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암
산행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손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인이 커플을 앞세워 지리산 촛대봉으로 야영을 다녀왔다.
그것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주 후다.
사철 주말마다 백패킹을 다니는 장인인지라 언제 어디가 풍광 훌륭한지 훤히 꿰고 있는 터.
지리산 골골에 단풍 절정 이뤘을 최고 시즌, 매혹적인 만추 정취에 흠씬 경도돼버린 두 젊은이.
그래도 그렇지 공부하랴 직장 다니랴 바쁘게 지내는데 주말 휴식시간도 필요하련만.
게다가 신혼시기인데 주책 아니냐, 훈수 뒀더니 냉큼 돌아오는 대답 왈.
젊어서부터 건강 단련을 위한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나 어쨌다나.
하긴 그때 자연에 맛 들여 둘이서 주말에 영남알프스 간월재로 억새파도 보러 갔었노라며 손녀가 사진을 보내왔다.
강원도에 눈이 내렸다.
그러자 강도 높은 설산등반에 커플을 데리고 가 산악훈련 제대로 시켰던 모양.
상고대를 보러 월악산으로 향했고 겨울산행 채비 야물딱지게 갖춰도 눈길에 미끄러지는 정도야 약과, 손녀는 얼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때 놀래서 아마 순백의 설산 등정 엄두는 섣불리 내지 않을 듯.
그 대신 정초에 시부모 모시고 제주에 와서, 때마침 선물처럼 폭설이 내려 천백고지 눈꽃을 즐기고 갔다.
지난 주말은 아빠 따라 셋이서 구례 사성암을 다녀왔다며 손녀가 사진을 보내줬다.
지리산 줄기의 하나인 전남 구례 오산에 제비집처럼 절묘하게 자리한 조계종단의 사찰인 사성암이다.
한국으로 리턴한 후 남도여행을 하던 중에 들렀던 낯익은 사성암이라 반가웠다.
진달래 피어나던 봄, 그러나 아쉽게도 황사 희뿌옇게 깔려 그 멋지다는 조망권은 허용되지 않았다.
성인들에 얽힌 전설이나 암벽에 얹힌 법당보다도 기적에 다름 아닌 소떼 스토리로 하여 더더욱 진하게 감명받은 사성암 도량이다.
태풍 여파로 섬진강이 범람하자 밀려드는 황톳물에 쫓겨 소떼들이 산길 따라 올라와 목숨을 건지게 된 피난처였다는 절마당.
당시 걸어 오르던 길이며 창공에 걸린 유리광전이며 한 사람 겨우 비집고 통과해야 하는 도선굴이라는 암벽 틈새길이며 풍경소리까지 상기도 선연히 떠올랐다.
기암절벽에 제비집처럼 붙은 건축물로 명승 제111호로 지정된 사성암.
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원래 오산암이라 불리던 절이다.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대사 등 네 분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개칭하였다.
사성암 정상부에서 둘러보면 기상 상태 좋을 때는 지리산 노고단이 건너다 보이고 섬진강 줄기가 명주필처럼 부드러이 펼쳐져 한폭의 수묵화처럼 보인다는데.
한가지 소망만은 이뤄주신다는 영험한 소원바위 앞에서 저마다 간구하는 바 있었을 터.
약사전에 기대 섬진강 바라보는 아들은 올해 새로이 시작하기로 한 공부 소상히 아뢰었을까.
손녀가 보낸 사진 속 아들은 머잖아 손주 안을 오십 후반 아제라기보다 청년처럼 기백 반듯해 보였다.
취미인 산행으로 단련된 터라 나이보다 젊어 보여 손녀 표현대로 "아빠가 등산을 자주 다니셔서 지구력은 저희 사무직 30대보다 좋으십니다요" 라고 했듯이.
청설모 대신 토종 다람쥐 전송받으며 해거름에 돌아오는 길.
저물녘이라 목화식당에서 국밥 청해 먹고 나오자 고목에 둥지 튼 까치집 고즈넉하나 아늑해 보였을 듯.
아름다운 전국 산 두루 섭렵해 봤으니 장인 마음이야 좋은 데 자녀들에게 전부 보여주고도 싶을 테지.
그렇다고 가잖다고 아무나 다 따라가나.
어쩌면 이건 아들 복이리라.
손녀로서는 아빠와 신랑과의 산행으로 건강 쌓기 추억 쌓기도 되겠고.
이처럼 심신건강 챙기며 성실히 사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값진 축복이 또 있으랴 싶다.
https://brunch.co.kr/@muryanghwa/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