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항공기에 반입해선 안 되는 금지 물품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여태껏 별도로 신경 써본 적이 없었다. 하이재킹을 할 테러분자는커녕 소심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소시민일 따름인 나. 따라서 비행기를 타며 휴대해선 안 되는 물품을 몰래 들고 가는 일 따위란 애당초 꿈도 꾸지 않을 테니까. 전에는 사실 직접 담은 파김치며 깻잎장아찌가 먹고 싶을 경우, 언니가 미국 올 때 사전 부탁을 해 음식 보따리 꿍쳐들고 오게도 했었다. 그러나 점점 탑승 규정이 강화되며 단속도 까탈스러워져 대부분은 짐 싸기 전에 금지품 체크부터 철저히 하게끔 변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본의 아니게 혹은 부지불식간에 큰 실수를 하는 수가 있는 데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경종 차원에서, 창피를 무릅쓰고 무지해서 범할 뻔한 내 실수담 고백을 하려 한다. 보조 배터리를 짐칸에 부치는 정도는 그나마 약과다.(2026년 현재는 한층 더 강화됐을 터)
이참에 확실히 학습한 항공기 반입금지 물품 목록부터 정리해 본다. 100㎖ 이하의 별도 용기에 나눠 담지 않는다면 액체나 젤리 상태 화장품이며 음료수 그리고 70% 이상의 알콜성 음료도 엄격하게 제한된다. 목욕용 소금, 베이비파우더, 쿠킹 파우더, 모래 등도 350㎖ 이상의 경우 기내 반입이 금지된다. 유독성 물질 및 폭발물은 당연히 안된다. 장난감 권총도 금지되다시피 모든 총기류는 물론이고 전자충격기도 제한 대상이다. 무기화될 수 있는 끝이 뾰족하거나 날카로운 물체도 금지 품목이다. 또한 둔기로 사용될만한 공구류와 화학물질 또는 인화성의 위험 물질 역시 기내 반입을 불허한다. 대신 커터 칼, 과도, 가위, 등산 스틱 등은 위탁 수화물(Checked Baggage) 일 경우 반입 가능하다.(이는 2019년 기준)
작년 연말 한국 대형병원에서 정신과 의사가 피살당했다. 진료받던 환자가 휘두른 칼에 담당의가 현장에서 숨진 사건이었다. 그 뉴스를 접하자 의료종사자들이 간혹 환자로부터 상해 입는다는 얘기가 떠오르며 방비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에 전기 충격기가 하나 있었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총기까지 소지하는데 그거라도 집에 있으니 내심 든든했다. 몇 해 전 딸내미가 엄마를 염려해, 혹시나 하고 침대 머리맡에 두라며 사다 준 호신용으로 성능이 꽤 좋은 충격기였다. 기능성이 뛰어난 미국산 중에서도 최상품이었다. 아들한테 갖다 줘야겠다 싶어 충격기를 수건으로 잘 싸서 한국 갈 때 들고 갈 캐리어 구석에 챙겨 넣었다. 조금치의 거리낌도 없는 극히 예사로운 행동이었다.
한국 출발 하루 전에 딸내미가 왔는데 마침 작은 화장품 샘플을 주면서 들고 가 임시로 쓰라 했다. 화제가 짐 얘기로 우연찮게 옮아갔다. 오빠 갖다 주려고 전기 충격기를 가져간다는 말이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순진한 아이처럼 너무도 해맑은 얼굴로 철없는 짓을 고하는 엄마. 세상에나! 그건 절대 안 돼. 너무너무 무모한 엄마의 행동에 딸내미는 대경실색을 했다. 상대를 위협하거나 제압하는데 쓰이는 충격기인데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안 들더냐고 반문을 했다. 맞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순간 머리 위로 얼음물이 쏟아진 듯 오싹해지며 등짝은 후끈 달았다. 다행히 사전에 말을 했기 망정이지 자칫하면 공항 검색대에 걸려 몹시 당황하는 사태가 발생할 뻔하였다. 아니, 꼼짝없이 강력 범죄자 취급을 당해 구금되는 대형사고를 칠 뻔했다.
오래전 뉴저지에서 실제 발생한 사고로 교포 대학생이 유사한 일을 겪었다. 마침 변호사인 교우가 있어 적극 도와 해결해 준 덕에 구속은 면했다. 서부에서 학업을 마치고 들뜬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던 그 학생은 항공편을 이용해 필라델피아 공항에 닿았다. 헌데 그가 별생각 없이 지니고 있던 고무풍선 안의 밀가루(졸업식장에서 친구에게 장난치며 터뜨리는)가 마약으로 오인받아 공항 안이 발칵 뒤집혔다. 출구에 시선을 꽂고 자녀를 기다리던 부모는 뒤늦게 비상전화 연락이 닿고서야 심각한 사태를 비로소 파악했다. 뜻밖의 사건으로 급기야 그는 며칠 구류까지 살아야 했으며 부모는 한동안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했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머리가 띵해지며 아찔해졌다. 아차 순간에 잘못했다가 지옥행 뱅기를 탈 뻔했으니. 아이고 맙소사! 나라고 뉴스거리 되는 그런 꼴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 없었으리. 정말로 큰 경을 칠뻔하지 않았나. 그것도 언어소통 원활하지 않은 미국 공항에서 말이다. 특수경찰 심문이라도 받게 된다면 지레 겁먹고 기절 일보 직전이었을 테지. 얼굴색이 하얘진 엄마를 보며 딸내미는, 그러게 아들만 중히 여기지 말라며 일침을 놓는다. 그렇다고 아들딸 차별 둔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가끔 딸이 그런 투정을 한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오빠를 편애, 여러모로 유별나게 대했다며 가로 늦게 불만을 토로하는 딸내미. 찔리는 점이 있긴 하다. 오직 자매뿐인 가정에서 남자 형제 없이 자란 콤플렉스, 울 엄마가 그토록 부러워 한 아들이 아닌가. 그게 저 밑바닥 무의식 세계에서 알게 모르게 표출돼 올라오는 모양이다.
변명의 여지없이 실제로 나는 곰팡내 나는 구시대 촌할매 다이 은연중 딸보다 아들을 중히 여기는 고은층이다. 이른바 가부장 문화가 골수에 깊이 박혀있다는 걸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농경시대도 아니건만 나이 지긋한 이들은 여전히 장자를 통한 가계 전승이라는 유교 관습을 철칙처럼 여긴다. 따라서 가계의 부계(父系) 계승을 당연시하는 구닥다리. 세태가 얼마나 빠르게 변해버렸는데 ㅉㅉ! 남녀 불평등 사고 내지 남아선호사상에 입각한 전통적 가치관에서 탈피 못한 때문이리라. 하지만 언제나 내 편인 딸내미야말로 가장 가까운 동지이자 후원자 그리고 든든한 벽이며 울타리인 것을. 딸내미가 정곡을 찌르듯 마무리 펀치를 내지른다. 엄마, 나도 오빠랑 같은 직업환경에서 지내는데 딸인 내 걱정은 안 해봤어? 그만 답변이 궁해지고 말았다. 무안하고 면구스럽기도 하고.... 한동안 그냥 머쓱해진 채였다. 2019
2019년 당시 -상
2026년 현재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