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시내에 눈보라 그 사흘 뒤

by 무량화


서귀포 시내 정모시공원에는 수선화 함빡 피어났다.

그뿐 아니라 서귀포 답다니에는 매화 봉오리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동지(冬至)부터 입춘(立春) 전 시기인 삼동(三冬), 혹한이 맹위 떨치는 한복판이다.

특히 삼동추위는 겨울 날씨 중에서도 가장 춥고 혹독한 편이다,

그럼에도 수선 매화가 어느새 신춘 소식 전해준다.

하지만 그끄제 서귀포 원도심과 신시가지에는 눈발 자욱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1950년 12월 흥남부두 노래가 오버랩되는 그런 기상도였다.

일요일 내내 눈이 오다 말다 요사를 부렸다.

창밖에 펄펄 눈발 흩날리자 동백수목원 붉은 동백꽃에 쌓여갈 백설이 눈에 삼삼했다.

털옷으로 단디 중무장, 눈보라 떨치고 길을 나섰으나 효돈 마을부터 눈 흔적 감감하길래 공천포까지만 가다가 어차피 가보나 마나일 터라 도중에 발길 돌렸다.

포기도 빨라 이 같이 헛걸음하는 우(愚) 조차 별로 개의치 않고 자유인다이 쿨하게 돌아섰다.

유유자적하며 스스로 만족하는 삶.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다

만사 넉넉함으로 하냥 축복 넘치게 누리는 고은층의 일상에 감사하면서.



지난 토요일 새벽부터 행안부, 국토교통부, 제주도, 소방청에서 연방 보내는 안전문자 숨 가쁘게 날아들었다.

새벽에 내린 눈과 비로 인하여 눈길, 빙판길 사고우려되니 대중교통 이용 바라며, 차량 운행 시 안전거리 유지 및 감속운행 바랍니다. [국토교통부]

한라눈꽃버스결행, 노선버스 132/212/232(애조로), 181/182/240/281(평화로) 우회운행 중, 교통 통제상황, 제주버스정보시스템 확인 바람[제주도]

겨울철 강추위로 난방기구 사용 급증에 따라 화재예방을 위해 전기장판 접힘·구김상태 사용금지, 미사용 전열기구 전원 차단 등 안전수칙 준수 바랍니다. [소방청]

실제 서귀포 도심은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진 않건만 아무튼 안전문자 내용은 윈드스톰이라도 몰려올 듯 호들갑이었다.

물론 한라산 남쪽이라도 산간지역과 해안가 날씨는 천양지판인지라, 시민 안전을 위한 대비로 철저한 사전조치를 취함은 필수.

적설량 상당할 천백고지라 눈꽃버스 운행여부를 묻는 전화만 해도 빗발칠 테니 사전 공지를 통해 안내해 주는 것도 마땅하겠고.

강추위로 난방기구 사용이 급증할 거란 예상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날씨라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아무튼 매사 철두철미하게 사전, 사후 조치에 만전을 기해 빈틈없이 완벽히 대처할 일이긴 하다.



한라산 자락은 그간 줄곧 눈발에 갇혀 자취 묘묘(杳杳)한 채 깊이 숨어있었다.

이른 아침, 남녘 하늘 푸르게 깨어난 터라 퍼뜩 현관을 열고 복도에 나가 한라산을 바라보았다.

동천 아래 백록담까지 자태 선명하게 드러났으니 만사 제치고 천백고지로 향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토록 눈보라 친 사흘 뒤인 13일 오전 일찍, 겨우 운행을 재개하는 눈꽃버스를 타고자 서귀포등기소 앞으로 갔다.

오후에 긴한 볼일이 있는 터라 나는 천백고지만, 동행한 황선생은 한 코스 더 가 어승생악을 다녀오기로 했다.

천백고지에서 하차하니 설화는 다 녹아 메마른 나목 줄지어 서있을 뿐이라도 관광객들은 한라 고지의 눈밭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습지 둘러싼 데크길을 한바퀴 돈 다음 휴게소 앞으로 건너갔다.

봄날씨처럼 온화한 일기라 백록상이 선 숲길 눈 외엔 짐작대로 볼만한 게 남아있지 않아 뒤편 송신탑 쪽 언덕으로 올라갔다.

지난해 오를 적엔 눈 깊이 쌓인 언덕이라 내내 빙판길을 걸었는데 염화칼슘 흠씬 뿌려 아스팔트가 드러난 길.

송신탑을 지나자 제설작업을 한 길도 끝이 나면서 동시에 미답의 은세계가 안겨왔다.

새발자국과 이름 모를 짐승 발자취가 남겨진 길.

천백고지보다는 더 높은 고지인지라 바람소리만 윙윙거렸다.

아무도 없는 절대적요 속에서 한라 영실 마주하고 심호흡으로 영산의 신성한 정기 마시며 여유로이 소요하기.

설경 여정으로의 초대자는 나, 홀로일 때 비로소 결이 또렷해지는 인연의 의미 곰곰 음미하기.

한라 설산의 맑은 기운 오롯이 채우면서 사유하기, 나아가 성찰하기.

이보다 좋은 심신수련이 달리 있을까 싶잖다.

게다가 오감만족까지.

힐링이야 전자동.

정화를 위한 카타르시스는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