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저지곶자왈 백서향

by 무량화


9.3 km의 거리다.

2만여 보를 걸었고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저지리 예술인마을에서부터 오설록 녹차밭까지의 숲 길이다.

지난달 백서향 군락지 찾았을 땐 은백색 향낭 열듯말듯 감질만 났는데 이번엔 절정기, 풍성한 송이송이 향기 풀어내련만 이상스레 향이 느껴지질 않는다.

저번은 오늘과 반대로 오설록 뒷숲에서 출발했고 저지곶자왈이 끝나갈 즈음에야 백서향 꽃숭어리를 만났었다.

이번은 역으로 시작했으므로 곶자왈 초입에서 보얗게 만개한 백서향 꽃과 해후했다.

웬일일까.

그런데 숲 향기로이 적시던 백서향 상서로운 향 가뭇없이 사라졌다.

풍경도 마음에서 완성되듯 향기 또한 마음으로 먼저 느껴지는 걸까.
깊고도 맑게 스며들던 품격 고아한 그 향 상기도 선연한데 아무리 꽃 가까이 다가가도 향기가 없다니.

일체유심조라 하였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것이라는 말대로다.

생래로 타고난 고고하면서도 그윽한 향이 어디로

가랴.

단지 내 마음이 서운타 여겨 문 닫아 건 까닭일 터.

기다림과 설렘이 함께 빚어낸 기대감 어긋나자 심통이 났던가보다.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 향이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기보다, 분명 스치듯이라도 닿긴 닿았으리라.
다만 내가 그 느낌을 받아 안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굳이 외면했던 것은 아니지만 종내 나에게 스며들지 못한 그 미묘한 향.

숲 전체가 향기로 숨을 쉬는 곶자왈, 근처만 가도 심신을 향 테라피로 혼미하게 품어주던 그 향인데.



그 향기를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멀리서 올 한 도반을 떠올리며 나는 그 숲을 내 안에 고이 접어 두었다.
지금이 아니라 조금 더 알맞은 때 이르면 펼치려는 마음으로.

내심 백서향 고혹적인 향기를 나누고 싶은 누군가가 그처럼 있었더랬다.

귀한 친구가 육지에서 내려오면 더불어 곶자왈 숲에 들어 이 향 속에 흥건히 젖어들고 싶었다.
조바심치지 않고 저만치 미루어둔 채로, 내밀히 아껴 숨겨둔 채로 그날을 기다렸다.

마침 한창 시즌에 당도한 도반은 그러나 다른 일행과 함께 거길 다녀왔다고 하였다.
이미 그 숲을, 그 꽃을, 그 향기를 스쳤노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 괄게 피워둔 화톳불 같은 게 소낙비 맞고 피시식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 후 백서향 향기를 잃자 문득 이런 자각이 들었다.

함께 느끼고 싶었던 도반이 이미 그 자리를 지났다는 사실이 이 숲의 공기를 바꾸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향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향을 향기로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자리가 이미 어긋졌다는 것을.

같은 숲인데도 마치 다른 숲을 걷고 있는 것처럼 그리 팍팍하게만 느껴졌던 연유 역시도.

곶자왈을 걷는 양 편 어디나 꽃은 만개해 있었다.
아주 환하고 그윽하게 백옥 비단 향주머니 죄다 풀어놓았건만 희한하게도 향이 나에게 닿지 않았던 까닭은?
그 숲은 변하지 않았고 숲 여기저기 백서향 꽃 바야흐로 제철 맞았음에도 향을 흠향치 못함은, 향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어쩌면 내 마음이 후각을 닫아 건 때문은 아니었을지.

감각을 먼저 잠가버린 것은 그러나 정녕 내 쪽이었을까.



곶자왈은 너덜겅과 덩굴나무 따위가 마구 엉켜 있는 원시림에 가까워 어둠침침한 숲길 후미지다.

올레 14-1코스가 지나는 터라 드문드문 인적은 스치나, 천연 그대로의 거칠기짝이 없는 길은 흔적 희미한 데다 매우 휘휘한 구간이다.

예술인마을 방림원 옆길로 해서 노거수와 이끼 낀 비석 서있는 당산 지나 밋밋한 임도로 들어섰다.

허심히 비워둔 경작지와 말농장과 숲이 나서는가 하면 또다시 지루한 임도 한동안 계속된다.

도도록 솟은 강정동산 나목 바라보다가 울창한 숲길 지나며 얼핏 본 무슨 연구원 안내판에는 굵은 글씨로 국립산림과학원이라고 쓰여있었고.

삼거리 길을 지나 호젓하다기보다 으슥한 숲길 걷는데 그야말로 적막강산 그 자체다.

문득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서 조난당한 기분이다.

온데 시퍼런 바다라 헤엄쳐봐도 뭍은 보이지 않는다.

출구가 보여 사방이 막막하기로는 현재 이 산 속도 마찬가지다.

수주작처라 했다.
어디에 있든 그 자리의 주인이 돼라 했건만 이 날 나는
그 길 위에 엉거주춤, 얼치기로 혼 없이 쏘다녔던 거다.

여태 걸어온 깜냥으로야 뒤돌아 빠꾸(Back)할 수도 없으니 무조건 앞으로 전진 또 전진 다그치면서.

하루 예닐곱 시간 걸은 적 수차 있었으나 이리 싫증 나도록 힘 빠진 채 지쳐보긴 처음이다.

아무리 파김치가 됐어도 걷기 중단할 수도 없는 위치, 여기가 어디짬인지조차 모르니 내처 걷고 또 걷는다.

방향 가늠도 안 되는 대양에서 무작정 자맥질치듯이.

그럼에도 도대체 곶자왈 비스므레한 분위기는커녕 코빼기조차 안 보인다.

저번에 보니 뜬금없이 출구에 배 모형이 여럿 허깨비처럼 서있던 데 그건 대체 왜 안 나타나는 거야, 슬몃 짜증이 올라올 무렵.

드디어 이쪽 방향에선 곶자왈 입구에 속하는 둥근 광장에 늘어선 낡은 배들이 보였다.



일단 곶자왈에 입성, 여기서도 물론 한참을 걸어야 티뮤지엄으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이제 길머리는 분명히 잡았으니 안심이다.

전에 입 꼭 다문 향낭 보얀 꽃 숭어리만 보았던 숲 속에서 마침내 히끗거리는 꽃송이를 만났다.

여기저기 만개해 절정기 맞은 백서향 무더기 무더기, 근데 어인 일인지 후각 매료시키던 그 향기가 없다.

해마다 삼월이면 감미로운 향기의 기억에 이끌려 제주도립곶자왈을 찾곤 했는데 저지곶자왈 백서향은 품종이 다른가 어이해 향기를 잃었을까.

분명 지난번 여기서 만난 백서향 향낭(香囊)마다 향 품고 있다가 일제히 풀 준비를 마친 비단주머니였으련만 저지곶자왈이라고 설마 다를까.

꽃이 변했을까, 아니면 내 마음이 제풀에 앵돌아섰을까.

꽃에서 꽃으로 옮겨가며 코를 바짝 백서향 꽃 가까이 디밀고 있는데 기척 없이 다가 선 히이잉! 소리.

깜짝 놀라 돌아보니 백마를 비롯 숲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말 무리, 새끼까지 거느리고 풀을 뜯는 중이다.

콧소리를 낸 말과는 바로 지척거리다.

무섭다고 뛰어 달아나면 더 위험할 거라 굵은 소나무 뒤로 물러나니 녀석도 덩달아 소나무를 싸고돈다.

갈게, 갈게.... 너희들 영역 침범해 미안한데 이만 갈 테니 가까이는 오지 마.

슬슬 뒷걸음질로 그래도 말똥밭 조심하며 무리를 따돌리고 게서 벗어났다.

설핏 해 기울자 안 그래도 침침하고 으슥한 숲 곶자왈이 더더욱 내면으로 깊이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 덕에 성찰의 시간 오롯이 갖게 됐으므로 이 또한 은총이라 여겼고.

역시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 달렸다, 一切唯心造!

일체 모두 마음이 짓는 것이라면, 이 향기의 부재 또한
내 마음이 만든 것일 터.

마음자리 깨치면 여여(如如)한 부처요, 깨치지 못하니 여전히 미련한 중생이다.

마음으로 집착을 일으켜 번뇌 속에 헤매게 되거늘, 마음으로 집착을 끊고 해탈(解脫)에 이르러 열반(涅槃)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으나 그저 꿈.

부족한 중생임을 거듭 깨우쳤으니 마음 다스리는 공부 다시 잡고 참구 해봐야겠다.
잠언 말씀에도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렇듯 마음이 삶의 근원임을 성서 또한 상기시킨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매일 조금씩이라도 마음 다스리는 시간 갖고자 발원한 것만으로도 오늘 수확은 차지다며 스스로를 격려하였다.

9.3 km를 우격다짐 놓듯이 어거지로 걸어, 그러니 밤에는 공부고 뭐고 뒷전인 채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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