통음식이 아닌 담에야
누구라도 대충은 따라잡을 수 있는 좋은 세월이다.



특식인 가자미식해가 먹고 싶다면?

그것조차 별로 까다로운 주문이 아니다.

친절하게도 저마다의 솜씨를 자랑하며 비장의 레시피를 인터넷에 올린 덕으로 조리법이 모니터에 좌르륵 뜬다.

적당히 한 카피 떠서 옆에 놓고 재료를 준비해 순서대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심심하게 간을 얼추 맞춘 다음 보기 좋게 담아내면 끝.

한번쯤의 작은 실수나 시행착오도 나름 별식을 맛보게 해주는 즐거운 기회다.

그렇게 익힌 순서에 따라 막걸리를 담갔는데 술내며 동동 뜬 밥알까지 어지간히 흉내는 낸 듯싶다.




육십 년도 훨씬 전의 내 유소년기.

충청도 시골에서는 보리 바심이나 가을걷이 때 농주로 쓰려고 몰래 막걸리를 담았다.

명절이나 잔치를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밀주였다.

소리개처럼 자취 없이 들이닥치는 단속반에 걸리지 않으려면 술 항아리는 쟁여 논 나뭇단 속이나 짚 섶 안에 꼭꼭 숨겨놓아야 했다.

당시에는 누룩을 공공연히 구할 수가 없다 보니 밀을 띄워 직접 누룩을 만들어두고 썼다.

둥글 납작하게 빚어진 누룩은 특히 아주 비밀스러운 장소에 은닉해 두었다.

밀주 발각보다도 만일 누룩을 들키는 날이면 벌금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과중한 벌을 받았던 당시다.



술 찌게미의 나른한 취기를 아는 세대로서야 정말이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한인 마켓에 가면 누룩이 버젓이 매장에 전시되어 있으니 말이다.

단, 거기에 판매 목적으로 술을 제조하지 말라는 안내문은 붙어 있다.

기존의 다양한 상품이 이리 싸고 수두룩 흔해빠진 요즘.

누가 번거로운 공정 과정 거쳐가며 무슨 이문이 남는다고 장삿속으로 밀주를 빚을까.

병법을 쓴 孫子의 말씀을 빌리자면 어떤 사업이든 첫째 사회적인 필요성의 유무, 둘째 시대의 필연성 유무를 먼저 검토하라 했거늘.



때는 바야흐로 깊어가는 오월, 소만도 지났다.

뜰을 내다보니 달빛 흥건히 내려 잔설 깔린 듯 잔디밭이 하얗다.

막걸리가 알맞게 맛을 내는 데다 창밖엔 월 보름을 향한 둥근달이 은쟁반처럼 맑게 떠올랐으니 달을 핑계 삼아 독작을 해본들 어떠리.

이역만리 타국에서 휘영청 둥근달 더불어 익어가는 술 내음에 젖어든 아취가 삼삼하면서도 아릿하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를 읊으며 고향을 그리는 풍류객의 정서가 좀 지나쳤다손 이 나이에 그게 무에 그리 큰 허물이랴.

빈대떡 한쪽 곁들인 술잔에 비친 조명등 불빛 보름달이듯 운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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