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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12. 2024

등신 중의 상등신

요즘에는 바뀌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2000년까지도 한국 운전면허증에는 녹색 면허증이 따로 있었다. 면허 취득 후 십 년간 무사고 무벌점이면 바탕이 녹색인 면허증으로 바꿔주었다. 내 면허증도 녹색이었다. 서랍 밑바닥에서 얌전히 잠만 잤으니 사고 칠 일이 없었으므로 자동갱신된 면허증은 녹색으로 승격돼 있었다.


오늘은 머저리 바보 등신 중의 상등신인 자신의 기밀 얘길 려고 한다. 하긴 알만한 이는 다 아니 굳이 숨길 일도 아니다. 나는 운전을 못한다. 운전면허증을 딴 지 사반세기가 넘었건만 운전대 잡아본 건 도합 세 시간도 안 된다. 미국에 살면서 영어 별로지, 운전 못하지, 이건 숫제 장애인이다. 중요한 두 가지 결격사유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있다거나 사는데 별 불편을 느끼진 않는다. 해서 그걸 장애라 여기 지도 않을뿐더러 당당하게 오히려 즐기며 산다. 두 다리 튼튼한 것만으로감사하니까.



사실, 작심하고 운전을 해보려 시도는 여러 번 해봤다. 그러나 핸들만 잡으면 번번 울렁증이 생기며 숨길부터 콱 막히면서 어깨가 경직된다. 심장은 평소보다 몇 배 빠르게 쿵쾅댄다. 그전, 한국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칠 요량으로 운전면허증에 도전할 당시. 도로주행 연습을 할 적마다 청심환부터 까 넣어야만 했다. 거기다 알아주는 기계치라 실기시험을 칠 때 하도 떨어져 인지를 붙일 자리가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합격하고 드디어 면허증을 따긴 땄다. 하지만 겁이 나서 실제 차를 몰고 나다닐 용기는 나지 않았다.



미국에 건너왔다. 뉴저지에서는 한국 면허증이 인정되어 필기시험만 통과되면 면허증이 나왔다. 주변에서 들 하나같이 미국 살려면 운전은 필수란 말에 자극받아 다시 체계적으로 운전연습을 받기도 했다. 손주 등하교를 몇 번 시켜봤으나 마치 뱀이 기어가듯 쪽바로 한길로만 왔다 갔다 하는 정도에서 진도는 멈춰 섰다. 그러니 하이웨이는 엄두조차 못 내고 동네 골목만 오가는데도 잔뜩 긴장돼 어깻죽지는 뻑적지근, 번번 식은땀 범벅이 되어 도시할 짓이 아니라 싶었다. 운전석에만 앉아도 머리는 투구를 쓴 듯 조여 오고 메스꺼움이 일었으니 천상 운전과 나는 인연이 멀어도 한참 멀었다.



캘리포니아에 오자마자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DMV에 갔다. 옆자리에 한국 사람이 앉아있기에 타주 면허증 소지자인데 면허증을 갱신하려면 필기시험만 보면 되냐고 물으니 필기, 실기 다 본단다. 글쎄요? 도 아니고 단호하게 둘 다 보는 게 맞다고 한다. 확신하다시피 내리는 결론에 그만 기가 팍 죽고 말았다. 일단 차례가 되어 쭈뼛거리며 담당자 창구 앞에 다가섰다. 기존 면허증을 내밀었더니 옆을 가리키며 필기시험 치기 전에 시력검사받고 사진을 찍으라 한다. 결국 필기시험만 쳐도 된다는 소리에 절로 함박웃음이 피어나 싱글대며 사진을 찍었다. 덕분에 새로 발급받은 면허증 사진은 실물보다 훨씬 낫다. ㅎ



나는 당연히 차가 없다. 요셉 차는 베라크루스로 처음엔 한국에서 타던 기종인 소나타를 샀다가 바꾼 지 몇 년 된다. 장교 출신 아니랄까 봐 애국심은 기본으로 깔려있어 계산할 것도 없이 국산 차종만 택한다. 아니면 미국차를 사면 샀지 성능이 어쩌니 해싸도 일제차는 절대 사절이라는 사람이다. 매사 코드가 안 맞는다고 해도 이 점만은 찰떡궁합이다. 암튼 그 차로 몇 번 연습하다가 어느 날 방지벽에 쿵 하고 세게 박아 찌그러뜨렸다. 어디 다치진 않았나 염려는커녕 어찌나 잔소리가 심하던지 다신 차에 손도 대기 싫어졌다.



학교는 걸어서 다닌다. 삼십 분 거리나 원체 걷는 거 하나는 자신 있어 왕복 한 시간쯤이야 뭐 가뿐하고 상큼한 기분으로 걷는다. 피트니스클럽 따로 다닐 필요 없이 날마다 딱 적당한 운동량을 등하굣길에서 얻는다. 직히 털어놓고 말하자면 가로 늦게 학교 다니며 영어공부해서 박사 될 포부라도 품을만한 위인은 못 되는 자신이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고 덕택에 날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게 되므로 절로 건강을 챙기게 해주는 고마운 조력자가 학교다. 거기다 숙제하고 시험 치며 두뇌운동을 시키게 되니 치매예방 효과까지 덤으로 얻는, 이를테면 일석삼조의 덕을 보는 학교라 그저 감지덕지, 두루 고마이 생각하며 다닌다.



미국에 온 친정 언니는 혀를 찬다. 한국에서 식당 보조일을 하더라도 차는 끌고 다니는데 이 너른 땅에 살며 운전할 생각을 안 하다니 무슨 뱃장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답답하지도 않냐며 성화를 부려대나 정작 당사자는 절실한 문제로 여겨본 적이 없다. 정 부득이한 상황이 되어 운전이 불가피하게 되면 그땐 또 모르겠다. 기동력 조달이 안돼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면 내동 없던 용기도 생겨나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게 될는지.

그보다 빠르기로는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로 무인자동차시대가 성큼 열릴지 알 수 없는 일. 그땐 차를 몰고 대륙횡단에 나서겠노라고 용감무쌍하게 설칠 지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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