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동백꽃 통신

볼고롱동백

by 무량화

연초에 다녀간 손녀 내외.

눈이 귀한 부산태생이라 설국 이룬 천백고지에 반한 데다 동백꽃 보러 다시 오겠노라 했다.

애기동백은 하르르 휘날리며 낙화지는 동백꽃잎 땅에 흥건히 쌓였을 때 가장 멋지다 했더니 시기를 꼭 찝어달란다.

하긴 동백꽃에 백설 하얗게 덮인 정경도 아름답고 애기동백 만개해 꽃나무마다 한아름 부케일 때도 장관이다.

해서 며칠 전 서귀포 시내에 눈 소담스레 내리던 날, 위미리로 동백꽃 만나러 가다가 동쪽으로 갈수록 눈이 없어 싱거이 돌아서고 말았다.

그 생각이 나기에 오후녘 막간을 이용해 위미리 동백이나 보러 가자 싶었다.



남원읍 위미리에는 다들 잘 아는 도로변 동백수목원을 비롯해 동박낭, 볼고롱동백, 동백군락지가 자리했다.

예우상 올레길과 이어진 동백군락지부터 찾았다.

거목이 된 토종 동백나무 수백 그루가 돌담을 끼고 촘촘히 늘어서 미칠하게 잘도 자랐는데 이는 제주 천연기념물 제39호다.

단아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토종 동백꽃.

특히 겸손한 마음, 신중과 침착이라는 꽃말을 가진 동백꽃이다.

나에게 부족한 덕목을 꽃말이 고루 간직했다는 점이 동백꽃을 좋아하게 된 연유인지도.

짙은 녹색의 윤기나는 잎새도 맘에 들고 단정한 꽃 매무새도 미쁘지만 무엇보다도 미련없이 통째로 모질 게 툭! 낙화하는 결기가 아름다운 동백꽃.

화사한 애기동백꽃이나 겹꽃 화려한 카멜리아와는 결이 다른 꽃도 꽃이지만 해맑게 지저귀는 동박새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서 터.

낯익은 태위로 골목길로 들어서자 어느 집 정원수로 가꾼 키 큰 애기동백나무가 반가이 환대를 해줬다.

옆자리 워싱턴 야자수도 바람결에 흔들리며 아는 체 손짓을 했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함석집이 바투게 선 농가마을, 우영팟처럼 집집마다 귤밭을 아우르고 있었다.

이제 귤은 거진 수확이 끝나 푸른 잎새만 너울거렸다.

동백군락지 부근에 이르자 벌써 여울지는 새소리.

좋은 소식을 안고 온다는 청량한 까치소리에 이어 맑고도 시끄러이 지줄대는 박새소리, 연두색 작은 몸피의 동박새 소리도 연하게 들려왔다.

군락지를 한바퀴 돈 다음 동박새가 빠르게 움직이며 신호를 번다이 주고 받는 나무 그늘에 멈춘 채 새소리를 동영상에 담았다.

비행기 소리, 자동차 소리, 개 짖는 소리, 올레객이 지나가며 환담 나누는 소리 등등 잡음이 많아 도중에 멈추기도 여러 번.

키다리 나무라 목 뻐근하도록 올려다보며 한참을 찍었는데 그나마 나은 걸 골라 아래에다....




이제 큰 길가로 나와 볼고롱동백을 찾을 차례.

바로 옆집 동백수목원과 달리 수형 매초롬하게 다듬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좋아 동백철마다 들리는 곳이다.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왁자함 대신 번다하지 않은 호젓함이 내 경우 코드가 맞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묵상에 잠겨 천천히 꽃길 산책하기,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꽃과 대화 나누기, 뭇 발길에 밟히지 않은 낙화 사진에 담기, 동영상을 찍기에도 최적지다.

무엇보다 성향상 나뭇가지를 뎅강뎅강 쳐내는 전지 방식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 편이라서도 그러하다.

생긴 대로 별로 꾸미지 않은 얼굴을 좋아하듯이 나무도 자연 상태대로 자유분방하게 놔두는 방식을 선호한다.

성형천국이라는 한국이다.

한국인은 유독 왜 인공미에 열광을 할까.

피부과까지 얼굴 뜯어고치는 성형대열에 합세하는 판국이니 말해 무엇하랴.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여도 영국의 앤 공주는 얼마나 당당하던가.

성형미인으로 매끈하게 변한 그녀를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얼굴 나아가 몸매만이 아니라 나무 형태조차도 보기 좋게 다듬고 가꾸는 술 뛰어나 요리조리 멋스럽게 바꿔놓고 즐기는 사람들.

그 실력은 일본과 백중지세라 아마도 우열을 가리기 쉽잖을 듯.



소싯적 꽃꽂이 교실에 나가다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꽃꽂이에 대한 환멸은 티브이 고발프로로 인해서 왔다.

남해섬 동백과 으름덩굴이 꽃꽂이 소재로 마구 베어져 나가는 현장을 르포로 담은 프로였다.

젊은 시절 한때, 야생화를 앙증맞은 토기에 담아 가꾸는 취미가 붐을 이뤘을 당시 편승한 적이 있다.

작은 화분에 전 우주를 응축시켜 놓았다며 근사한 장소에서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 바람에 야생화 이름을 여럿 알게는 됐지만 모든 유행이 그러하듯 한때 잠시의 바람.

환경단체로부터 회초리를 맞고 야생화 모임은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반면 끈질기게 명맥 이어지는 분재, 철사로 어린 소나무 몸체를 이리저리 틀어 변형시켜 놓고 이를 감상하는 분재라서 선뜻 다가서지지 않았다.

고위층 선물용 또는 축하 단상에서 빛을 발하는 분재는 심지어 수십억 대를 홋가하기도 한다는데.

7~90년대 경제호황기와 맞물려 전성기를 누린 분재는 여전히 아직도 호사 취미를 지닌 일부층의 기호에 맞는지 유행이 식지 않았다.

분재는 특히 일본에서 예술로까지 승격시켜 본사이(ぼんさい, bonsai)라 하여 미국 내에도 동호인들이 꽤 많아, 초기 이민자 눈에는 자못 신기하고 놀랍게 비쳤더랬다.

일본식 정원을 자랑하는 데스칸소 가든에서였지 싶다.

관람객들로 성황 이룬 본사이 전시장, 다도 예법도 동시에 열려 일본식 말차 맛을 봤던 기억이 난다.



어느 결에 삼천포로 한참 빠져버린 주제, 퍼뜩 정신 차리고 원위치로 돌려놓는다.

볼고롱동백은 평지보다 지대가 낮아 길가에서도 바로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동백원이다.

머지않은 남쪽에 바다가 깔려있고 해변에 야자나무 성글게 서있는 원경.

근경은 숫제 다홍색 유화물감 함빡 덧칠해 놓은 캔버스처럼 두터운 꽃의 숲이다.

그 중간에 새하얀 전망대가 새로이 들어섰다.

철망으로 경계 그은 옆집에는 여러 포토존과 시설물들이 들어찼지만 굳이 상대비교를 하려 들자면 피곤한 일이다.

볼고롱동백은 수수하고 질박한 자연주의를 표방하면서 애써 꾸미지 않은 천연의 모습으로 밀고 나가는 편이 훨 낫겠다.

맞다, 후발주자로 이웃집과 경쟁하기 버겁다면 색다른 나름의 컨셉으로 대응하는 게 상책.

애기동백꽃은 어느새 만개해 한창 물이 올라있었다.

얼마 전에 갔을 때만 해도 두 눈 꼭 닫고 있던 동백 봉오리인데 그새 화들짝 깨어들 났다.

피고 지고 거듭거듭 피어나는 애기동백꽃.

얼마 후 나무마다 제 발치에 낙화 깔아 두는 날 다시 찾아오기로 한다.

그때도 애기동백꽃은 여전 새로운 꽃망울 펼칠 테니까.

최고의 탄성 자아내게 하는 최적기는 아마 다음 주 주말 24일 무렵일 듯, 손녀에게 그때 다녀가라고 일러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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