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 특징대로

비위(脾胃)

by 무량화


막 서른여섯 들어서며 등단을 했다.

수필은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이 쓰는 글이란 금아선생 표현대로다.

40대 즈음 부산에서 문단활동을 했다.

여류문인들 모임에서 광안리나 해운대 횟집이 회식 장소로 정해지면 식사자리가 불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회를 입에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몫만 따로이 회 대신 소라나 오징어를 데쳐서 숙회로 나왔다.

요셉이 바다낚시를 즐기는지라 주말마다 먼바다 심해

에서 싱싱한 횟감을 쿨러 가득 낚아와도 한 점 맛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당시는 신실한 불자로 방생을 다니던 터였다.

생선회를 먹기 시작한 것은 이민생활 중 몸이 자꾸 축나면서부터다.

약이라 생각하고 눈 꾹 감고 먹었다.

날 것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 못해 아직도 간장 게장이나 젓갈류는 절대사양이다.



기질적으로 까칠한 편이다.

그렇다고 까다롭다거나 부정적 성향은 아니다.

다만 불편감을 잘 견디지 못해 과한 반응을 보인다.

HSP 테스트에서 고도 민감성으로 나타나는 결과치가 기실 이상하지 않다.

감각 자극, 감정 변화, 내면의 반응 등 다양한 자극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좋게는 섬세한 감각과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란다.

아무튼 성격이 편편하다고는 볼 수 없지 싶다.

마음에 걸리는 인자를 만나면 즉각 두드러기가 솟는 알러지체질인 데다 칼슘제재에 과민반응이 나타난다든지 거북스런 상황이나 일정 향기에 기침이 터지는 등.

아들이나 딸내미도 엄마 승질머리도 보통은 아니지, 그런다.

자신 역시 스스로 인정한다.



지난 주말 일이다.

아침 일찌감치 서쪽 목적지로 향했다.

배낭에 바나나와 머핀, 귤과 생수를 챙겨 나섰으므로 해안길 걸으면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날은 볼거리가 여럿이라 시간흐름도 잊고 신이 나서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때가 훌쩍 넘어섰다.

과몰입상태라 전혀 시장기도 느끼지 못했다.

뭔가에 홀리면 이렇듯 현실적인 문제는 뒷전이 되고 만다.

여기저기 실컷 쏘다녔고 충분히 사진도 찍었다.

충만감 이 정도면 됐으니 슬슬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한림에 있는 흑염소탕집에 전화하니 불통, 모슬포 방어회덮밥 식당으로 얼른 행선지를 바꿨다.

식사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브레이크타임 되기 전에.

그새 서귀포 곳곳에 익숙해져 어디 가면 뭘 보고 뭘 먹을지 훤하다.

여기서라면 어디든 느긋하게 나다닐 수 있는 그 편안함이 안정감을 주어 좋다.

그렇게 아마도 서귀포는 특유의 평온함으로 서서히 나를 묶고 있는지도.

모슬포항은 늘 그렇듯 해풍 거셌고 비릿하니 정직한 냄새를 품고 있었다.

방파제 안쪽 바다는 낮게 숨 쉬고, 묶인 배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두 시가 넘은 식당 안은 한산했다.

늘 가던 식당에 들어갔고 즐기던 메뉴를 주문했고 푸짐한 성찬 음미하며 감사히 먹고 있었다.



담치를 넣어 끓인 따끈한 미역국은 입맛에 착 달라붙었다.

시원하면서 개운한 맛이었다.

겨울 방어는 기름이 오를 대로 오르고, 그 기름기 혀끝에서 고소하게 번졌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이었다.

건너편 자리에서 사십 넘어 보이는 여자 서넛이 소주와 맥주를 번갈아 마시며 거나한 취기를 왁짜하니 터뜨렸다.

행색으로 보아 유흥업소 다니는 여자들은 아니었다.

처음에야 주부들의 잠시일탈, 취기에 들떴거니 했다.

하지만 주고받는 말들은 갈수록 질펀하다 못해 끈적거렸다.

농담이라기엔 거칠고, 수다라기엔 노골적인 정도가 지나쳤다.

깔깔거리며 뱉어내는 외설적인 단어들은 사람의 몸을 날 것으로 희화화했고, 갈수록 음담패설의 수위는 높아졌다.

숟가락을 든 내 손이 자꾸 머뭇거렸다.

방어의 기름진 윤기가 느끼함으로 변했고, 초장의 새콤한 맛은 떫떠름해졌다.

마음이 먼저 거부 반응을 쎄게 일으킨 상태였다.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말까지 삼키고 있었던가.

귀를 닫을 수 없으니 입이 그만 닫히고 싶어 했다. 남기자니 아깝고, 앉아 먹자니 고역이었다.

결국 꾸역꾸역 그릇을 비우는 대신 자리에서 선뜻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차디찬 해풍이 얼굴을 식혔다.

하지만 속은 식혀지지 않았다.

앞바다는 평온한데 내 위장에서는 작은 파도가 일었다.

메스꺼움을 달래 가며 거처로 무탈히 돌아왔다.

뜨겁게 끓인 매실차를 천천히 마셨다.

따순 김이 위장을 다스려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웬걸.... 울렁거리던 역겨움을 더는 참아내지 못하고 마침내 울컥 구역질이 났다.

마구 토해내기 시작했다.
쏟아져 나온 것은 방어회덮밥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억지로 삼켰던 음담패설의 기류, 거칠게 흩날리던 말들의 찌꺼기까지 함께 토해냈으리라.

우리는 식사를 하며 음식만 먹는 게 아니다.

공기와 소리와 분위기를 함께 섞어 씹어 넘긴다.

한바탕의 구토로 속이 조금 가벼워졌다.

위장이 비워져서만은 아니었다.

불쾌감이 밖으로 딸려나간 듯해서다.

나이가 들수록 위장은 약해지지만, 감각은 오히려 더 예민해진다.

엇이 지나치고 무엇이 도를 넘는지, 몸이 먼저 안다.

음담패설(淫談悖說)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음담에 ‘패(悖)’ 자가 들어가듯, 음습하면서 사리와 도리거슬러 벗어나 그릇되고 상스럽다는 뜻인 것처럼.



생래적으로 HSP 성향은 그 범주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가.

이날 심한 토악질을 해댄 이후 하루 금식을 하고 흰 죽에 이어 전복죽을 끓였다.

전복을 다듬는데 왈칵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결혼기념일이라고 요셉과 제주도 여행을 왔었다.

애들과 동행하지 않은 걸로 미루어 나이 제법 들어서였지 싶다.

밤바다 어느 부둣가 횟집에서 요셉이 생선회와 오징어 그리고 전복 숙회를 시켰다.

우리는 둘 다 소주를 못하는지라 맥주를 마시며 접시를 비워갔다.

거푸 맥주를 주문했다.

쟁반에 맥줏병을 받쳐 들고 온 젊은 여인이 '즐거운 시간 되세요' 하는데 음성이 이상했다.

얼핏 보니 앞치마 두른 몸매도 수상쩍었다.

장작개비 같은 다리에 팔만 근육질이었다.

얼굴 골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여장남자, 처음 본 터라 기괴하기 이를 데없었다.

벌써 삼십 수년 전 상황이니 흠칫해질 정도로 혐오스럽고 황당했지만 게이 바가 흔하다는 요즘에야 놀랄 거리도 아닐 테지.

아무튼 그 순간 구토가 나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따라 나온 요셉이 걱정스레 와카노? 하면서 등을 두드려주었고 먹은 걸 죄다 게워냈다.

평소 위장이 튼튼해 소화제 먹을 일 없는 나인지라 요셉이 놀랄 만도 했다.

어두컴컴한 바다에서 방파제에 부딪치는 거친 파도소리를 들었던 그 밤.

비위가 이리 약하나 그래도 예민한 성격대로 즐기는 음식만 챙겨 먹으며 이날까지 건강하게 사니 더 욕심내지 말기로.

본디 타고난 성정은 고칠 수 없으므로 그저 생긴 대로 그렇게 살아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