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흐르는 경매장은 이미 파한 서귀포구의 아침녘.
구름 낀 날씨라 서귀포항 동쪽은 훤하나 서쪽 하늘은 겨우겨우 깨어나는 중이다.
새벽같이 열리는 경매시장이다.
밤샘 어로작업을 한 배가 포구에 들어오는 시각에 맞춰 경매가 이루어지므로 서귀포살이 오 년 차이면서도 딱 한번 와봤다.
생선을 과히 즐기지도 않는 데다 늦잠꾸러기라 큰맘 먹고 일부러 작정하지 않으면 놓치고 마는 경매 현장이다.
서귀포항 주변 물기 질척한 수협 위판장은 경매가 끝난 이후에도 기계 소음과 오가는 손님들과 선주와 동남아인들인 뱃사람들로 왁자하니 분답다.
오히려 상자 떼기로 신선한 어물을 사가는 도매상인들과 소매인들이 한데 몰려 이때부터 어판장은 아연 활기를 띠게 된다.
어판장 입구에는 난전이 잠시 펼쳐져 실 수요자들과 파지 생선이 거래되곤 한다.(어판장 안과 달리 여기선 생선을 손질해 준다)
한발 늦어 경매에 참여하지 못한 고깃배에서는 연신
은갈치 궤짝이 내려지고 고등어나 삼치 열기 등이 부려지고 있다.
자갈치에 가면 펄펄 뛰는 어종을 구경하기도 하는데
여기선 대부분 얼음을 흠씬 덮어쓴 채다.
은빛 나는 갈치가 대가리는 대가리끼리 꼬리는 꼬리대로 질서 있게 나란히 누워있는 반면 냉동된 볼락 닮은 열기와 조기 비슷한 금태 등등이 주 어종인 서귀 포구.
생물인 오징어와 한치, 복어와 붕장어도 물량은 적지만 보이긴 한다.
분주히 움직이는 지게차와 연신 오가는 어선들.
뱃전에서 오락가락하는 갈매기 나래짓도 바쁘다.
그 너머로 보이는 새섬과 새연교와 범섬.
어쩐지 싱숭생숭해지는 기분.
괜스레 서둘러 생선전에 엎드린다.
무슨 요리를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열기를 집어든다.
오천 원 주고 두 마리를 산 비닐 봉다리 흔들며 걸어오는 길.
이십 분 남짓이면 가닿는 거리인데 천지연폭포나 새섬은 걸핏하면 드나들면서 별로 가지 않던 포구.
포구라면 한적한 어촌 포구인 서해안 장고항이 먼저 떠오르고(실치회 명소) 이어서 소래포구, 제주 포구 중에는 화북, 조천, 어등포, 현 행원포구가 선뜻 다가선다.
서귀포 쪽으로는 온평, 보목, 법환, 대평포구가 줄지어 기다리고.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충청도 마량포구만 할까.
동백나무 숲과 일몰 &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는 서천 마량포구는 우리나라 최초로 성경책이 전해졌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그보다는 정서의 현을 아련히 튕기는 이재무의 시를 통해 살갑고도 아릿한 그리움 품게 된 그곳.
시 제목은 <좋겠다, 마량에 가면>이다.
원문 전체를 옮겨놓는다.
"몰래 숨겨놓은 애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포구에 가서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나 누워
발가락장단에 철 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가 구수한, 갯벌 같은 여자와
옆구리 간지럼이나 실컷 태우다 왔으면,
사람들의 눈총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조석으로 부두에 나가
낚싯대는 시늉으로나 던져두고
옥빛 바다에 시든 배추 같은 삶을 절이고
절이다가 그것도 그만 신물이 나면
통통배 얻어 타고 휭, 먼 바다 돌고 왔으면,
감쪽같이 비밀 주머니 하나 꿰차고 와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남은 뜻도 모르는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냈으면,"
여기에 "마량에 가고 싶다" 란 애틋한 유행가 가락 휘휘 감겨들면 더더욱 비정상적으로 격해지는 감정의 파고.
도덕적 사유나 철학적 사고? 고상한 지성이나 냉철한 이성은 현학적인 당신들의 가면놀이.
점잖은 가면을 벗고 날 것 그대로의 맨 살을 드러낸 이 시의 자유로운 은유에 혹해버리지 않는다면 그건 자가당착의 모순이다.
웃기겠지만 요즘 흔히 쓰이는 속된 표현대로 미치겠네 진짜, 아니 정신 못 차린 채 환장할 듯.
가사를 훑으니 이 마량은 전라도 강진에 있는 마량이긴 하다만 이재무의 시와 딱 맞아떨어지는 한틀 같으니.
https://youtu.be/KRAkdKpy68w?si=2DeYMXvOBgrdbgO5
막걸리라도 한잔 걸친 듯 트롯 멜로디 흥얼거리면서 호젓한 서귀포항 언덕배기 올라 솔동산 거리를 휘적휘적 걸어간다.
한때 소나무 숲이었으나 지금은 주로 호텔과 요식업체가 진을 친 동네다.
1589년 서귀진성이 만들어지면서 4백여 년 동안 서귀포 중심지였던 곳이지만 옛 영화 무상하기만.
송산동은 차도 건너면 이내 이중섭거리와 이어지는데 미술관 신축공사로 전과 달리 이중섭공원은 차단막 너머다.
거길 가야 펄펄 눈발 흩날리는 이월, 홍매화 감상할 수가 있건만 올핸 틀렸다.
27년 2월 준공 예정이라니 내년에는 아마 가능할 듯도.
아직 일러 주변 상가는 한산한 채 오픈한 점포들은 청소와 상품 정리 중이다.
가로변에 서있는 붉은 황소상 뒤편으로 지난 연초 손녀랑 와인을 즐긴 카페가 보여 슬쩍 들여다본다.
밤에 피는 야래향 꽃처럼 이 시각 카페는 무덤덤 어둑스레하기만.
한눈팔며 한갓 지게 중섭거리 지나 길을 건너면 코 앞이 올레시장이다.
이른 시각인 데다 주초임에도 올레시장은 젊은이들 제법 오간다.
물론 저녁시간대의 혼잡에야 못 미치지만 그래도 올레시장만은 냉각된 경기 체감키 어렵게 사철 항상 들뜬 분위기다.
이십 분이면 되는 거리를 한 시간 좋이 걸려버렸으니 어지간히 놀멍 쉬멍 걸었구나.
올레시장을 통과하면 곧이어 거처에 닿는다.
https://brunch.co.kr/@muryanghwa/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