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에서 논농사를 짓는 유일한 곳이라 사철 어느 시기나 와볼 만한 하논 분화구다.
하논은 큰 논(大畓)을 이른다.
마침 근처 솜반내에서 점심을 먹은 식후라 슬슬 하논 분화구로 내려갔다.
언덕길 층층에는 감귤밭이 가꿔져 있다.
분화구 바닥에 내려서면 좁고 너른 수로와 황량한 습지가 이어진다.
키대로 자란 부들 열매가 꺼벙하게 부풀려져 바람에 씨앗을 날려 보내고 있다.
벼 베고 난 그루터기만 남은 논바닥에 빈틈없이 빼곡 들어찬 풀들.
근자 육지의 다른 지방 논에서 보면 잡초제거제를 사용하는지 맹송하니 풀이 전혀 없던데.
맨 처음 하논에 왔던 날.
어릴 적 외가에서 보았던 논두렁이 생각나 쪼그리고 앉아 논바닥을 살펴보았다.
이 논엔 어쩐지 우렁이도 살 거 같고 자운영 꽃도 필 거만 같았다.
아직도 눈에 삼삼한 그 꽃, 이른 봄이면 논배미 한가득 자욱하게 피어나던 연연한 분홍보라 자운영 꽃.
클로버 꽃 비슷하나 그보다 꽃이 크고 빛깔이 아주 곱다.
논배미를 휘덮다시피 깔린 자운영은 모판 만들기 전 논 갈아엎을 때 뒤집혀 거름이 돼주는 갸륵한 풀이다.
퉁퉁퉁 경운기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조심조심 논둑길 따라 걸어갔다.
자칫 운동화가 진흙탕에 쑥 빠질 수도 있겠기에 비좁은 논두렁 살살 디뎌가며 나아갔다.
큰 수로에 놓인 시멘트 다리 건너자 논바닥에서 한 노인이 볏짚을 거두고 있었다.
경운기 뒤 칸 수북하게 볏짚이 쌓여있기에 사료로 쓰시나요, 물으니 퇴비할 거라고 했다.
추수를 낫으로 하셨냐니까 이십 년 전이나 낫질했지 요샌 기계로 수확한다고.
그럼 수확할 때 볏짚도 동시에 다 수거되는 거 아니냐 묻자, 시에서 볏짚을 돈 내고 사용하기 때문에 그냥 놔둔단다.
알고 보니 볏짚에 남은 나락을 따먹으러 오는 철새들을 위해 농가에 세를 주고 겨울 동안 볏짚을 쓰는 거였다.
하논 분화구에는 곡식이 자라고 수로가 있어 새들이 모여드는 건 당연지사.
노인은 늦가을부터 겨우내 철새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여기 논에 우렁이도 있지 싶은데요, 봄에 논바닥 가득 자운영 꽃도 필 거 같고요, 하자 아~ 그럼! 하신다.
오호~ 정말요? 자운영도 핀다니 이른 봄 여러 차례 하논 분화구 들락거리게 생겼다.
저쪽 수로에 가보면 커다란 우렁이가 많다며 손가락질하는 방향으로 고맙다는 인사 남기고 곧장 직진했다.
수로 건너 양계장이 있는 곳에서 잠시 물가를 살피자 과연 우렁이가 보였다.
살아있는 우렁이가 아니라 물에 둥둥 떠있는 속이 빈 우렁이 껍데기이긴 하지만.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고 부화된 새끼는 어미의 살을 먹으며 자란다지.
마지막 한 점의 살까지 새끼에게 먹이로 내어주고 빈 껍질 되어 둥둥 떠내려간다는 어미 우렁이.
습지 옆의 늪지대에 나있는 발자취, 기러기나 오리류 새 발자국이기보다 아주 큼직한 새인 두루미며 고니 발자국일까?
하논 분화구.
방문자 센터에서 언덕을 내려가는 데크 길 제법 길게 이어질 만큼 깊숙하게 파인 분화구다.
다른 오름이 화산 폭발로 봉긋 솟아오른 형태라면 하논은 지표면이 낮게 가라앉은 형태의 오름이다.
위로 올라가는 오름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오름도 있다니 퍽도 신기하다.
분화구 속에 들어와 있어도 고개를 들면 한라산이 정면으로 뚜렷이 보여 그 또한 특별했다.
약 5만여 년 전 지표면 아래에서 화산 폭발이 이뤄진 뒤, 땅속 가스가 빠져나가면서 바닥이 가라앉은 독특한 하논 분화구.
한반도 최대의 마르(maar) 형 화산으로 즉, 화구의 둘레가 작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는 원형의 요지(凹地)다.
생성 초기에는 거대한 호수였으리라 추정되며 오랜 세월에 걸쳐 퇴적층이 쌓이면서 현재의 지형이 되었다고.
분화구 내에 용천수가 솟는 곳도 있으며 비가 오면 물이 넉넉히 고여 제주에서 특이하게도 논농사가 가능한 지역이다.
그리하여 하논 마을에는 현재 백여 명의 주민들이 귤농사와 축산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과거 5백 년 전부터 여기서 벼농사를 지으면서 대대로 사람들이 살았다는 역사 기록도 남아있다.
한편 병인양요에 대한 보상으로 1886년 조 불 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천주교는 조선땅에서 포교의 자유를 얻게 됐다.
프랑스 선교사인 페네 주임신부와 함께 보좌신부로 제주에 내려온 김원영 아우구스티노 신부.
갓 서품을 받은 젊고 의욕 넘치던 김 신부는 섬 전체에 만연한 미신 숭배를 타파하고자 전교에 박차를 가하며 수신영약(修身靈藥)이라는 한글 필사본을 집필했다.
더불어 축첩과 이단적 풍습에 대한 척결 의지도 강하게 드러냈다.
신앙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투철한 선교 열정에다
기질이 강직하고 직선적인 김 신부는 도민들의 반발을 사, 자주 마찰을 빚었다.
그 와중에도 교세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서귀포 지역 천주교 선교를 담당한 하논성당은 토착민 정서에 반하는 선교활동으로 결과적으로 '이재수의 난'을 불러온 빌미가 되기도.
서귀포 지역 최초의 그 한논본당이 자리했던 빈 터.
서귀포 천주교 신앙의 모태인 하논성당 터도 바로 지척거리다.
이재수의 난과 연관된 신축교안의 아픔을 간직한 제주 천주교사의 중요한 장소이기도 한 이곳.
신축민란을 겪으며 한논본당은 소실되고 교세 쇠락해 그 후 서귀포성당으로 이전하였다.
4.3 당시에는 소개령으로 마을이 사라진 적도 있으며 그때 무장대와의 연루 혐의로 사찰이 전소되는 법난을 겪었는데 다시 복원됐다.
한때 분화구에 야구장 건설 계획을 세웠다가 환경단체의 반대로 철회한 적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올레길 7-1코스가 새로이 조성돼 올레 리본 깃이 곳곳에서 나부꼈다.
하논을 학계에서는 ‘생태계 타임캡슐’이라 하는데 5만 년 동안의 기후, 지질, 식생 등 환경정보가 고스란히 보관돼 있어서라고.
또한 미래 기후를 예측하는 연구의 최적 장소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하논 분화구 복원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데.
하논은 동서로 1.8km, 남북 간 1.3km의 타원형 분화구로 한라산 백록담보다도 규모가 한결 크다.
수수만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긴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이라 불리는 하논분화구.
하논을 떠날 때는 농수로 길게 이어진 동남쪽 출구를 이용했다.
십여분쯤 걸으면 바로 예술의 전당 맞은편 큰 도로가 나오게 된다.
하논 분화구 안 어디서도 보이는 한라산/ 수로에 둥둥 떠내려가는 우렁이 껍데기/철새 도래를 유도하기 위해 볏짚을 논바닥에 죽 펴놓았다
봄까치꽃/ 쇠별꽃/ 한라산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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