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지간(指呼之間)
요 며칠, 구름 낀 날씨 거나 미세먼지가 아주 심했다.
그 바람에 대기 우중충해 한라산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오래간만에 영산의 자취가 깨어나기에 좀 더 가까이서 한라산을 만나보기로 했다.
예약했던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치유의 숲길 통해 서오름으로 향했다.
치유의 숲 중심에 있는 시오름(정상 757.8m)은 분화구가 없는 원추형 오름이다
정상에 오르면 지호지간이듯 바로 건너에 한라산, 서귀포 앞바다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쉬엄쉬엄 천천히 쉬멍(쉬면서) 가멍오멍(가고 오며) 치유숲길을 느릿느릿 노고록(여유있게)하게 걸었다.
잘 닦인 산림도로 너른 길은 뒷짐 쥔 채 후적대기도 했으며 미끄러운 구간에서는 넘어질세라 조심조심 균형 잡으며 걸었다.
아름다운 숲길인 엄부랑길(엄청난) 지나 비탈길 따라서 산도록길(시원한)로 가베또롱(가뿐)하게 올라갔다.
여기 곳곳엔 동백나무 서어나무 비목 조록나무 외에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이 자라 하늘을 가렸다.
숲이 주는 보약이라는 피톤치드 발산량이 가장 많다는 편백나무에다 삼나무 소나무 밀밀하므로 산림욕의 최적지다.
숲 속 공연장 돌아서 다리를 건너 언덕진 잡목림 얼마쯤 오르다가 하늘바라기 숲길 오른쪽에 떨구고 내처 걸었다.
오름 정상이 가까운 듯 가파른 경사길 나섰다 싶자 침목 같은 디딤 층계가 연달아 이어졌다.
안전한 계단길은 사실 다리가 더 힘들어하는 구간으로, 제법 숨도 차고 잔등에서 땀이 솟기에 겉옷 한 겹 벗었다.
760 미터 급 봉긋한 오름이라 스틱을 갖고 오지 않아 근처에서 작대기 하나 주워 의지 삼았다.
그 지팡이가 두 다리와 삼각편대를 이루니 마치 카메라 삼각대처럼 한결 안정감을 주며 편안했다.
다음부터는 오름 오를 때도 필히 스틱을 지참하기로.
침엽수 길이 끝나자 야리야리한 잡목 지대가 한참 지속되었다.
지금은 활엽수들 잎 떨궈 나목 됐지만 여름이면 녹음 그늘 짙푸르다.
나목 숲 사이로 훤하게 산정 전망대가 이마 위에 드러났다..
두어 팀이 보자기만 한 전망대에 올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비좁은 틈새를 헤집고 올라서기 뭣해 좀 기다렸다가 전망대에 섰다.
서귀포 거처에서 바라보던 자그마한 백록담이 큼직하게 눈앞에 다가서며 산 아래 숲도 자세히 보였다.
서오름 정상에서 지호지간인 백록담.
단걸음에 건너뛸 정도로 가까워 손짓해 부를 만한 매우 가까운 거리라지만, 사실 왕복 산행 시 열 시간 넘게 걸리는 지라 한 번으로 만족한 한라산 등정길이다.
이제는 주제파악돼 그냥 바라보는 걸로 족함을 안 한라산 백록담이 바로 목전에 드러났다.
어느 봄날 백록담 피부를 직접 어루만져 본 기억 새삼 떠올랐다.
자욱하던 설원과 벼랑의 흰 눈은 많이 녹았지만 그래도 영산의 웅자를 턱 밑에서 보다니.
치유의 숲은 여러 번 왔으나 서오름은 초행인데, 이처럼 예상치 않은 선물 예비해 두신 하늘의 배려에 감사 거듭 감사.
내려오는 길은 반대쪽으로 난, 흰 줄 조릿대 무성히 자란 아주 완만한 산길을 택했다.
조릿대 길이 끝나면 활엽수길, 낙엽 수북 깔려있기도 하나 난대 수종이 혼재해 여전히 잎 푸른 나무도 흔했다.
이 길 양편에도 반세기 이상을 산 침엽수 거목들이 조밀하게 들어차 햇살 좋은 날인데도 어둑신했다.
겨울철이라 모자 쓰고 옷 덧껴 입었지만 여름엔 가벼운 차림으로 솔라 에너지 받으며 피톤치드 세례 자주 받아야겠다.
오늘도 편백숲에선 상긋한 나무향으로 허파꽈리마다 행복하게 해 줬다.
좀 더 내려오면 이끼 두터이 낀 돌담들이 잊혀 가는 묵은 역사를 넌지시 일깨웠고..
집으로 통하는 좁은 올레담, 무덤가의 산담, 목장 경계용 잣담, 밭 둘레에 친 밭담 등등뿐이겠나?
숨구멍 숭숭 난 화산석이 많은 제주답게 돌에 염원을 담아 돌탑 층층 올리거나 사악한 기운 막아내기 위해 방사탑 쌓아두었다.
제주, 바다 건너 먼 섬일 땐 그저 귤 산지로 알았던 곳인데 알아갈수록 경이롭고 신비 가득해 점점 더 빠져들게 되는 제주다.
오늘도 피톤치드 향으로 정결하게 목욕재계하고 한라산 정상 백록담과 재회를 했으니 충분히 멋진 하루였다.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산록남로 2271(호근동)
안전하긴 하지만 다리 꽤나 피곤하게 만드는 나무 층계/서오름 정상이 가까울수록 잡목림 숲길, 더러는 잎지고 난대 수종만 이파리 윤기롭다
나무다리 건너기 전 나오는 숲 속 공연장과 나무 장의자인 객석/하산길, 흰 줄 조릿대 사이로 트인 완만한 산길
누군가의 소망이 담긴 돌탑과 오멍길로 이어지는 잣담
4.3 사건 이전까지 신호근리라는 마을이 있었다는 흔적들 이끼에 묻혀가고
모처럼 청명한 하늘빛 아래 숲길 거니는 산책객들
맺힌 데 없이 곧게 쭉쭉 뻗은 삼나무와 편백나무 구별하기/ 둘 다 상록침엽수로 서로 아주 흡사한 외형과 수피를 지녔으나 단 잎사귀 형태에서 확연한 차이
앰버 빛깔을 띤, 반 발효 녹차를 숲속에서 나누며 다담을/ 고사목 그루터기에 차린 녹차 받침을 대신한 데코로 나무 구분하기 /1 편백나무잎, 2 삼나무잎, 3 활엽수 가랑잎
산록남로에서 올려다본 백록담과 치유의 숲 본관
치유의 숲 산록도로 입구/ 방문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