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기다리며 입춘첩을

입춘대길

by 무량화


봄의 들머리란다.

백록담 새하얀 은관 쓰고 있으나, 매화 수선화 향 자욱하게 나목 사이 흐르는 요즘.

아직은 이르지만 암튼 오시는 봄을 맞는 마음 갈피갈피 환해진다.


그러나 입춘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대로 입춘 절기에 때 맞춘 강추위는 빠트리지 않고 찾아왔다.


입춘 무렵의 매서운 추위에 장독이 얼어 터진다는 속담도 있듯 근자 독감이 유행하는 것도 당연하겠다.


24 절기 가운데 첫 번째 절기인 그 입춘이 오늘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됨을 알리는 기준점인 올 입춘(立春)은 양력 2월 4일이다.


말띠해인 2026년 새해, 진짜 시작은 설날이 아니라 입춘부터라고 한다.


봄의 기운이 시작되는 절입 시간은(입춘이 시작되는 정확한 시각) 오전 5시 2분, 예로부터 기운이 전환되는 정확한 경계점으로 인식된 시간이었으니 이 순간을 기준으로 절기가 바뀌었다고 보았다.


간밤에 알람을 맞춰놓고 만반의 준비를 해둔 채 잠을 청했다.


서도를 하시는 96세 어르신께 미리 받아 둔 입춘첩과 딱풀을 머리맡에 놔두고서.


물론 두 장 중 어느 글귀 위치가 오른쪽으로 붙이는지도 확인해 놓고서.


‘입춘대길’은 오른쪽, ‘건양다경’은 왼쪽에 여덟 팔(八) 자 형태로 비스듬히 붙이는 것이 관례란다.


새벽 다섯 시 잠에서 깨자 곧장 한지에 쓰인 글씨를 들고 현관에 나가 떡허니 붙인 입춘방.


어릴 적 집집마다 나무 대문 양편에 처억~ 내걸던 입춘대길 건양다경!


한 해 동안 국태민안, 가내 태평 바라며 입춘첩 붙이는 것이 소박한 우리네 민속이었다.


유년시절 먹을 갈아 드렸던 할아버지.


그때 할아버지 보다 더 나이 든 지금.


위엄은커녕 가볍디 가벼운 허풍선이 꼴이라니.


그래서 더더욱, 정좌하시고 입춘첩 써내리던 그 풍경 그리워진다.


삐그덕 소리 내며 빗장 열리면 드러나던 안채, 그 한옥 대문도 생각나고...


오늘은 문득 용 새겨진 벼루며 묵향 사무치게 그립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리라는 뜻이다.


건양다경(建陽多慶)은 따뜻한 양의 기운 세워져 밝은 햇살처럼 경사스러운 일이 많아지길 바란다는 의미가 담겼고.


올해는 진작부터 입춘첩을 준비해 두고 기다렸다.


그러한 데는 까닭이 있기 마련.


칠랑팔랑 물색없이 나댕기느라 기력 방전이 됐는지 몸살감기로 며칠 시난고난.


건강 체질 철석같이 믿고서 지나치게 설치다가 된통 걸렸으니.


아공, 고뿔도 병이라고 아프니 장사 없더라는.


걷는 건 고사하고 만사가 귀찮은 데야...


날마다 붙들고 살던 컴퓨터고 블로깅이고 다 뒷전.


부탁해 둔 입춘첩에 건강 기원 새해 소망 담아 오늘 일찌감치 내걸었다.


현관문 대신 마음문에라도 입춘첩 척 붙이시고, 모두들 날마다 좋은 일만 생기는 신춘 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