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茅) 섬에서 새(鳥) 떼 가라사대

by 무량화


벼농사를 짓지 않는 제주 초가는 뭘로 지붕을 덮나?

산야에 지천인 억새풀이 대체재다.

제주 방언으로 이걸 새라 하는데, 서귀포 새연교 건너 새섬은 초가지붕을 잇는 억새풀인 새[茅]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청량하게 지저귀는 새가 아니라 억새의 줄임말인 새가 하얗게 나부끼는 요즘.

섬 한켠 쉼터에서 아침운동울 하는데 온갖 멧새가 모여 재재거리며 귓가에서 시끄러이 성토라도 히는 듯.

아침 고요 속에서 조용히 묵상에 잠겼다가 심호흡하며 고무밴드로 팔근육 운동 중인 내게 따지고 들 일이란 도시 없겠거늘.

그렇다고 헛둘헛둘 구령 붙여 떠들길 했나, 뭐가 잘못됐는데?

숲에서 들고양이 고개 갸웃 튼 채 숨죽이고 관망 중.

냥이야, 새들 왜 화가 난 듯 저리 야단이니?

눈이 마주치자 얼룩무늬 냥이는 잽싸게 사라져 버린다.

나뭇가지 번다이 옮겨가며 여전 소리 높여 지저겨 대는 산새들.

그들이 내게 따지듯 고해바치는 소리 순간 문득 깨달아졌다.

까닭은 무례한 숲의 틈입자 때문이다.



찌는 듯 무덥던 여름철, 밤마다 새연교 색색의 분수 폭포 화려했고 주말이면 새연교에서 불꽃놀이 휘황하게 명멸했다.

그 일원에서 버스킹 열렸으며 해풍 시원한 다리 건너 새섬에 들면 숲은 온데 신비로운 빛의 조화로 환상의 신세계를 펼쳐냈다.

밤마다 야경 아름다운 축제가 열리던 새섬.

나 또한 몇 차례나 친지 혹은 이웃들과 어울려 새섬의 색다른 밤 풍경에 흠뻑 취해 들곤 했다.

명실공히 새섬은 서귀포의 밤 명소로 자리매김돼 갔다.

가을 지나고 삼동의 차가운 겨울, 밤의 축제는 당연히 막을 내렸고 오랜만에 새섬을 찾았다.

그리도 야경 찬란하던 디지털 파크 새섬인데

이럴 수가....

겨울숲의 초췌는 예상했으나 전혀 생각지 않았던 변모에 그만 어안이 벙벙, 말을 잃고 말았다.

한여름밤의 꿈이었나.

모호한 꿈과 현실의 경계 그 혼란스러움이라니.

사랑의 가변성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그 표리부동함이라니.

낮에 마주한 숲은 초라하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로 남루했다.

각종 조경물들을 설치하기 위해 수풀은 파헤쳐지거나 마구 짓밟혔으며 나무들 사이사이 어정쩡하게 서있는 LED 조명기구는 평화로운 숲의 난입자에 다름 아니었다.



반딧불이 떼로 날아다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레이저 기법 보조장치만인가.

야간 경관 연출을 멋들어지게 책임져 주는 아이템은 여러 종류로 LED를 이용, 빛의 터널을 만들기도 하고

인공물에 스토리의 빛을 입히기도 한다.

첨단 디지털 기법인 미디어 파사드, 프로젝션 맵핑, 홀로그램 영상 등으로 거리나 공원 숲의 조명은 놀라운 마법을 보여주었으나, 디지털 파크의 대낮 얼굴은 민망할 정도로 남루하고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화려한 밤과 남루한 낮 사이에서 디지털 파크는 말없이 증언한다.

첨단 조명기법으로 치장된 디지털 파크의 밤은 하나의 거대한 환영이라는 것을.

센서와 알고리즘이 계산해 낸 빛은 나무의 결을 한층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하늘 위에는 인공의 별자리와 반딧불이를 띄운다.

그러나 감탄은 순간이고 기억은 잊기 쉽게도 아주 얕으막하다.



자연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제 리듬을 유지하지만, 디지털 파크는 밤에만 완성되고 낮에는 붕괴한다.

낮이 되자 환영은 급격히 해체되고 말았다.

밤에는 어둠 속에 숨어있던 배선과 고정 장치들이 햇빛 아래서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밤의 화려함을 가능케 했던 기술적 장치들은 낮의 자연광 앞에서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된 소품처럼 초라해졌다.

과도한 연출의 잔해인 조명 기구 배선은 숨김없이 나신 드러나고, 밤새 반짝이던 조화 구조물은 색 바랜 합성수지의 민낯을 보이고 서있다.

외계인처럼 두 눈망울 둥그런 렌즈와 조명기기를 떠받든 쇠막대와 얼기설기 드러난 배선들.

케이블 타이로 묶인 배선들은 인공적인 문명이란 스스로 서 있지 못하고, 언제나 외부 에너지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밤새 반짝대던 구조물의 표면은 가까이 다가가면 합성수지의 얕은 기교로, 그새 꺾이고 빛바래거나 미세한 균열이 생겨버렸다.

대낮의 싱푸른 숲을 짓밟아 뭉개며 왜 사람들은 밤에만 소비되고 소모되는 공원을 만들었을까.

빛의 축제를 펼쳤던 새섬에 환호 보냈던 자신이 무참스러워진다.

밤의 새섬은 어둠을 몰아낸 자리에 한껏 들뜬 환상을 심어주었다.

어둠이 지녔던 사유의 여지를, 침묵의 언어를 밀어냈다는 걸 그땐 왜 느끼지 못했던지.

평화로운 삶터를 빼앗긴 새들이 목청껏 성토하며 내게 따져 물었던 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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