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하다

by 무량화

벌써 몇 번째다. 머리가 띵하다.


축구공이 날아와 직통으로 뒤통수를 친 거 같다.


추리물과 포스트모던의 조합인 폴 오스터의 소설 <뉴욕 3부작>을 읽고 나서도 한참 멍~~ 띵했다.

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10쪽

탐정은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 사물과 사건들의 늪을 헤치며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해 의미가 통하게 해 줄 생각과 관념을 찾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작가와 탐정은 서로 바뀔 수 있는 존재다. -17쪽

소재도 특이하고 기발할뿐더러, 문장도 재치 있고 또한 시대를 절묘하게 반영시켰다.

무대는 뉴욕, 현대의 거대도시 속에 인간은 매몰되어 마침내 정체성과도 결별하고 만다.

철저히 익명성에 묻혀 살 수 있는 도시공간에서 스토커처럼 감시하고 추적하다 예전의 자기로 알려져 있던 모든 것과 단절하기로 마음먹는 세 번째 이야기 <잠겨있는 방>은 첫 번째 이야기에 연결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나 자신도 연기처럼 부지불식간에 그처럼 스러지고 말 것 같았다.

작가 폴 오스터에게서는 <변신>을 쓴 카프카나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뮤엘 베케트가 어른거렸다.

파격적인 그를 처음 만난 건 십 년 전, 딸내미 책장에서다.


그때 자발적 파산자를 그린 <달의 궁전>을 읽었다.

도회적 스타일의 글이라 아주 젊은 작가로 생각했던 폴 오스터가 무라카미 하루끼 연배, 재작년 77세로 눈을 감았다.

즉 나와도 거의 비슷한 또래라는데 이르자 어쩐지 기분 해졌다.




다음엔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아찔하니 현기증 나게 만들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도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아직 인간의 두뇌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세계 최정상에서 10년 이상 자리를 지킨 이세돌은 두 번째 대국이 끝난 뒤 “바둑을 두는 동안 한 순간도 알파고에 앞선 적이 없었다”며 완패를 인정했다.

알파고를 개발(2016) 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는 구글을 대표하는 천재 개발자.

그는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알파고는 그동안 전 세계 수많은 바둑선수들이 두었던 3천만 건의 기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탄생한 데다 강화학습 기술로 무장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강화학습은 인공지능 스스로 성공과 실패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이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성공 확률을 끌어올리는 기계학습법이다.

따라서 알파고는 완벽에 가까운 존재로 당연히 이기도록 만들어져 이길 수밖에 없는 바둑을 둔다.

알파고뿐이 아니다. 구글의 인공지능 기술은 현재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음성 인식 시스템, 사진을 알아서 인물·테마별로 구분해 주는 구글포토, 유튜브의 동영상 추천 서비스 등에 실용화돼 쓰이고 있다.

페이스북(현 메타)은 인공지능 연구그룹을 출범시키면서 얼굴 인식 프로그램 딥 페이스(2014)를 발표했다.

이 서비스는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을 파악해 태그를 달아주는 일을 한다.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은 배송 요청이 들어온 물건이 있는 상자를 물류창고 안에서 자동으로 옮기는 로봇인 '키바'를 도입해 인건비를 절감했다.

일본 도시바는 사람보다 더 사람을 닮은 모습으로 발전시킨 '로봇 치히라 가나에'를 독일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에서 선보였다.(2016년 3월)

로봇은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 독일어는 물론 수화까지 가능해 박람회장 안내 데스크에서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역할을 맡았다.



21세기는 인간이 현생 인류를 일컫는 호모 사피엔스로서 살아가는 마지막 세기가 될 것이라 예견한다.


인간종(種)의 탄생부터 인류 역사를 집대성한 그의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도 현 인류의 종언을 예고한 바 있는 이스라엘의 하라리 교수.

그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이 우위를 지키는 절대 영역'으로 여겨진 바둑에서 최강 이세돌 9단을 꺾은 것이 신호탄"이라고 했다.

"이제 인간은 유일하게 타고난 두 능력, 즉 육체와 지능 면에서 모두 기계에 뒤처졌으며 조만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보는 견해로는 "인간이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기술이 너무 빨리 진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의 현실적 위협이 가장 먼저 구직 시장에서 나타날 것으로 전망, "30년 안에 지금 존재하는 직업의 50%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1세기 전반에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돼 택시·버스 운전사들이 필요 없게 되고, 의학·나노 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이 완전 정복돼 의사란 직업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고용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어 "오늘날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교육과 직업훈련이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예측했으니 이는 후손들이 살아내야 할 시대라서 심난스럽다.

그는 "2050년엔 70억 명이 밥만 축내는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많은 과잉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현대 경제학은 답해줄 수 없다"면서 "이런 위협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very real)인 일"이라고 말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사이보그로... 상상만 해도 끔찍하나 SF소설이 아닌 real이라니 머리가 띵해진다.




문학은 예언이었을까, 그때는 그것이 은유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라는 사실 앞에서 다시 머리가 띵해진다.


폴 오스터의 인물들처럼 충격적이게도 우리는 점점 정체성이 지워지며 자신에게 조차서도 삭제돼 간다.


이세돌의 패배는 한 인간의 패배가 아니었다. 참으로 착잡해진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의 자존심이 흔들린 순간이었다.


사라지는 것은 노동인가, 자존인가. 남는 것은 지능인가 아니면 감정인가.


하라리의 문장은 과장이 아니었다.


인간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 우리의 자리는 어디인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것,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는 건 절망보다 더 두려운 말이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걷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주, 제미나이를 찾을 것인가 말 것인가 머뭇거리고 망설이며 흔들린다.


왠지 나라는 실체마저 솔직히 긴가민가 모호해진다.


가로 늦게 인문학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철학에서 답을 얻어보려고 하나 도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세계를 낯설게 그리하여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존재로 남고 싶다.


이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아직 인간이라는 것을 굳게 믿겠다.


모든 불확실성 새에서도 한 줄기 빛이라면, 수 세기 동안 세상은 항상 우리 인간에게 유익하도록 발전 유지돼 왔으니까.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했듯, AI는 지능 노동을 대체하며 더 높은 수준의 생산성 향상과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도구로 작용할 것이라 미래학자와 개발기술 전문가들은 낙관한다.


인간의 역할은 더 고차원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도 한다.


AI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기술적으로 검증하고 윤리적 프레임워크 내에서 개발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가시지 않는 불안감.


궁극적으로 AI는 인간에게 위협인가, 아닌가?


Human-Centered AI, 줄기차게 내세우는 인간중심! 그조차 불온스레 여겨진다.


AI는 인간의 창의성과 혁신을 증폭시키는 강력한 Partner로서 협업하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는 하나 그렇지만.


AI는 이제 더 이상 가상의 어렴풋한 그림자로서의 두려움이 아니라 명확한 실체로 다가왔다.


조용히 그리고 깊숙이 인간들 속으로 스며든 분명한 실체였다.


정면대결은 이미 하나마나, 승부의 결과가 뻔해졌다.


미래학자들조차 AI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끝내 설명하지 못하는 채로 그렇게 이 시대를 통과하면서 구세대는 스러져가야 하나?


나는 오늘도 머리가 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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